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던 겨울이 다시 한번 한파를 데리고 와서 세상을 얼린다. 며칠째 포근한 날씨가 계속되어 겨울이 가려나 생각했는데 동장군은 역시 뚝심이 강하다. 이러다가 겨울을 건너뛰고 봄이 올 것 같다고 생각한 내 마음을 들킨 것 같다. 들판에 눈이 하얗게 쌓여 있어 봄이 오려면 아직도 멀었는데 며칠 조금 따뜻하다고 봄을 꿈꿨는데 언감생심 그게 무슨 소리냐며 겨울이 다시 찾아왔다.
얼고 녹기를 반복한 길은 숨어 있는 얼음 때문에 자칫 잘못하다가는 넘어지고 다치기 십상이다. 미끄러져 넘어질까 봐 동네 한 바퀴를 아기 걸음으로 아장아장 걸어왔더니 배가 고프다. 무엇을 해 먹나.. 때가 되면 은근히 걱정이 된다. 몇십 년 동안 우리 집 주방장 노릇을 했는데도 여전히 때가 되면 전전긍긍한다.
아침에는 주로 서양식으로 계란과 감자와 베이컨이나 소시지에 토스트를 곁들여 먹는다. 오랜 세월 외국에서 생활했는데도 여전히 점심과 저녁에는 한국음식을 먹는다. 아이들 어릴 적에는 삼시 세 끼를 양식으로 먹어도 한국음식 생각이 안 났는데 이상하게 나이가 들어갈수록 점점 더 한국음식만 좋아하게 된다.
양식은 만들기도 쉽고 먹고 나서도 냄새도 안 나고 입안도 개운하다. 강한 양념을 쓰지 않고 있는 그대로 요리를 하고 소금과 후춧가루로 간을 맞추어 먹으면 간단하게 한 끼 때울 수 있는데 비해 한식은 지지고 볶고 무치고 끓여야 하기에 번거로워서 안 해 먹었는데 아이들이 분가하고 나름대로 시간이 있어서 한식을 주로 하다 보니 한식의 매력에 폭 빠져 이제는 아예 한국 장만 보게 되었다. 한식이 좋은 점은 항상 밑반찬이 준비되어 있어서 간단하게 밥과 찌개나 국을 끓여 먹으면 되고 따뜻한 국물을 먹고 나면 속도 편해서 좋다.
장을 본지도 오래되어 냉장고는 텅텅 비었지만 두부와 감자 양파가 보이고 냉동고에 얼려 놓았던 새우도 보인다. 밥하고 찌개만 있으면 밑반찬 몇 가지 하고 한 끼 때울 수 있다. 만만한 게 두부찌개라고 아무 때나 시도 때도 없이 끓여먹어도 질리지 않아 좋다. 두부부침, 두부 볶음, 두부국, 삶은 두부, 두부 넣고 끓이는 김칫국 등 두부로 하는 요리가 여러 가지지만 두부찌개가 간단하면서도 속까지 시원하게 하니 오늘은 두부찌개를 끓여본다.
돼지고기가 있으면 새우젓과 고춧가루를 넣고 얼큰하게 끓이면 맛있지만 오늘은 새우로 시원한 맛을 내야겠다. 일단 물을 끓이는 사이에 두부와 감자와 양파를 적당히 썰어 넣고 파 마늘 생강을 썰어 놓는다. 고춧가루와 소금 간장 조금 고추장 한 숟갈을 넣고 바글바글 끓으면 새우를 넣고 썰어 놓은 생강과 마늘을 넣어 한소끔 더 끓인다. 순식간에 그럴싸한 두부찌개가 만들어졌다. 고급진 요리도 좋고 비싼 배달요리도 좋지만 냉장고 뒤져서 나오는 재료로 후다닥 만든 두부찌개지만 세상 그 어느 찌개보다 더 맛있다.
만만한 게 두부찌개라서 냉장고에는 늘 두부가 있다. 부드럽고 순한 맛이 누구에게나 사랑을 받고 영양면에서도 뒤지지 않는 두부는 서민들의 음식이다. 감초처럼 어디 가도 빠지지 않고 보기에 푸짐하고 먹어서 맛있다. 어릴 적 두 살짜리 오빠가 밥상에 앉아서 구두를 달라고 하며 울고불고 난리를 친적이 있다고 한다. 말을 배우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되는 오빠는 두부를 구두로 잘못 알고 구두를 달라고 해서 부모님이 어리둥절하며 한참을 애먹었다는 말을 오래도록 하셨다. 두부를 먹을 때마다 어린 오빠가 구두를 달라며 떼를 쓰던 모습이 상상이 되어 지금도 웃음이 난다.
두부는 그야말로 애들이나 어른이나 할 것 없이 다들 좋아한다. 먹어서 맛있고 든든한 두부는 친한 친구 같아 그냥 이유 없이 좋다. 냉장고에 꼭 있어야 할 두부가 없으면 아무것도 먹을 것이 없는 것 같아 장을 볼 때마다 두부를 여유로 사다 놓는다. 반찬이 없어도 두부찌개 하나 끓여놓으면 잔칫상처럼 푸짐해지는 두부찌개 한번 끓여먹으며 두부 예찬가가 되었다.
봄에는 겨울에 지쳤던 몸을 풀게 해 주고 여름에는 더위를 이기게 하는 두부찌개다. 가을에는 시원하고 칼칼한 국물로 속을 따뜻하게 해 주고 겨울에는 추위를 이기게 하는 두부찌개다. 만만한 두부찌개... 역시 최고다. 아!!! 맛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