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매일 하루라는 오늘을 만난다. 어제는 막을 내렸고 오늘이라는 하루의막이 올랐다. 오늘은 어떤 하루가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바람이 심하게 분다. 시속 60-70km로 불어대는 바람은 벽난로 굴뚝 뚜껑을 열었다 닫았다 한다. 새벽 내내 시끄럽다. 지금은 아직 해가 뜨지 않은 밖은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지만 하늘은 성난 모습을 하고 있다. 먹구름이 두껍게 하늘을 가렸는데 바람까지 불어서 더 심란하다. 조금 있으면 아들이 손주 둘을 데리고 아침식사를 하러 온다. 며느리는 집 앞에서 버스를 타고 출근을 하고 아들은 출근길에 잠시 들려서 아침도 먹고 애들도 데려다 놓는다. 늘 외할머니가 손주들을 보시는데 3주 전에 필리핀 여행을 가셔서 우리가 봐준다. 9살과 6살짜리 아이들이라 웬만한 것은 저희들이 알아서 하니 그리 많은 손길은 필요치 않다. 그저 밥 먹이고 학교에 데려다주고 학교 끝나면 데려와 밥을 먹이면 된다. 아들이 퇴근하는 길에 들려서 아이들을 데려가면 우리의 하루 일과가 끝난다.
아침은 보통 서양식이다. 베이컨을 굽고 감자도 볶는다. 계란과 토스트를 만들고 커피를 내리면 아침식사 준비가 끝난다. 오랜 세월 먹어 온 서양식 아침이라 만드는 나도 쉽고 먹는 식구들도 다 맛있게 먹는다. 식구들이 맛있게 먹으니 나는 더 이상 바랄 게 없다. 아들은 식사를 하고 출근을 하고 우리는 등교시간에 맞춰 천천히 준비한다. 이곳은 아직 겨울이고 밖에는 눈이 많이 쌓여있기 때문에 아이들도 두꺼운 바지와 코트로 무장을 한다. 장갑도 끼고 털모자도 쓰고 목도리도 두른다. 차에 타고 가면서 차에 히터도 틀고 의자도 따뜻하게 온열기를 틀어 놓는다. 의자가 따끈따끈 하니 기분이 좋다.
차를 타고 학교로 향한다. 학교는 우리 집에서 차로 15분 정도 떨어져 있다. 하늘은 여전히 성난 모습을 하고 있지만 동녘 하늘에서 해가 구름을 뚫고 나온다.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는 태양이 눈부시다. 등교시간과 출근시간이라서 길거리는 차가 많다. 서로서로 제갈길을 가느라 바쁘다. 아파트 단지를 지나 네거리를 지나 왼쪽으로 차를 돌린다. 오른쪽에 공동묘지가 있다. 많은 사람들이 잠들어 있다. 여기저기 화병에 꽃들이 꽂혀 있다. 비석이 바닥에 있어 겨울에는 눈에 덮여 보이지 않는다. 죽으면 가서 있게 되는 곳이다 생각하며 무심코 지나간다. 10년 전만 해도 그곳이 도로 끝이었는데 지금은 새동네 초입이 되었다.
앞차를 따라 학교로 가는 길로 접어든다. 바람은 여전히 불어댄다. 어린아이들은 날아갈 수 있겠다 생각이 든다. 고학년 학부모들은 데려다만 놓고 가지만 저학년 학부모들은 손을 잡고 걸어서 학교 앞까지 대려다 준다. 눈이 두껍게 쌓인 길을 걸어간다. 손주는 할아버지하고 앞서 가고 손녀는 할머니 하고 뒤를 따라간다. 벌써 학교 운동장에는 학생들이 많이 모여들기 시작한다. 뛰고 달리며 노는 아이들도 있고 눈 쌓아 놓은데에서 미끄럼을 타며 놀기도 한다. 장난감이 없어도 아이들은 놀거리를 찾아서 바쁘게 논다. 한 아이가 여기저기 둥글어 다니는 얼음조각들을 들어다가 한 군데 쌓아 놓기 시작한다. 주위에 놀던 아이들도 그 아이가 하는 놀이가 재미있어 보이는지 다들 얼음 조각을 올려놓는다.
