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불던 바람이 아직 남았는지 여전히 분다. 햇살은 따뜻해 보여도 바람은 차지만 숲을 걸으니 상쾌하다. 참으로 오랜만에 하는 산책이다. 숲 속이라 그런지 바람은 없고 다람쥐들은 바쁘게 나무를 오르내린다. 전나무가 많아서 그런지 유난히 다람쥐들이 재롱을 부린다. 날이 따뜻해지면서 산책하는 사람들이 여러 가지 먹을 것을 가져다줘서 열심히 먹는다. 산책길이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해서 반질 반질 하지만 아이젠을 끼고 걸으니 미끄럽지 않다. 이른 아침이라 오고 가는 사람도 없고 다리 아래로 강물이 힘차게 흐르고 남쪽 숲의 눈이 많이 녹아 누런 흙이 보인다.
어느새 2월도 중순이고 머지않아 3월이 올 것을 생각하면 겨울이 간 것 같아 괜히 설렌다. 이곳의 봄은 4월이 지나야 조금씩 오지만 요즘에 길어진 해를 보면 봄도 머지않았음을 실감한다. 백양나무 사이로 보이는 햇살이 눈부시고 활엽수들은 어느새 뾰족한 움을 내밀고 있다. 머지않아 새파란 잎을 세상에 선보이며 "나 잘했지?" 하며 속삭일 것을 생각하니 추운 겨울을 견디어내고 서 있는 나무들이 너무 대견스럽다. 지난밤에 불어댄 바람 때문에 여러 나무들이 뿌리째 뽑혀서 누워있다. 견디다 못해 힘들어 누워있는 모습을 보니 사람이나 나무나 기운이 다하면 저렇게 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숲을 가로질러 흐르는 강물과 절벽이 아름다워 사진을 찍으며 서 있었더니 참새들이 주위를 맴돈다. 사람들이 음식을 주어서 그런지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는다. 주머니를 뒤져봐도 먹을 게 없어 사진만 찍고 말았는데 다음에는 과자라도 줘야겠다. 오르막에는 빙판이라서 옆으로 난 숲길을 따라 올라가니 쉬고 가는 의자가 기다리고 있다. 아래로는 강물이 흐르고 울창한 숲이 우거져 있다. 군데군데 눈이 쌓여있고 꼭대기에는 사방이 유리로 된 저택이 한눈에 보인다. 의자 앞에 서있는 나무에는 새집이 걸려있어 새들이 들락거리며 논다.
해는 중천에 떠있고 길에 쌓인 눈이 반사되어 세상이 하얗고 바람은 살랑거리며 오고 간다. 봄이 오지 않았어도 내 마음에는 이미 봄이 와 있다. 산책로를 따라 깊은 숲으로 들어가니 커다란 주택이 여러 채 모여 있다. 어떤 사람들이 사는 것일까. 산책로와 저택 사이에 보이지 않는 철망으로 된 담이 살짝 보이고 왼쪽으로는 낭떠러지 절벽이 보인다. 한여름에나 얼음이 녹는 계곡이 한눈에 들어온다. 여기저기 두꺼운 얼음이 쌓여있고 눈이 녹을 생각도 하지 않고 바람이 불 때마다 한기를 느끼게 한다. 한참을 걸어서 이마에 땀이 났는데 어느새 춥다.
아무도 없는 길을 따라 동네와 마주치는 곳까지 걸어가니 공사가 한창이다. 무엇을 고치는지 용접도 하고 망치소리도 들린다. 다시 온 길을 걸어 숲으로 걸어 들어가 본 파란 하늘에는 구름 한 점 없고 아무도 없는 숲길이 고요하다. 집에서 멀지 않아 자주 왔던 곳이라 언제 봐도 좋다. 오랜만에 왔는데도 변하지 않고 그대로 반겨주는 숲이다. 추웠던 겨울은 서서히 가고 봄도 서서히 온다. 강물은 힘차게 흘러서 바다를 향하고 세상은 다시 초록으로 변할 것이다. 오지 않을 것 같은 세월이 오고 가지 않을 것 같은 계절도 간다. 나무에 걸려있는 새 먹이통은 비어있는데 새들과 다람쥐들이 혹시나 하며 들여다본다. 숲 속의 많은 식구들이 나눠 먹으니 엄청난 양이 필요할 것이다.
걸어도 걸어도 싫증이 나지 않고 보고 또 봐도 좋은 숲을 걸으니 참 좋다. 텅 빈 숲에 사람들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리기 시작한다. 개를 데리고 산책을 하고 연인들이 데이트를 하고 노인들이 천천히 걷는다. 누구나 봄을 기다리는 마음이 간절한가 보다. 눈이 쌓여 있어도 눈밑으로 오는 봄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자연 같은데 눈을 쌓고 눈을 녹이며 바람으로 물기를 말리고 햇살을 나누며 옹기종기 모여 사는 산짐승들과 숲을 이룬다. 오늘 만나지 못한 나무들은 다음에 만나기로 하고 숲을 나간다.
언제나 반겨주는 숲이 있어 너무 좋다. 세상살이에 지쳐갈 때 일으켜주고 힘을 불어주는 자연이 너무 고맙다. 오며 가며 만난 그들이 있기에 삶이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