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밤에 토끼들이 뜰에서 데이트를 했나 보다. 소나무 아래에서 사랑을 하고 뜰에서 놀며 춤도 췄나 보다. 바쁘게 오고 간 토끼 발자국이 선명하다. 어디서 무엇을 하며 사는지 밤이면 약속이나 한 듯 우리 집 앞뜰 나무 아래서 재회하며 살아간다. 비같이 가느다란 눈이 하루 종일 밤새 내렸다. 겨울은 가기 싫어하고 봄은 오고 싶어 하는지 눈은 눈인데 이슬비 같이 내려도 쌓이는 게 신기하다. 눈이 많이 오지 않았지만 청소하지 않고 그냥 넘어갈 수 없을 만큼 왔다. 하늘은 푸르고 하얀 뭉게구름이 두둥실 흘러가고 바람은 차다. 2월의 온도가 영하 20도에 가깝고 체감온도는 영하 25인데 오후에는 조금 올라가지 않을까 생각된다.
정월에 김칫독 깨진다 는 말처럼 정월달이 춥기는 하지만 며칠 지나면 3월인데 너무 춥다. 봄이 오기 전에 더 이상 춥지 않을 것 같아서 벽난로를 깨끗이 청소했던 남편이 벽난로에 나무를 땐다. 집안이 훈훈하고 겨울이 가기 전에 한번 더 낭만을 엿보니 기분이 좋다. 벽난로에서는 장작이 빨갛게 타고 창 밖에서 새들이 짹짹 거리는 소리가 들리고 남편이 좋아하는 클래식 '슈베르트의 송어'가 멋지게 울려 퍼진다. 아무리 추운 날이라도 나무 몇 개로 추위를 잊으며 낭만의 시간을 맞는다. 빨갛게 타오르는 불꽃을 보면 이상하게 생각이 많아진다. 옛날로 돌아가기도 하고 잊고 살았던 추억도 되살아 난다.
불꽃 속에는 그리움이 피어나서 만날 수 없는 사람들이 생각이 난다. 탁탁 소리를 내며 정신없이 타오르는 벽난로를 한동안 바라보며 과거로 갔다가 미래로 갔다가 현재로 되돌아오기도 한다. 삶 이란 어쩌면 저렇게 타오르는 불꽃같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주 작은 불씨 하나가 불쏘시개에 불이 붙어 타오르고 나무를 끝에서부터 태운다. 몇 개의 나무가 가지런히 누워서 서로의 불을 나누며 온몸을 태우고 더 이상 태울 것이 없어지면 조용히 꺼진다. 때로는 꺼진 듯 허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 불씨가 남아 있어 다시 살아나 화재를 불러오기도 하기에 꺼진 불도 다시 보자 라는 말이 생겼나 보다.
(사진:이종숙)
빨갛게 타오르던 불이 완전히 꺼졌다. 아무런 불꽃도 보이지 않고 그저 희무끄레하게 탄 나무가 바닥에 누워 있다. 빨간 불꽃은 상상도 못 하게 초라한 재가 되어 있는 모습이 허망하다. 앞만 보고 정신없이 살아왔는데 열정도 정렬도 없이 꺼져가는 불꽃처럼 살아가는 지금의 삶을 보는 것 같다. 우리가 살아가는 삶에도 화려하게 필 때가 있고 힘없이 꺼질 때가 있음을 깨닫게 된다. 해마다 주위에서 여러 사람들이 생을 마감한다.
아이들이 태어나고 자라듯이 사람들도 늙고 병들어 하나씩 떠난다. 비가 오고 바람이 불고 나면 힘없는 나무들이 쓰러져 눕는다. 어제의 삶은 그렇게 끝이 나고 어딘가에서는 땅을 헤집고 나무들이 세상에 나온다. 보이던 것이 없어지고 보이지 않던 새로운 것이 자리를 채우며 삶은 이어진다. 2월은 겨울을 붙잡고 3월은 봄을 데려다준다. 가고 싶지 않아도 가야 하듯이 온 것도 영원히 머무를 수는 없다. 해가 길어지고 있다. 태양은 쌓인 눈을 녹이며 세상을 바꾼다. 오는 봄을 막을 수 없고 가는 겨울을 기약하며 보내야 한다.
세상만사 모든 것이 보고 싶고 기다려지는 게 인지상정이다. 벽난로 불꽃을 다독이며 아무런 큰일 없이 잘 넘긴 지난겨울을 감사하고 새로 찾아오는 봄을 기다린다. 봄이 와도 특별히 할 것은 없지만 괜히 좋다. 추운 겨울을 헤치고 봄이 오는 길이 험난해도 기쁘게 맞고 싶다. 꽃샘바람이 심하게 불어도 다시 겨울로 돌아가지 않는다. 혹독한 바람이 꽃을 만들고 땅이 문을 열으면 세상은 아름답게 피어날 것을 생각하면 가슴이 뛴다.
눈 덮인 뜰을 바라보며 봄을 생각하게 하는 2월은 그래서 아름답다. 희망이 생기고 꿈을 꾸게 하는 2월이 나는 좋다. 봄이 오지 않았어도 봄을 기다리게 하기에 좋다. 2월은 다가 올 봄을 생각하며 계획할 수 있어 좋다. 3월을 가져다 주기에 2월이 더욱 사랑스럽다. 아직은 추워도 일찍 해가 뜨고늦게 해가 지기에 2월이 아름답다. 2월이 가기 전에 사랑을 고백할 수 있어 너무나 행복하다.2월은 꿈이고 희망이며감사하고 고백하는 달이기에 좋다. 봄을 품은 2월이 간다. 소나무에 눈이 내려 하얀 꽃이 핀 것처럼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