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난꾸러기 바람이 숲을 찾아갔습니다. 잠자던 숲이 깜짝 놀라 깨어 보니 심술궂은 바람이 여기저기 쑤시고 다닙니다. 숲은 화가 많이 났습니다. 조금 더 잘 수 있었는데 바람 때문에 늦잠을 잘 수 없었기 때문에 투덜거립니다. 나무들이 한 마디씩 하다 보니 숲이 아주 시끄럽습니다. 기왕에 잠을 더 이상 자지 못할 바엔 바람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나 실컷 해보자고 했어요. 듣거나 말거나 나무들의 수다가 시작되었어요.
키 큰 나무:
겨울이 너무 추워서 머리가 시려요. 바람이 나에게만 와서 나만 괴롭혀서 싫어요.
작은 나무:
큰 나무들이 햇빛을 가려서 겨우내 햇빛 구경을 못해 더 이상 키가 자라지 못해요.
비쩍 마른나무:
굵은 나무들이 먹을 것을 다 먹어서
먹을 게 없어 살도 안 찌고 자꾸만 말라갑니다.
뚱뚱한 나무:
더 크게 자라고 싶은데 작은 나무들이 옆에서 가로막아서 더 이상 커질 수가 없습니다.
비틀린 나무:
크고 굵은 나무들이 햇볕을 가리고 강한 바람들이 내 몸을 빠르게 스쳐가서 허리가 굽었어요.
넘어진 나무:
더 이상 버틸 기운이 없어 넘어졌어요. 이제 누워서 하늘을 보는 게 편합니다.
옆에 있는 나무에게 기댄 채 서있는 나무:
힘들어서 누우려고 했는데 옆에 있는 나무가 기대라고 해서 고맙게도 기대며 살아요.
각자 할 말을 하느라 숲은 시끄러워 견딜 수 없었습니다. 나무들이 그토록 수다스러운지 정말 몰랐습니다. 꺽다리 나무들이 머리를 흔들어 댑니다. 그 아래 서있는 나무들은 팔을 흔들며 춤을 추는데 질세라 옆에 있는 작은 나무들도 열심히 흔들어 댑니다. 숲이 떠나갈 듯 시끄러워도 바람을 쫓아낼 수 없습니다.
바람 때문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고 나무들은 잠도 잘 수 없게 되었는데 바람은 떠날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나무 위에 있던 눈이 땅으로 떨어집니다. 심하게 불던 바람이 구름을 불러 해를 숨겨 버립니다. 갑자기 숲 속이 깜깜해집니다. 나무들은 수다를 멈추며 하늘을 바라봅니다. 바람은 어디로 갔는지 아무 소리 없는 숲은 고요합니다. 나무들이 하는 불평불만이 시끄러웠는지 누워있는 나무 옆으로 가서 누워있던 바람이 생각합니다. 괜히 숲으로 와서 나무들의 단잠을 깼나 하며 은근히 걱정을 합니다. 나무들의 수다 소리가 시끄러워 숨어있던 다람쥐가 조용해진 오솔길로 살금살금 기어 나옵니다. 바람 소리도 들리지 않고 나무들의 수다 소리도 없는 조용한 숲은 이제 다람쥐 차지입니다. 겨우내 숨겨 놓았던 해바라기 씨를 까먹으며 나무를 오르내립니다.
계곡물이 녹아서 새들이 나와 놀고 있습니다. 참새인 줄 알았는데 자세히 보니 로빈입니다. 한두 마리가 아니고 수십 마리가 되는 로빈이 물가에서 회의를 합니다. 이리저리 날아다니고 나뭇가지에 붙어서 무언가를 먹고 있습니다. 다른 계곡과는 다르게 물이 녹아 있는 곳인데 무언가 먹을 게 있나 봅니다. 대장 로빈을 뽑기 위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뭇가지에 다닥다닥 붙어 있고 날아갔다 다시 와서 부산을 떠는데 이유를 알 수 없습니다. 조금 떨어진 곳에 계곡이 완전히 녹았는데 멸치 같은 생선들이 물속에서 헤엄을 치는 모습이 보입니다.
아무 일 없이 잘 노는 세상에 바람은 심술이 나서 다시 한번 심하게 불어 댑니다. 숲은 다시 시끄러운 나무들의 수다가 시작됩니다. 나무들이 미친 듯이 춤을 춥니다. 이유를 알 수 없이 부는 바람 때문에 정신이 하나도 없습니다. 나무들은 다시 하고 싶은 말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큰 나무가 먼저 입을 엽니다.
키 큰 나무:
이토록 바람 부는 날에 혼자 있었으면 외로울 텐데 같이 있어서 행복합니다.
작은 나무:
큰 나무가 눈과 바람과 비를 막아주어 고맙습니다.
비쩍 마른나무:
이만큼 자라게 된 것은 옆에 사는 나무가 도와주었기에 가능했어요. 너무나 고마워요.
뚱뚱한 나무:
혼자만 많이 먹어 미안해요.
앞으로는 같이 나누며 살아갈게요.
비틀린 나무:
큰 나무도 작은 나무도 모두 고마워요.
하늘을 전부 가리지 않고 땅을 전부 차지하지 않고 외로운 나에게 빛을 주고 물을 마시게 해 주며 옆에 있어서 너무 감사합니다.
넘어진 나무:
그거 봐요. 그렇게 불평불만을 하면 서로가 밉고 원망스럽지만 고맙게 생각하면 행복해요.
옆에 있는 나무에게 기대고 있는 나무:
혼자 있으면 땅으로 쓰러졌을 텐데 옆에 있는 친구가 있어 기대고 살아갑니다. 서로서로 의지하면 비가 오고 눈이 와도 무섭지 않아요.
오늘처럼 바람이 찾아와 흔들어대도 둘이 힘을 합쳐서 견딜 수 있어요.
나무들은 다시 행복해졌습니다.
서로에게 손가락질하며 원망하고 미워하는 대신에 서로가 있어 감사하다고 생각하면 너무나 행복합니다.
바람은 여전히 숲 속을 흔들어도 나무들은 서로에게 의지하면서 오늘 하루도 잘 살아갑니다. 나무들의 수다 소리가 정겹게 들려오는 숲에 평화가 찾아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