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과 함께 사노라면 봄도 오리라

by Chong Sook Lee
(사진:이종숙)


마지막 한파의 연속이다. 며칠 동안 내리던 눈이 끝인 하늘은 파랗고 오랜만에 보는 햇살은 눈부시다. 추워도 며칠 있으면 괜찮겠지 생각하면 별것 아니다. 사람의 생각이란 간사해서 생각하기에 따라 세상을 보는 눈길도 달라진다. 아직은 한겨울 같은 모습이라도 땅속으로 오는 봄을 막을 수 없다. 가을에는 겨울이 오는 게 싫어서 가을이 가지 말고 오래 머물기를 바란다. 나뭇잎들이 빨갛고 노랗게 물든 모습을 보면 가을이 가는 게 정말 싫다. 영원히 아름다운 가을과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할 때 바람이 나뭇잎을 흔들어 떨어 뜨린다. 아쉬운 마음에 떨어진 나뭇잎을 집어 들고 가을을 보낸다. 가을은 그렇게 갔어도 겨울이 오지 않기를 바라면서 겨울을 맞는다.


겨울이 싫다고 가을에서 봄이 되지 않음을 알기에 조용히 순응하며 받아들인다. 사람들의 옷이 점점 두꺼워지고 거리의 나무들이 앙상한 모습이 되어가며 본격적인 겨울을 맞는다. 싫어도 좋아도 바꿀 수 없는 계절의 순환을 보며 우리네 인생을 배운다. 좋은 날만 있으면 행복을 원하지도 않을 것이고 행복이 무엇인지 모를 것이다. 우리는 고통을 겪으며 행복을 배운다. 겨울이 없는 곳에서 사는 사람들에게 봄은 희망이 아니고 일상이기에 특별하지 않다. 오래도록 지속되는 전쟁으로 두려움에 떨고 있는 사람들에게 평화는 간절하지만 매일 평화를 누리고 사는 사람들에게 평화는 당연한 것과 같다. 바람이 불면 머리가 헝클어지고 마음도 심란한데 여전히 바람은 해야 할 일을 하고 떠난다.


세상 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시작과 끝이 있어 누구도 마음대로 할 수 없다. 오래전 어느 해 겨울에 영하 28도가 되는 날이 생각난다. 나와 아이들은 추워서 꼼짝 못 하고 집안에 있을 때 여기에서 5시간 떨어진 북쪽으로 2주 동안 출장을 갔던 남편이 집에 왔다. 우리는 추워서 벌벌 떨고 있는데 남편은 덥다며 티셔츠 차림으로 왔다 갔다 한다. 의아해서 물어보니 그곳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란다. 그때 당시 남편이 있던 곳은 매일매일 영하 47도가 넘었기 때문에 남편에게 이곳은 더웠다. 사람은 어디를 가서 무엇을 해도 다 적응하며 살게 된다. 아직은 봄을 생각하기 이르지만 마음은 벌써 3월로 다가간다.


한국은 벌써부터 여기저기 꽃소식을 알리고 제주도에는 노란 유채꽃이 만발한 사진을 보니 마냥 부럽기만 하다. 그래도 고국의 3월은 아직 춥다. 3월에 두꺼운 겨울 코트를 벗고 교복만 입고 학교를 갈 때 추워서 발발 떨던 생각이 난다. 봄이 왔다고 마음이 가벼워지지만 꽃샘추위는 겨울 못지않은 추위를 몰고 오기도 한다. 남들이 벗고 간다고 덩달아 코트를 벗고 고생했던 날들은 지금은 아름다운 추억이 되었고 봄은 여전히 따뜻하지 않다. 가을을 보내기 싫어도 겨울은 찾아오고 겨울이 빨리 가기를 원해도 봄은 때가 되어야 온다. 일찍 이민 온 선배들이 자리를 잡고 편안하게 사는 게 많이도 부러웠다. 어떻게 하면 그분들처럼 잘 살까 생각하며 열심히 사는 동안 세월이 갔다.


많은 선배들이 연로해 떠나는 사이 우리는 이민 생활에 자리를 잡고 오늘을 산다. 처음에 만났던 고난의 시절을 견디지 못했다면 오늘을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주위 사람들이 힘든 삶을 견디지 못하고 역이민을 가고 타주로 이사를 갔다. 어디를 가도 아는 사람들이 없는 우리로서는 몇 년 동안 살 던 이곳이 오히려 나았다. 힘들어도 고통스러워도 우리를 사랑해주는 이웃이 있고 사랑하는 친구들이 있기에 떠나지 않고 살았다. 자연처럼 삶에도 계절이 있다. 봄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행복을 기다리고 여름처럼 뜨겁게 사랑하며 가을 안에서 풍성한 열매를 맺고 산다. 추운 겨울이 지나면 따뜻한 봄이 오듯이 우리네 삶도 고생 끝에 낙이 올 것을 믿으며 산다.


일찍 봄을 맞고 겨울 없이 사는 열대지방에서도 나름대로의 고충이 있고 겨울이 길고 여름이 짧은 이곳에서도 행복은 있다. 한국처럼 습한 여름이 아니고 건조하기 때문에 땀이 나지 않고 상쾌하다. 이곳에 온 뒤로 몇 해 동안은 여름에도 추워서 스웨터를 입고 살았다. 오히려 겨울보다 더 추운 것 같아서 습한 한국 여름철 생각이 간절했지만 세월이 가고 피부도 적응을 하여 지금은 오히려 한국 여름 날씨를 못 견뎌하게 되었다. 그리고 지구 온난화로 인하여 추운 곳이 따뜻해지고 더운 곳이 추워지며 세계의 날씨가 바뀌고 있다. 봄이 와도 달라질 것은 없어도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이유 없이 봄이 기다려진다. 코로나가 아직도 극성을 부리지만 머지않아 가라앉을 것이고 우리들의 일상도 돌아올 것이다.


세월이 가는 게 아쉽지만 가야 할 시간이라면 가고 와야 할 시간은 올 것이다. 어제는 하늘이 찌푸리고 인상을 쓰고 있었는데 오늘은 파란 하늘로 활짝 웃는다. 하늘이 품고 있던 눈을 다 내려놓으니 좋은가보다. 사람도 걱정 근심이 많으면 마음이 무겁고 인상을 쓰고 마음을 비우고 내려놓으면 미소가 절로 나온다. 오직 한번 사는 인생인데 웃으며 살아야 한다. 넘어지면 일어나고 앞으로 걷다 보면 불행 속에서도 봄은 온다. 오라고 해서 올봄은 아니고 가라고 해서 갈 겨울이 아니다. 어제를 살았듯이 오늘을 살다 보면 내일도 오는 것처럼 겨울과 함께 사노라면 머지않아 봄도 오리라.

(사진:이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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