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한 바퀴 돌며 추억도 돌려본다

by Chong Sook Lee
(사진:이종숙)

낡고 헤진 나뭇잎들이 바람 따라 흔들린다.

급하게 오는 겨울 때문에 가을에 떨어뜨리지 못한 마른 나뭇잎들이 가지에 매달려 흔들린다. 겨울을 재촉하는 가을비와 성질 급한 눈이 번갈아가며 쉬었다 가는 바람에 낡은 모습이 애달파 보인다. 바람이 부는 대로 흔들리며 떨어지지 못하고 있다. 이미 다 된 생인데도 떨어지고 밟히는 것은 싫은지 눈이 오면 눈을 맞고 비가 오면 비를 맞으며 고집한다. 꽃이 필 때는 예쁘지만 시들고 떨어진 모습은 보기 흉한 것처럼 새봄에 새싹으로 피어나는 이파리는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지만 시들어 달라붙은 나뭇잎들은 보기 싫은데 끝까지 나무에 붙어있다가 봄이 와서 새싹이 밀어낼 때까지 버티다 마지못해 떨어진다.


겨울이 깊어갈수록 봄은 가까워지고 낡은 나무들은 죽은 듯이 서서 겨울을 이겨내고 봄을 맞는다. 오지 않을 것 같은 봄 같은 날씨다. 1월 하순에 영상의 온도는 이곳에서 절대로 상상하지 못하는데 이상기온으로 이런 날도 맞는다. 유래 없는 혹한이 계속되더니 오미크론 전파가 세상을 덮고 비껴가지 않는 바이러스로 한동안 고생을 했다. 코로나를 피하기 위해 노력했는데 코로나는 남편과 나를 찾아내고 전신을 난도질을 했다. 어디서 왔는지 갑자기 오더니 가려고 하지 않고 약을 올리며 갈 생각을 하지 않지만 가야 할 때를 알고 가기를 바란다.


블루제이가 짝을 부르는 소리가 애교스럽고 사랑스럽다. 앞뜰에 서 있는 자작나무에 블루제이와 까치가 나뭇가지를 오르내리고 눈 위에 앉아서 무언가를 쪼아 먹는다. 봄이 오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눈이 쌓여 있어도 땅속으로부터 오는 봄을 막을 수 없다. 해는 길어지고 밤은 짧아지고 있다. 갑자기 따뜻해진 온도로 눈이 녹아 길은 빙판이 되어 위험하지만 마냥 집안에만 있을 수 없어 동네 한 바퀴 돌아본다. 아무도 살지 않는 것처럼 사람들은 보이지 않고 문을 걸어 잠그고 있다. 오랜만에 걸어서 인지 다리가 휘청거리고 어지럽다.


정신을 바짝 차리고 한발 두 발 걸어서 앞으로 간다. 한 달 넘게 집에서 생활해서인지 다리에 힘이 빠졌지만 신선한 공기를 마시니 기운이 난다. 녹아서 반질반질한 길과 반쯤 녹아서 빙수같이 된 길을 넘어지지 않게 걸어서 학교 운동장을 지나 성당 옆으로 걸어간다. 사람들은 보이지 않고 차만 몇 대 주차장을 지키고 있다. 코로나 이전에는 넘쳐나는 신자들을 나누기 위해 모금을 하여 조금 떨어진 곳에 새 성당을 지었는데 코로나 때문에 성당이 텅텅 비었다. 그 옆에는 재수학원이 있는데 코로나가 시작되면서 검사장으로 사용했는데 요즘엔 검사장을 다른 데로 옮겨서 조용하다.


(사진:이종숙)

길 건너 공원 쪽의 하늘이 파랗다. 오랜만에 보는 해가 반가워 학교를 끼고 걷는다. 눈 쌓인 학교 언덕에서 아이들을 데리고 미끄럼을 타는 가족이 소리치며 웃고 노는 모습이 보인다. 우리 세 아이들이 다니던 학교라서 더욱 정겨워 보인다. 재작년 봄에 코로나가 시작되면서 학생이 없고 학교가 텅 빈 틈을 타서 늑대가 새끼를 낳아 학교와 동네를 점령하여 접근이 금지되었는데 지금은 평화롭다.


여름 같으면 아이들이 나와서 신나게 놀텐데 눈이 쌓인 집들이 가만히 서 있다. 한번 나왔으니 조금 더 돌아서 가면 좋을 것 같아서 옆동네로 발을 옮긴다. 사람 사는 모습이 거기서 거기다. 집 앞의 길의 눈을 잘 치워놓은 길은 걷기가 수월하다. 귀찮아도 지나가는 사람들을 위한 배려가 고맙다. 지나가다 보니 코너 집에 나무를 자른 뜰안이 훤하게 보인다. 사시사철 여러 가지 장식을 하고 예쁘게 꾸미고 살던 사람이 이사 가고 새 주인이 집을 가꾸지 않고 방치해 놓은 모습이 보인다.


뜰에는 여러 가지 가구들이 정신없이 흩어져 있고 쓰레기를 담은 쓰레기봉투가 산처럼 여기저기 뒹굴어 다닌다. 사람이나 집이나 가꾸지 않으면 금방 표시가 난다. 집을 유난히 잘 꾸며놓아서 매번 지나갈 때마다 감탄하며 한번 더 보고 지나다녔는데 그것도 옛이야기가 되었다. 누군가가 떨어뜨린 장화 한 짝이 문 앞에서 쓸쓸하게 누워있는 모습이 황량하고 쓸쓸하다. 집이나 사람이나 주인을 잘 만나야 한다는 게 실감 난다.

동네에 똑같은 집이 하나도 없다. 생김새도 다르고 색깔도 달라서 나름대로의 개성이 다 드러난다. 사람들 사는 모습을 보며 걸어가다 보니 남편이 집을 고치다가 몸을 다쳐 큰 수술을 하여 여자가 살림을 정리하던 집을 지나친다. 남자가 재주가 좋아서 사람을 시키지 않고 혼자서 조금씩 집을 고쳤는데 높은 곳에 올라가서 발을 헛디디는 사고로 큰 수술을 했다. 젊은 사람이 휠체어를 타고 있었는데 어찌 되었는지 궁금하다.


동네를 걸으며 사람 사는 모습을 구경하다 보니 어느새 집에 가까워진다. 나갈까 말까 망설였는데 나가서 걸어보니 괜찮다. 하늘도 보고 나무도 보며 겨울 속에 묻힌 사람들의 집을 보면서 지나간 날들을 생각한다. 사람의 생각은 잠깐 사이에도 왔다 갔다 한다. 꽃피고 새가 노래하는 봄을 만나기도 하고 손주들과 놀던 여름도 생각난다. 그리움이란 이런 것인가 보다. 길을 걸어가며 느닷없이 손주들 생각이 나서 당장에 달려가서 만나고 싶어 진다. 지난여름에 아이들이 재택근무를 할 때 손주들을 데리고 걷던 길을 걸으며 추억을 만나며 파란 하늘을 본다.


(사진:이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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