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을 품은 겨울이 되고 싶다

by Chong Sook Lee
(사진:이종숙)

날이 조금 풀려서 인지 아침 일찍부터 참새들이 수다를 떤다. 불을 끄고 창밖에 서있는 나무를 본다. 깜깜한 새벽에 그들은 무엇 때문에 저리도 바쁜지 나뭇가지를 오르내리며 무언가를 한다. 모든 게 꽁꽁 얼어붙은 추운 겨울에 먹을 것도 없을 텐데 괜히 나뭇가지를 꼭꼭 찍는다. 옆에 앉은 친구에게 뭐라고 하기도 하고 가만히 앉아서 잠을 청하기도 한다. 한참을 시끄럽게 부산을 떨며 시끌 시끌하던 수다 소리가 점점 작아지며 조용해진다. 커튼을 열고 살며시 깜깜한 밖을 내다본다. 깜깜한 새벽에 새들과 나뭇가지의 색이 동색이라서 새들의 모습은 어디에도 찾을 수 없다. 그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소풍을 갔는지, 먹을 것을 찾으러 갔는지 어딘 가에 숨어서 잠을 자는지, 아무것도 안 보이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참새가 없는 정원에 블루 제이 몇 마리가 산책을 나와 날아다닌다. 봄을 알리려 오는 블루 제이가 온 것을 보니 날이 따뜻해지나 보다. 해길이도 노루꼬리만큼씩 자란다고 하는 동지가 되었으니 봄도 머지않을 것이다. 이제 시작한 겨울이지만 봄은 그리 멀지 않았다고 믿고 싶어 진다. 몇 번의 한파와 폭설이 왔다 가면 봄은 온다. 어쩌면 봄을 기다리는 내 마음에는 이미 봄을 만나고 있는지도 모른다. 봄이 온다고 특별한 일은 없지만 막연히 봄이 오면 무언가 좋은 일이 있을 것 같다. 겨울에는 봄을 그리워하고 여름을 기다리지만 막상 봄이 오면 겨울은 까맣게 잊어버린다. 힘들 때는 좋았던 날들이 그리워지다가 좋은 날이 되면 힘들던 날들을 까맣게 있는 것과 다름이 없다.


겨울이 오기가 무섭게 봄을 기다린다면 겨울이 더 지루하겠지만 그래도 기다림으로 알 수 없는 희망이 생긴다. 하늘은 짙은 회색으로 내려앉아 해님을 숨기고 인상을 쓰고 있어도 어느 날 반갑게 만날 해님을 생각하며 기다린다. 해마다 이맘때는 누구나 한 해 동안 지켜준 보이지 않는 손길에 감사하는 마음이 된다. 코로나가 길어지고 변이종이 생기며 하루하루 불안감이 쌓이지만 언젠가는 이 모든 것들이 지나갈 것이다. 전염병이 돌 때마다 사람들은 자숙하고 살아남기 위해 최선을 다하며 이겨왔다. 수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앗아갔던 전쟁 시에도 살아남은 사람은 지구를 지켰다. 온갖 고통과 괴로움을 참고 견디며 살 수 있었던 것은 더 나은 내일에 대한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삶은 절망 가운데 희망하고 고통 가운데 기뻐하며 아픔을 견디며 봄을 기다리는 마음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생전 겪어보지 않았던 삶을 견디며 살아온 이민생활에서 살아남은 것도 희망이 있었기에 가능했었다. 돌아가고 싶고 그만두고 싶던 날들은 봄 같은 희망을 가져다주었고 꽃을 피고 열매를 맺게 해 주었다. 아이들이 빨리 크기를 바라며 더 나은 날들을 기다려왔는데 소망대로 되었다. 더 많은 것보다 좋고 더 높은 것보다 좋은 마음의 평화를 얻었다. 많이 가져도, 높이 올라가도 만날 수 없는 평안한 삶 속에 뒤돌아보며 웃게 되었으니 후회도 미련도 없다. 뿌려놓은 씨들은 언젠가 열매를 맺는다. 좋은 씨앗인 줄 알았던 씨앗이 쭉쟁이 일수도 있고 썩은듯한 씨앗이 잘 살아남아 커다란 나무로 자랄 수도 있다.


고속의 바람으로 순식간에 마을이 폐허가 되는 모습은 자연의 힘이 얼마나 무서운지 보여준다. 인간이 만든 모든 것들은 바람이나 물에 힘 없이 허물어진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물질은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는 자연재해로 잃는다는 것을 모르고 쌓아놓고 모아둔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지만 자연은 순응하며 오고 간다. 하얀 눈이 쌓인 뜰은 지난날들을 추억하며 휴식하고 있다. 가을에 떨어진 씨는 땅속에서 봄을 준비하고 잎을 떨어뜨린 나뭇가지는 보이지 않게 속으로 새로운 싹을 준비한다. 며칠 있으면 크리스마스다. 아이들이 집에 오고 싶어 하는 마음만큼 우리도 아이들이 많이 보고 싶다. 영상으로 보고 이야기하지만 만남이란 참 오묘해서 더욱 기다려진다. 아무리 비대면이 판치는 세상이라 해도 대면의 매력을 이길 수가 없다.


만나서 포옹하고 뽀뽀하고 따뜻한 손을 잡으며 웃는 진짜 만남이 좋다. 코로나는 세상을 많이 바꿔놓았다. 안 만나도 사람들은 다 잘하고 사는 것을 보며 인간의 능력이 어디까지 일지 궁금하다. 결국엔 인공지능이 이기는 세상이 되어간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기계가 다 해주는 세상에 인간은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할지 감이 안 잡힌다. 할 일이 넘쳐 정신없이 달려왔는데 할 일이 없어서 할 일을 찾으며 산다. 앞으로 남은 세월 동안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 아는 것은 정해져 있고 모르는 것들 투성이 인데 배우지 않고 세월만 보낸다. 복잡한 것은 생각하기 싫고 새로운 것은 엄두도 못 내며 그냥 산다. 어제는 생각나지 않고 지나간 옛날 것들은 더 뚜렷해진다. 왜 자꾸 옛날로 돌아 가려하는지 모르겠다.


음식도 맛없다고 투정 부리던 옛날 음식이 좋고 기름지고 새로운 음식은 싫어진다. 씹기 좋은 부드러운 음식이 먹기 좋고 속도 편하다. 부모님과 함께 식당에 가면 얼마 드시지 않고 배부르다고 하시던 생각이 난다. 왜 그럴까 이해를 못 했는데 나도 자꾸 그들을 닮아간다.


겨울이 결코 봄이 될 수 없어도 봄을 품은 겨울이 되기를 바란다. 봄이 온 것처럼, 봄에 사는 것처럼 생각하면 멀지 않아 봄을 맞을 것이다.

(사진:이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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