보이지 않는다고 없는 것이 아니다

by Chong Sook Lee
(사진:이종숙)

세상에 만들어진 모든 만물은 정해진 시간이 있는 것 같다. 사람이 태어나 살다가 떠날 때까지 시간이 정해져 있는 것도 모르고 천년만년 살 것처럼 산다. 내일인지, 한 달 뒤인지 아니면 10년 뒤인지 아무도 모르고 산다. 준비하고 계획한다고 그대로 되는 게 아닌데도 매일 준비하고 계획하며 산다.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게 인생이라고 하면서도 내 마음대로 될 것 같아 이것저것 해본다. 이미 정해진 운명 속에 걸어가는지도 모르고 걸어간다. 지금껏 온 것처럼 앞으로 갈길을 갈 뿐이다. 지금 내가 가는 길은 내가 정한 것이 아니고 보이지 않는 누군가의 손길로 이끌어지는지도 모른다. 어느 곳에 가서 무엇을 하며 누군가를 만나고 무엇을 먹고 어떤 삶을 사는 모든 것들은 내가 하는 게 아닐지도 모른다. 마음이 끌리는 대로 머리가 생각나는 대로 하는 것 같지만 그렇게 만드는 자석 같은 무언가가 있다.


그곳에 가지 않았으면, 이 사람을 만나지 않았으면, 이곳에 오지 않았으면, 이일을 하지 않았으면, 이 음식을 먹지 않았으면, 이 옷을 입지 않았으면, 이 책을 읽지 않았으면, 이 신발을 신지 않았으면, 운명은 달라졌을지도 모르듯이 운명의 손길로 그렇게 한 것이다. 알 수 없는 누군가의 인도로 이곳에 와서 산다. 일 년만 살고 갈 줄 알았던 이민 길이 41년이 지나는 세월이 흘렀다. 삶이란 흘러가는 물줄기 같아 언제 어디로 흘러가 누구를 만나서 무엇을 하며 살지 모르는 일이다. 젊음은 나를 떠나고 아이들도 나이 들어가는 세월이 흘렀다. 오지 않을 것 같은 노인의 삶이 나를 찾아왔고 정리를 해야 하는 시간들이 다가온다. 하루가 끝나고 새로운 날이 온다. 날마다 특별히 하는 일이 없어도 시간은 오고 간다. 계절 따라 봄이 되고 가을이 오듯이 우리네 삶도 추수를 앞두고 있다.


며칠 전에 지인에게 슬픈 소식을 들었다. 건강하던 사람이 심장마비로 선종했다는 말을 들으니 황망하다. 이곳에 사는 딸이 100일 된 아들을 데리고 한국을 방문하여 친정에 머물며 아기 100일 잔치도 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던 중 친정엄마가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니 믿어지지 않는다. 한창 재미있게 손자 재롱 보며 여행이나 다니면서 행복을 누려야 할 나이에 정말 안됐다. 자다가 떠난 사람이야 아무것도 모르지만 산 사람들의 슬픔은 어떻게 감당할지 가슴이 아프다. 사람의 운명같이 얄궂은 게 없다. 살만하면 아프고 기다리다 지쳐 쓰러지고 그리움에 안타까워하며 평생을 살아야 한다. 언젠가 만날 수 있다는 기대는 희망 사항일 뿐 뜻대로 마음대로 안된다. 봄이 보이지 않는 겨울을 견디다 보면 봄을 만나는데 사람은 그렇지 않다. 기다리고 체념하고 자위하며 살다 간다. 외로워도 힘들어도 혼자서 감당하며 살아야 한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내일 잘 살기 위해 노력하며 산다. 오늘 힘들고 고통스러워도 내일을 기대하며 살지만 내일은 그야말로 뜬 구름일 뿐이다. 구름을 바라보면 잠시도 가만있지 않는다. 모였다가 흩어지고 다시 모이며 다른 모양이 되어 어디론가 훌러가 자취를 감춘다. 어디선가 시커먼 먹구름이 몰려와 천지를 뒤엎는 소나기를 뿌려대로 폭풍을 불러오며 세상을 뒤집는다.. 삶은 희망이고 아름다워야 하는데 지구 상에서 일어나는 전쟁과 투쟁은 지옥과 다름이 없다. 사람들은 죽으면 천국에 가기를 원한다. 천국은 아픔도 슬픔도 없고 싸움도 질병도 없고 평화만이 있는 곳이라 한다. 세상에 태어나 고생만 하다 가는 사람들은 살아 있으면서도 죽으면 천국 가기를 갈망하는 이유는 세상살이가 지옥 같기 때문일 것이다.


뜻이 다르다고 사상이 다르다고 생각이 다르다고 원수가 되어 살아가는 인간들이다. 배가 고파서 서로 잡아먹고 배를 채우는 동물들도 하지 않아야 할 것을 지키고 살아가는데 사람은 앙심을 품고 복수하며 이기적으로 살아간다. 백인들이 흑인 노예들과 원주민들에게 했던 잔학한 행동과 학살은 영원히 역사에 남는다. 어쩌면 인간이 가장 잔인한지도 모른다. 역사를 들춰보면 인간들이 차마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하고 살아왔다. 평화를 위장한 살인을 하고 땅따먹기에 혈안이 되어 틈틈이 전쟁을 꿈꾸며 잔악한 학살을 하고 살아간다. 아직도 수많은 백인 우월주의의 인종차별로 인한 끔찍한 사건은 끝이 없이 이어진다. 색이 다르고 출신이 다르고를 떠나 사회 깊숙이 파고들어 있는 차별을 알지 못하고 무시하며 잔인하게 괴롭힌다. 인간은 누구나 평등하다. 지금 당하는 것은 되돌려줄 날이 있고 지금 행하는 것은 나중에 모두 받는다.


뿌린 대로 거둔다. 오늘 보이지 않는 선행과 악행은 내 대에 받지 않으면 후손이 받는다. 계절이 오고 가듯 세상만사는 오고 간다. 봄 속에 겨울이 있고 겨울 안에 봄이 있다. 가는 사람이라고 아주 가는데 아니고 온 사람이라고 영원히 살지 않는다. 말 한마디 행동 하나가 다시 돌아오기까지의 시간은 아무도 모른다. 오늘은 어제의 나이고 오늘의 나는 내일의 나이다. 지금이 중요하지만 내일을 생각하지 않고 살 수도 없고 오늘만 생각하며 살 수도 없다. 삶은 처음도 끝도 없다. 어제로 돌아갈 수 없어도 어제는 오늘을 낳고 역사는 누군가에 의해 파헤쳐지고 밝혀진다. 세월은 무심하다 하지만 역사를 안고 흐른다. 잘잘못은 잊히지 않고 세월 따라 흐른다. 인간은 보다 나은 삶을 찾기 위해 더 높은 곳을 향하여 끊임없이 살아가고 뿌려진 씨는 언젠가 열매를 맺는다. 하늘을 바라본다.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비가 오고 눈이 온다. 바람을 만들고 구름이 흐르듯이 보이지 않는다고 없는 것은 아니다.


(사진:이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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