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새 지붕에 서리가 하얗게 내렸다. 여기저기서 봄소식, 꽃소식이 전해지는데 이곳에 봄이 오는 길이 참으로 험난하다. 봄이란 것이 올까 말까 하면서 오다 말고 한눈팔며 여기저기 구경하고 쉬면서 온다. 결국 목적지에 다다르게 되리라 생각하며 느긋하게 온다. 기다리는 사람들의 마음은 아랑곳하지 않고 볼 것 다 보고 할 것 다하며 오는 것 같다. 올 때가 되면 자연히 올 텐데 때가 되기도 전에 안 온다고 괜히 안달한다. 겨울도 아직 할 일이 남았는데 자꾸 밀쳐 내며 올 생각이 없는 봄만 기다린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봄은 잠깐 다녀가는 계절인데 온통 사랑을 받는다. 겨울이 다가오기도 전에 봄을 만나고 싶어 한다. 봄이 오면 무엇을 할까 계획을 세우며 막연히 기다리지만 봄이 다녀간지도 모르며 여름을 맞는다.
꽃샘바람에 봄이 몸살을 앓듯이 우리네 마음도 갈팡질팡한다. 기다리는 봄을 구경하기 위해 멀리 떠나서 변덕스러운 날씨 때문에 봄을 만나지 못한 채 돌아오기도 한다. 사람들이 봄을 기다리다 지쳐갈 때 봄은 살짝 얼굴을 보여주고 여름에게 자리를 양보한다. 살며시 왔다가 슬그머니 가는 봄이 아쉬워 우리는 미리부터 마음속에 봄을 키운다. 상상의 봄을 만들고 희망하며 산다. 봄을 맞기 위해 지구는 난리가 났다. 산불이 나고 홍수가 나고 폭설이 내린다. 그냥 오면 좋은데 험난한 여행을 하며 온다. 겨울 동안 웅크리고 가만히 있던 자연이 기지개를 심하게 켜며 온다. 일 년을 기다린 봄이 요란스럽게 온다.
인간들에게 정신 차리라고 미리 연락을 하는 것 같다. 아침에 잠깐 숲으로 산책을 다녀왔다. 며칠 사이에 얌전하던 숲이 발칵 뒤집혔다. 꽁꽁 얼었던 계곡물이 한꺼번에 녹아서 산책로를 점령해 버렸다. 산책로가 얼음판으로 변해서 통행을 금한다는 푯말이 붙어있다. 유난히 눈이 많이 내린 겨울인데 중간에 얼고 녹기를 반복하더니 계곡물이 녹은 곳도 있고 아직 얼어있는 곳도 있다. 녹은 물이 얼음을 뚫고 가지 못하고 넘쳐서 산책로로 흘러 밤새 얼어 스케이트 장이 생겼다, 물은 가고 싶은 데로 간다. 물길을 막을 수 없다. 흐르는 물이 길을 찾을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세상사와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든다. 마음대로 안 되는 게 아니라 기다려야 한다. 억지로 얼음을 밟고 산책을 할 수도 있겠지만 굳이 그럴 필요 없이 돌아서 가든지 나중에 하면 된다.
봄은 기다림이고 그리움이다. 하고 싶은 것을 위해 기다리고 만나지 못하는 사람들을 그리워하는 마음이다. 숲 속에 봄이 오려면 앞으로 두 달 정도의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5 월이 되면 오지 말라고 해도 봄이 온다. 그토록 기다려온 봄은 사람들의 마음을 본체만체하고 제 할 일을 한다. 양지쪽에 노란 민들레를 피우고 파란 하늘에 새가 날아다니며 골짜기마다 풀들이 자랄 때 봄은 떠나가는 봄을 다시 그리워한다. 봄이란 무엇일까? 계절의 여왕이고 삶의 희망이다. 내일을 생각하고 과거를 추억하며 오늘을 사랑하는 것이다.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생명이 태어나고 자라는 봄처럼 우리의 마음속에는 희망이라는 봄이 있어 아무리 힘들어도 결코 쓰러지지 않는 이유다. 두꺼운 얼음을 녹이는 태양이 있고 세상을 뒤집을 듯 불어 대는 바람이 있어 삶은 끝없이 이어진다.
비가 와서 마른 것을 적시고 바람으로 젖은 것을 말린다. 세상의 모든 것은 모두 필요한 것이다. 추운 것도, 더운 것도 이유가 있고 산불과 홍수도 원인이 있다. 자연은 인간에게 가진 것을 다 내어 준다. 자연에 감사하고 자연을 따라 살면 자연재해를 조금은 줄일 수 있을 텐데 인간은 자연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지구가 화가 난 줄도 모르고 어리석은 인간은 하고 싶은 대로 한다. 뿌린 대로 거둔다고 우리의 미래를 위해 지금 잘 살아야 한다. 오지 않은 내일을 모른다고 오늘만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자연은 지금 조금씩 보여주고 있다. 전쟁과 굶주림과 전염병이 쉴 새 없이 창궐하는 시대에 산다. 거부할 수도, 피할 수도 없다.
무심코 버린 물건이 쓰레기산이 만들어지고 바닷속으로 흘러들러 간 쓰레기를 생선이 먹고 떼죽음을 당한다. 미세 플라스틱을 먹은 생선을 사람이 먹고 이름 모를 병에 걸려 고통스러워한다. 과학자들은 약을 만들고 사람들은 합병증이 생기고 약을 한 주먹씩 먹으며 살려고 발버둥 치는 현실이다. 온난화로 갑자기 따뜻해진 날씨에 꽃이 핀다. 날씨가 따뜻하니까 겨울인 줄 모르고 벌들이 꿀을 빨러 나왔다가 갑자기 온도가 내려가는 바람에 수많은 벌들이 얼어 죽었단다.
자연이 거꾸로 돌아가고 계절이 엉망이 된다. 봄에 폭설이 오고 겨울에 홍수가 나는데 어디에 호소할 데가 없다. 지붕에 하얗게 내린 서리가 봄 햇살로 금방 녹아버린 것을 보니 세상이 아무리 어수선해도 봄은 오리라 믿는다. 전쟁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하루빨리 따스한 봄을 맞아 평화를 되찾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