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심해도 행복한 하루

by Chong Sook Lee
(그림: 이종숙)


나는 흔히 말하는 국가 공무원이다. 평생 동안 쉬지 않고 열심히 일하며 꼬박꼬박 세금 잘 냈다고 정년퇴직한 뒤로 일을 안 해도 월급을 준다. 월급을 타러 가지 않아도 은행 계좌로 들어오면 필요할 때 꺼내 쓰고 다 떨어질 때가 되면 귀신같이 알고 월급이 들어온다. 쓰는 돈이라고는 생활에 필요한 물건을 사는 것인데 별것 쓴 것도 없는데 남는 게 없다. 이럴 줄 알았으면 돈을 좀 더 벌어 놓을걸 걸 그랬다. 쇼핑센터에 가면 다들 입을 벌리고 돈을 달라고 하기 때문에 그냥 가만히 집에 있는 게 오히려 돈을 저금하는 것이다.


아무런 할 일도 없고 할 일이 있어도 하지 않는다. 오직 하는 일이 있다면 밥해먹고 누워서 자거나 가만히 앉아서 핸드폰을 보며 잡다한 유튜브나 텔레비전을 보며 뒹구는 것뿐이다. 그러다 눈이 피곤하고 전화를 잡고 있는 손이 피곤해지면 눈을 감고 듣다가 잠을 잔다. 새들이 날아다니고 해가 뜨고는 상관없이 아무런 의미도 목적도 없이 살아가는 나는 지금 어느 때보다 행복하다. 한참을 자고 눈을 뜨고 다시 전화와 논다. 뉴스를 읽고 화를 내고 욕을 하다가 쇼를 보고 코미디를 보며 히히덕 댄다.


특별한 날이 아닌데도 특별하게 산다. 옛날 고리짝 이야기를 들먹거리며 21세기를 살아간다. 꿈도 옛날에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에 있었던 일을 꾸며 그때로 돌아가 꿈속에서 만난 사람을 이야기하고 그때 분했던 이야기를 하며 다시 억울해하고 약 올렸던 이야기를 하며 다시 통쾌해하며 신난다. 오늘을 사는 것인지 아니면 과거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것인지 모른다. 친구가 많은데 친구와 놀지 않고 혼자 논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것은 혼자 있는 시간이다.


실컷 자고 일어나서 밥 먹고 또 자고 일어나서 전화를 보고 영화를 보고 드라마 보고 잔다. 지금이 제일 행복하고 더 이상 바랄 게 없다. 필요한 게 있으면 잠깐 나가서 장을 보고 다시 그 자리로 가서 앉아 있다 보면 피곤하여 옆에 개어놓은 담요로 몸 전체를 잘 덮고 잘 준비를 한다. 잠이 오기 전에 스마트 폰으로 음악을 틀어놓는다. 오래전 유행하던 유행가를 틀고 오지 않는 잠을 청한다. 어느새 손으로 잡고 있던 전화는 땅에 떨어지고 코를 골며 꿈나라로 간다.


한참 신나게 자다가 카톡이 오면 카톡을 읽는 둥 마는 둥 하다가 내용이 좋으면 친구들에게 보낸다. 다시 옆으로 누워 읽을거리를 열심히 찾으며 스마트폰으로 빠져든다. 아무도 만나지 않고 누구와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행복하다. 손안에 전화 하나만 있으면 만사가 해결된다. 밥을 먹고 놀다가 자다가 또 놀면 된다. 심심하여 시작한 빨래를 하고 청소를 하며 큰일을 한 것처럼 기분이 좋다. 설거지해놓은 마른 그릇을 잘 정리하고 빨래가 다되면 깨끗하게 접어 놓으면 기분이 좋다.


다시 자리에 앉는다. 할 일이 없으니 다시 전화를 본다. 아이들 사진을 보며 옛날로 돌아간다. 희미해져 가는 날들인데 사진을 보면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간다. 필요 없는 사진을 지우려다가 아이들에게 옛날 사진을 보낸다. 있는 사진인데 왜 자꾸 보내냐고 하는데도 그냥 보낸다. 할 수 있는 게 있음을 보여주기 라도 하듯이 쓸데없이 이것저것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보낸다. 아무것도 아니지만 심심한 나에게는 할 일이 되어준다. 보내주는 것 받고 읽다 보면 새로운 게 들어와서 또 보내며 같은 일을 반복하지만 싫증이 나지 않고 그것마저 없는 날은 괜히 무시당한 것 같아 일부러 일삼아한다.


시시해도 행복하다. 특별한 일이 없어도 심심하지 않다. 뒹굴뒹굴하다가 갑갑하면 가까운 쇼핑몰로 가서 한 바퀴 돌며 필요한 물건을 사 가지고 온다. 집에서 있는 것도 좋지만 나가서 한 바퀴 돌고 오면 기분전환이 되어 하루가 지루하지 않다. 코로나가 오래되어 이렇게 사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사람들을 만나고 커피를 마시며 수다를 떠는 것도 좋지만 이렇게 사는 것도 괜찮다. 때가 되면 만날 날이 올 것이니 성급해하지 말자. 오늘은 오늘대로 살면 된다. 심심하고 시시하다고 세상이 바뀌지 않는다.


코로나가 끝나면 어떻게 살아야 하나 하는 고민도 생긴다. 한동안은 못 만났던 사람들과 만나며 바쁘게 살 것이다. 식사도 하고 커피를 마시며 여행도 가며 그동안 하지 못한 것을 할 것이다. 영화관과 경기장을 가고 음악회와 뮤지컬도 다니며 재미있는 삶을 살 것이다. 그때가 되면 지금의 삶을 이야기하며 추억할지도 모른다. 지나간 것은 모두 아름답다. 사람들을 만나서 좋고 여행을 가서 좋듯이 시시하고 심심한 지금도 행복하다. 머지않아 봄이 오면 텃밭에서 노느라고 이렇게 뒹굴거리는 것도 못하는데 실컷 즐기며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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