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은 어디에서 올까? 건강한 사람이 갑자기 암 선고를 받고, 멀쩡하던 사람이 심장마비로 떠난다. 한 치 앞을 모르고 내일을 알 수 없는 게 인생이라는 말을 한다. 갑자기 암이나 심장병이 생긴 것이 아니라 모르고 있다가 알게 된 것이다. 요즘에는 수술이 발달되어 대수술을 하지 않고도 큰 병을 고친다. 옛날에 아팠던 사람들은 배에 칼자국이 길게 나 있는데 요즘엔 간단한 복강경 수술로 상처가 거의 보이지 않는다. 둘째 아들을 제왕절개로 출산을 하는 과정에 인턴들이 실습을 했다. 양수가 터지고 병원에 가서 사진을 찍어보니 아이가 발부터 나오려 한다는 말을 들었다. 불과 며칠 전에 산부인과에 갔을 때는 아기가 나오려면 아직 멀었다는 말을 들었는데 예정일을 열흘 앞두고 아기가 나온다니 황당한 소식이었다.
갑작스러운 변화에 어쩔 수 없이 수술을 하기 전에 인턴 대여섯 명이 달려들어 증상을 물으며 사인을 요구했다. 영어도 잘 못하던 때라 대충 눈치를 보니 수술을 하는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나도 책임지지 않는다는 내용이었다. 내용이 어찌 되었든 아기는 나올 준비가 다 된 상태에서 한시라도 빨리 수술을 할 수밖에 없었다. 급하게 수술을 끝내고 나와 마취가 풀릴 즈음 어디선가 간호사가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아들입니다. 축하드려요".
비몽사몽 깨어나 아기를 보고 다시 잠이 들어 깨어났을 때는 수술 자리에 심한 통증으로 견딜 수 없었다. 생살을 잘랐으니 아픈 게 당연하다 생각하고 며칠을 참고 기다려 퇴원하는 날이 다가왔다.
퇴원하는 날, 의사가 수술 부위를 보더니 염증이 생겼다고 퇴원을 미루었다. 수술부위가 빨갛게 부풀어 올랐고 뱃속 어딘가가 가려운데 살 속이라 긁을 수가 없었다. 워낙에 상처가 잘 아무는 피부를 타고나서 생전 피부에 문제가 된 적 없이 살아왔는데 수술 자리가 염증이 생겼다니 믿어지지 않았다. 하루를 더 있다가 약을 받아 가지고 퇴원을 한 뒤로 오랫동안 가려움증을 가지고 살아야 했다. 비가 오기 전이나 날씨가 꾸물대면 가려움증이 더 심해져 손으로 후벼 파고 싶을 정도로 가려웠지만 속 시원하게 긁지 못하고 손톱으로 꼭꼭 눌러가며 견뎌야 했다. 수술 자국은 굵고 길게 지렁이처럼 되어 있고 의사는 시간이 가야 된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연년생 아기 둘을 데리고 안 그래도 피곤하고 힘든 상태에 배까지 가려워서 신경이 곤두서도 누구에게 하소연할 수가 없었다. 몸은 바싹 말라가고 아기 젖은 나오지 않고 말라 붙어 분유를 먹이며 시간이 갔다.
그러다 다시 셋째가 들어서서 전문의를 찾아 그동안의 고통을 이야기했다. 의사는 수술 과정에서 문제가 있었는지 모르지만 셋째를 낳을 때 깨끗하게 해 주겠다는 약속을 했다. 셋째 출산 때 정말 전문의는 말끔하게 수술을 잘해주고 그 뒤로 가려움증은 없어졌다. 살면서 의사와 변호사와 은행가를 잘 만나는 게 3대 행운이라고 한다. 그때 그 장소에서 누구를 만나 무엇을 하는가에 따라 사람의 운명이 달라진다. 아무 병도 없는 줄 알고 살다가 더 늦기 전에 건강진단받고 병을 찾은 사람도 있고 병이 있어도 죽을 때까지 모르고 사는 사람도 많다. 조기발견이나 조기 치료도 좋지만 긁어 부스럼 만드는 경우도 적지 않다. 모르면 용감하고 아는 게 병인 것처럼 굳이 알려고 하지 않아도 되는데 미리 알게 되어 고생하는 경우도 있다. 사는 것도, 죽는 것도, 시름시름 앓는 것도, 운명이라면 억지일까? 병원에 가지 않고 살다가 아파서 큰 병에 걸린 것을 알 때는 이미 늦은 경우도 있고 증상이 없는데 말기암이라는 진단을 받기도 한다.
건강하게 잘 살아가던 조카며느리는 2년 반 전 9월에 우연히 받은 건강진단에서 간암 말기라는 진단을 받았다. 이미 치료시기를 놓친 상태에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항암치료나 이식 수술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그녀는 죽음을 받아들이고 할 수 있는 것을 하기로 했다. 교사이던 그녀는 8살짜리 아들에게 살면서 필요한 것들을 가르치며 준비를 철저하게 했다. 어린 아들이지만 그녀가 가고 난 뒤에도 계속할 수 있게 피아노와 태권도를 가르치고 한글학교에 보냈다. 언제가 될지 모르는 이별을 준비하기가 어렵지만 차근차근 남은 삶을 정리하며 살았다. 가족과의 여행을 하고 시간이 날 때마다 산책을 하며 음식을 만들어 함께 즐기며 추억을 쌓으며 2년을 살다가 지난해 9월에 하느님의 품으로 떠났다. 젊은 나이에 사랑하는 남편과 어린 아들을 두고 떠나는 그녀의 준비된 죽음은 아름다웠다. 생에 대한 미련을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으로 승화시킨 그녀의 가는 길에 예쁜 무지개가 피어났다. 누구나 태어나서 살다가 떠나는 것은 같아도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가 중요하다.
현대는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이 많아 이유 없이 죽어가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지난 1월 초에 코로나에 확진돼서 앓고 난 후유증으로 한동안 심한 두통에 시달렸다. 아침에 두통 때문에 잠이 깨고 하루 종일 두통이 없어지지 않아 진통제를 먹어도 소용이 없었다. 후유증이려니 생각하며 참고 견디려 해도 너무나 고통스러워서 괴로워하다 보니 몹쓸 병에 걸린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몇 주를 참아가며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다는 생각에 의사와 약속을 할까 말까 벼르다 보니 어느새 두통이 없어진 걸 보면 후유증 같다. 때로는 아무 이상이 없는데 여기저기 아프고 검사를 해도 이상이 없다고 나오는 경우가 많은데 아픈 사람은 이상이 없는 게 더 이상한 경우도 있다. 속이 불편하면 위장에 이상이 생겼나 걱정이고 배가 아프면 대장에 이상이 생겼나 근심하며 산다.
살만큼 산사람도 없고 일찍 죽고 싶은 사람도 없다. 나이가 들었어도 병에 걸리면 수술을 해서라도 낫고 싶은 게 인간의 본능이다. 그런데 수술이 해결책이 아닌 경우도 있다. 하루라도 더 살기 위한 수술이 더 나쁜 결과를 가져올 수 있고 건드리지 않고 그냥 놔두면 더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답이 없는 인생에 해답을 찾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