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으로 우리 모두는 다시 만난다

by Chong Sook Lee
(사진:이종숙)

생각해보면 소중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부모 형제를 비롯해서 가족 친구 친척은 물론이고 지나치는 모든 인연도 모두 소중하다. 그들이 있기에 내가 있고 내가 있기에 그들이 있음이 너무나 감사하다. 돈과 명예 그리고 권력도 사람들로 얽힌 관계를 떠날 수 없다. 집안에 있는 물건 하나하나, 주위의 모든 사람들도 너무나 소중하다. 쓰지 않고 필요 없어져서 버리려고 해도 망설여지는 이유는 주고받았을 때의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세상에 물건이 넘쳐나고 필요한 물건보다 필요 없는 물건이 더 많은 세상이 되었다. 옛날 것들이나 쓰던 것들은 새것이 아니기에 색도 퇴색되고 모양도 낡아 보잘것없지만 사진 속에 있는 사람은 만날 수 없기에 더욱 애틋한 마음이 든다.


열심히 살며 가진 게 넉넉하고 부족한 게 없어도 사람은 늘 옛날을 그리워한다. 만나지 못하는 사람을 그리워하고 어릴 적 추억을 그리워한다. 며칠 전 집안을 정리하다 작은 상자 하나를 꺼내보게 되었다. 그곳에서 우연히 옛날 사진들이 들어있는 봉투가 있어 열어보니 정말 오래된 사진들이었다. 정리하며 고이 모셔둔지 몇십 년도 넘은 흑백 사진들인데 그중 하나 칼라사진이 눈에 띄었다. 남동생이 군대에 가서 친구랑 찍은 사진이다. 군 복무 중이던 남동생이 휴가를 나와 결혼을 축하하기 위해 우리 집에 들렀는데 용돈도 제대로 주지 못한 채 복귀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동생이 제대하기 전에 우리는 캐나다로 이민을 오게 되었다.


힘든 이민 초기에 살아남아야 하기에 부모 형제를 생각할 여념이 없이 모든 것을 잊고 살았다. 조금씩 여유가 생기고 없는 시간을 내어서 고국을 방문해도 조금이라도 부모님과 함께 있고 싶어 동생들은 특별히 챙길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연로하신 부모님이 돌아가실까 봐 한시도 마음을 놓지 못하고 형제들은 아직 젊으니까 나중에 만나도 된다고 생각하며 뒤로 미루며 살았다. 더구나 나이들이 그만그만하니까 다들 나름대로 바쁘게 살아 한번 약속을 정하기도 힘들어 시간이 되는 형제들만 잠깐씩 부모님 댁에 들려서 나를 만나고 헤어지곤 했다. 이번에 못 만나면 다음에 또 만나면 된다고 매번 다음만 생각하고 캐나다로 돌아오곤 했다.


그러기를 몇 번 하고 남편과 둘이 갔을 때 동생들과 만나 밥도 먹고 노래방에 가서 노래를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매번 갈 때마다 짧으면 일주일 길어야 2주 동안 부모님과 함께 있다 오는데 기회가 되어 다시 동생들과 만나게 되었는데 몸이 많이 수척해져서 물어보니 당뇨 때문에 몸이 마른다는 말을 듣고 헤어져 집에 왔다 그 뒤 이유 없이 많이 아프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고국을 방문했을 때는 건강이 악화되어 병원에서 치료를 받는 상태가 되었다. 백방으로 알아보고 오만가지 약을 써도 낫지 않는 불치병으로 생을 마친 동생의 사진을 보니 다시금 그리움이 복받쳐 오른다.


동생이 떠난 지 6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지만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너무나 아까운 동생이다. 동생이 넷이나 있지만 바로 아래 동생이기에 유난히 친하고 의지하며 같이 자란 동생이 환갑도 되지 않은 젊은 나이에 생을 마친 것을 생각하면 너무나 안타깝다. 의학이 발달되어 못 고치는 병이 없다는데 어찌해서 그런 몹쓸 병에 걸려서 신나게 한번 살아보지도 못하고 급하게 갔는지 야속하다.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즐겁고 행복하면서도 마음 한구석에 남아있는 동생에 대한 그리움을 떨칠 수가 없다. 이미 떠난지 많은 세월이 지나서 아픔도 고통도 없는 하늘나라에서 행복하게 잘 있을 것을 알면서도 그리움은 버릴 수 없다.


살아있을 때 만날 것을 내일로 미루고, 다음으로 미루며 그냥 보내버린 세월이 원망스럽다. 나보다 나이가 어린데 내 뒤를 따라와야 하는데 나보다 먼저 갔다. 아무리 가는 순서는 없다고 하지만 먼저 갈 줄 몰랐다. 어릴 적 몸이 약해 여러 번 놀라기는 했지만 결혼하여 두 아들과 행복하게 잘 살았는데 난데없이 찾아온 불치병이 모든 것을 멈추게 만들었다. 형제들의 가슴에 아픔이 남아 그리움으로 살게 하고 먼저 간 것을 생각하면 너무 슬프지만 그 또한 어쩔 수 없다. 사람의 운명이란 아무도 모르는 것인데 먼저 왔어도 나중에 왔어도 가야 할 시간이 있다. 손재주가 좋아 무엇이든 잘 고치고 잘 만들고 노래를 잘해서 어느 가수 못지않던 노래실력으로 지금도 노래를 들으면 동생 생각이 나서 눈물이 난다.


마지막에 살고 싶어서 하던 모습이 자꾸 떠오른다. 이제는 멋있는 수목원에서 세상 구경하며 철철이 피는 꽃들과 나무들과 함께하니 더 행복하리라. 삶이란 원래 이렇게 후회하고 미련을 가져다주는 것이기에 세월이 가도 한 번씩 떠올라 찾아오는 그리움으로 다시 만나는 것이다. 나중에 우리 모두 만나는 날을 기약하는 수밖에 없다. 멋진 군인의 모습을 담은 동생 사진이 나를 다시 과거로 되돌려 놓아 마음으로 동생을 만난다. 어딘가에 살아 있다고 생각하고 좋은 곳에서 행복하게 있다고 생각하며 살면 된다. 동생은 20대 초반의 멋진 군인으로 내 마음에 남아 있다. 아름다운 추억을 남기고 세월은 간다. 기쁨도 슬픔도 함께 가며 어느 날 우리 모두 만나 그리웠던 세월을 이야기하자며 마음을 다독인다.


셀 수 없이 많은 소중한 인연들이 이어지고 만날 수 없는 사람들은 추억 속에 그리워한다. 눈으로 볼 수 없고 만질 수 없지만 동시대를 살았기에 공감을 하고 많은 것을 공유한 것만 해도 얼마나 다행인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뜬금없는 농담으로 배를 쥐고 웃던 순간들을 기억하며 웃어야 한다. 부족해도 마음만은 부자였던 어린 시절로 돌아가면 추억으로 다시 만날 수 있어 너무 좋다.


추억은 시간을 돌려놓고 그때로 데리고 가는 요술쟁이다. 못해 준 것을 생각하면 미안하지만 형제로, 남매로 함께한 시간 속에 우리의 영혼은 머문다. 나무는 썩어서 가루가 되어 흙이 되면 각자의 유전자를 찾아서 다시 만난다고 한다. 한 번의 형제는 영원한 형제다. 이역 난리 떨어져 살아도 마음속에 간직한 그리움은 우리를 언제나 만나게 한다.
(사진:이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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