학교 운동장에는 나무와 바람과 눈이 있다.(사진:이종숙)
걱정도 근심도 없어 보인다. 시작종이 울린다. 아이들이 모여든다. 멀리서 놀던 애들은 뛰어오고 가까이에 있던 애들은 줄을 서서 차례가 오기를 기다린다. 하나 둘 그 많던 학생들이 다 들어가고 학교 운동장은 텅 비어 버린다. 오직 눈 위에 는 뛰어놀던 아이들 발자국과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들이 운동장을 지킨다. 우리는 급히 막간을 이용해서 체육관으로 간다. 아직 이른 시간이라 주차장은 많이 비어있다. 우리가 원하는 곳에 주차를 할 수 있는 것이 기분 좋다. 체육관을 다닌 지 2년 반이 되었다. 매일은 못하지만 자주 가다 보니 아는 사람들이 많다. 오며 가며 인사를 하고 운동을 시작한다. 몇 년 동안 같은 곳에서 거의 같은 시간에 만나 운동을 하다 보니 가족 이야기도 스스럼없이 하게 된다.
걱정거리가 있거나 자랑거리가 있으면 가다 말고 서서 재미있게 이야기한다. 전혀 이렇게 모르는 사람들이 자주 만나다 보니 친구가 된다. 중국사람, 인도 사람, 어느 나라 사람 할 것 없이 영어로 소통하며 살아간다. 오랫동안 사귄 친구처럼 반갑게 대한다. 며칠 못 보면 궁금하고 걱정이 된다. 혹시라도 여행 갈 때는 미리 이야기를 한다. 자식들보다 더 자주 만나는 사람들이다. 학교에서 만난 사람도 만나고 직장에서 만난 사람도 만난다. 또한 식당 할 때 손님으로 오던 사람도 만난다. 언제 어디서 누구를 만날지 모른다. 생각지 못하던 사람을 우연히 만날 때마다 순간순간 잘 살아가야 함을 실감한다. 친절하게 대하고 배려해주면 그들도 똑같이 해준다.
운동기구로 운동을 하고 트랙을 몇 바퀴 걸어 다니고 아래층에 있는 수영장으로 내려간다. 얕은 곳은 어린아이들이 수영을 하고, 중간은 수영 연습을 하게 되어 있고 깊은 곳은 레인 수영을 하는 사람들이 수영을 한다. 한번 가는데 25미터이다. 앞으로 열 번 뒤로 열 번 하면 500미터를 하게 된다. 기운이 있으면 더 하지만 그 정도면 충분하다. 그 옆에는 울 풀이 있다. 뜨거운 데서 10분 정도 있다가 사우나에 5분 정도 있다가 나오면 운동은 끝이다. 2시간 정도의 시간이 면 대충 운동은 끝난다. 아침에는 오고 싶지 않아도 이렇게 와서 운동을 하고 나면 기분이 아주 상쾌하다. 유혹을 물리치고 잘 왔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오전 시간을 보내고 점심을 먹고 조금 쉬다가 아이들을 데려온다. 하루 종일 뛰고 공부하느라 배가 무척 고픈가 보다. 맛있게 먹고 하루 종일 보지 못한 텔레비전을 보며 휴식을 취하고 아들은 퇴근길에 아이들을 데리고 간다. 이렇게 우리의 하루는 끝이 난다. 지금 이 시각부터는 우리 둘의 자유시간이다. 일단 5시 뉴스를 본다. 국내 뉴스 국제 뉴스를 보고 저녁을 해 먹고 드라마를 보며 하루가 끝이 난다. 요즘에 보는 드라마는 종영된 '낭만 닥터 김사부'와 '이태원 클래스'이다. '나는 자연인이다' 도 보고 '황금연못'도 본다. '진품 명품'도 보고 '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도 본다. '걸어서 세계 속으로' 와 '다큐멘터리'도 즐겨보는 것 중에 하나이다. 나의 하루는 또 지나간다. 오늘 처음 만난 나의 하루는 이렇게 막을 내린다. 내일은 어떤 날이 될까 실로 궁금하다. 내일은 내 생애 처음 맞는 날이니까 멋진 날이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