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발이 하나둘 떨어져 길을 덮는다. 땅에 떨어지기 무섭게 녹아 흔적 없이 사라지지만 계속 내린다. 오래전에 내린 눈은 나뭇잎이나 먼지로 더럽혀져 보기 싫은데 새로 오는 눈이 덮으니 깨끗하다. 눈이 오지만 그리 춥지 않아 집에서 조금 떨어진 곳으로 방향을 잡았다. 해마다 이맘때쯤 눈으로 여러 가지 조각품을 만들어 놓고 구경할 수 있게 하는 눈축제를 하는 공원이다. 밤에는 여러 가지 색으로 된 불을 켜놓고 가족이나 연인들을 위한 낭만의 공간을 만들어 놓는다. 겨울이 길기 때문에 여러 가지 겨울 축제를 하는데 마침 구경할만할 것 같아 찾았다. 주중이라 사람들이 별로 없어 아주 한적하다. 공원에서 스키를 즐기는 사람들이 있고 우리처럼 걸으며 여러 가지 작품을 보는 사람도 몇몇 있다.
공원 한가운데는 커다란 호수가 있어 여름에는 오리들이 헤엄을 치고 한쪽에서는 페달보트를 타기도 한다. 사시사철 자전거를 타고 겨울에 호수가 얼면 사람들은 스케이트를 타며 추운 겨울을 즐긴다. 해마다 8월 초에 65여 개국이 넘는 나라들의 춤과 노래 그리고 음악과 음식을 선보이는 축제를 3박 4일 동안 한다. 각 나라의 자랑거리를 보여주고 사람들은 구경을 하며 갈채를 보내고 여러 가지 음식을 먹으며 미지의 나라를 체험하는 시간을 갖는다. 아이들이 어릴 때는 부모가 데리고 가고 자라면 친구들과 함께 가다가 애인이 생기면 데이트를 하며 구경을 하는 유일한 장소 중에 하나이다. 축제를 위해 많은 봉사원들이 동원되고 정부의 도움을 받으며 도시의 발전을 위해 최선을 다한다.
공원이 크고 넓기 때문에 계절마다 여러 가지 축제로 바쁘게 돌아간다. 봄에는 오리들이 찾아와 호숫가에서 여름 가을을 지내고 추위가 찾아오기 전에 남쪽나라로 떠난다. 여름에는 많은 사람들이 바비큐를 하며 숲 속의 오솔길을 걷는다. 가을에는 단풍이 숲을 물들이고 공원 옆으로 흐르는 강물을 보며 강기슭을 걷는다. 하얀 눈으로 덮여있는 공원을 남편과 걸으며 지난날을 이야기하다 보니 강가로 들어가는 입구가 보여 강기슭을 걸어본다. 언제 와도 좋고 언제 봐도 좋은 강이 하얗게 눈에 덮여 얼어있다. 눈을 맞으며 강기슭을 따라 걸으니 젊은 시절로 다시 돌아간 듯 낭만이 넘친다. 끝이 보이지 않는다. 한없이 걷고 싶은 마음이다. 오랜만에 와서인지 더없이 좋고 새롭다. 집에 있는 것도 좋지만 이렇게 나오니 신천지에 온 것처럼 행복하다. 강 건너편으로 걸어가고 싶지만 군데군데 녹기 시작한 모습이 보이니 자제해야 한다.
강 건너 꼭대기에 아름다운 집들이 보인다.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사시사철 멋진 풍경을 보며 계절을 맞고 보낼 것이다. 제일 먼저 강물이 녹는 것이 보일 것이고 새파란 나뭇잎들이 나오는 것을 바라보며 봄을 맞을 것이다. 여름에는 시원한 강물이 흐르는 것을 바라보고 사람들이 강에서 보트를 타고 낚시를 하는 것도 보며 단풍지는 숲을 보며 눈과 함께 오는 겨울을 바라볼 것이다. 그들은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며 계절을 만나고 남편과 나는 숲을 걸으며 오고 가는 계절을 만난다. 한참을 걸어서 가다 보니 다리가 보인다. 재작년 가을에 2시간 반을 걸어서 갔던 길이 한눈에 보인다. 단풍 진 길을 따라서 걸었는데 오늘은 하얀 눈을 밟으며 걷는다. 올까 말까 망설이다 부담 없이 나와서 작품을 구경하고 공원 한 바퀴 돌고 가려했는데 뜻밖에 강가를 걷게 되었다. 여러 번을 걷은 길인데 또 다르다. 사람도 변하듯 자연도 변한다. 없던 나무가 자라고 있던 나무가 쓰러져 있다.
어디서 온 얼음조각인지 삐딱하게 누워있고 나뭇가지가 물에 빠진 채 얼려서 하늘을 보고 있다. 왼쪽으로 눈 덮인 강이 끝없이 펼쳐져 있고 오른쪽으로는 눈 쌓인 절벽에 나무들이 강을 바라보며 서있다. 굵고 가는 나무, 크고 작은 나무, 비틀리고 엉킨 채 끌어안고 서로 기대고 자라는 나무들이 절벽에서 살아간다. 우리네 삶을 닮았다. 한참을 걷다 보니 다리가 아파 절벽을 타고 올라갔다. 눈에 빠지고 넘어지면서 간신히 길을 찾아 걷는다. 길이 없는데 길을 찾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길이 아니면 가지 말라는 말을 하나보다. 눈이 점점 많이 쏟아져서 눈앞을 가린다. 나무에 매달린 먹이통에서 다람쥐와 새들이 숨바꼭질을 하며 음식을 나눠먹는다. 서로 싸우지 않고 상생하는 모습이 보기 좋다. 사람들도 그러면 참 좋을 텐데... 하는 생각을 해본다.
호숫가를 돌아서 걸어본다. 백양나무가 가지를 늘어뜨리고 호수를 지킨다. 세상을 떠난 누군가의 가족이 고인을 기억하는 의자가 나무 아래에 놓여있다. 의자에 잠깐 앉아본다. 1926년에 태어나 2000년도에 생을 마감했고 고인의 영원한 안식을 원하는 가족들의 염원도 적혀있다. 감사의 마음으로 앉아 보고 다시 걸어본다. 하늘은 온통 회색이지만 마음은 가볍다. 새들이 창공을 신나게 날고 구름 속에 해가 뿌옇게 보인다. 세상은 본 만큼 안다고 한다. 알게 모르게 녹는 눈이 언젠가는 파란 잔디를 보여줄 것이다. 기다리지 말고 욕심내지 말고 오늘을 만나면 그날도 만나리라.
어느 날 때가 되면 겨울은 봄에게 자리를 내주고 떠날 것이다. 하염없이 내리는 눈을 바라본다. 오늘은 눈길을 걷지만 다가오는 봄에는 꽃길을 걸으며 가을에는 낙엽을 밟으며 걸을 것이다. 삶이란 계절처럼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며 앞으로 걸어가는 것임을 깨닫는다. 장애물을 피하고 돌아서 가다 보면 언젠가는 희망하는 시간을 만나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