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에 사는 봄을 만난다

by Chong Sook Lee



저 많은 물이 어디로부터 흘러오는 걸까? 얼음이 녹은 계곡에 물이 힘차게 내려온다. 어디로 가는지 아는 듯이 거침없이 앞으로 향하여 흐른다. 쓰러진 나무들이 계곡을 가로막고 누워있는데 물길을 찾아서 돌아가는 것을 보니 흐르는 물을 막을 수 없고 오는 봄을 돌려보낼 수 없는 것 같다. 기다려도 오지 않아 마음대로 하라고 내버려 두었더니 어느새 숲 속에 봄이 와 있다. 작년 가을에 나무들이 떨구어낸 낙엽이 봄빛에 바싹 마른 채 바닥에 누워있다. 마른풀들은 갈대처럼 누렇게 되어 바람이 흔들리고 군데군데 녹지 않은 눈도 힘없이 녹는다. 이제 겨울이 떠났다. 아직 푸른 옷을 입지 않았지만 봄 색이 완연하다. 앙성 하던 나무들이 너도나도 움을 틔워서 헐렁한 숲을 하루하루 채워 나간다.


누가 하라고 하지 않아도 제 할 일을 하는 자연이 신기하다. 때가 되면 꽃이 피고 열매를 맺고 단풍이 들고 낙엽으로 생을 마감하는 나무들을 보면 미련도 후회도 없고 욕심도 시기도 없는 것 같다. 같이 살다가 먼저 가고 나중에 가며 살아가는 사람과 다름이 없다. 산책로에 눈이 녹지 않아 어디로 갈까 하다가 오솔길로 들어가서 걸어본다. 좁은 오솔길에 눈이 녹지 않고 빙판이 많을 줄 알았는데 뜻밖에 눈이 거의 녹았다. 알지도 못하면서 미리 지레짐작하고 가지 않은 것이 후회가 된다. 눈이 녹아서 땅이 젖어 많이 미끄러운 길도 있고 어느새 바싹 마른 길도 있다. 낙엽을 밟으며 가을도 만나고 양지쪽에 새로 나온 파란 풀도 만난다.


여기저기 허물을 벗은 대지는 꿈틀대며 기지개를 켠다. 새들도 목청을 높여 존재를 알리며 짝을 찾고 남쪽에서 날아오는 기러기들이 하늘을 가르며 요란하게 온다. 로빈은 키 큰 나무 가지에 앉아 햇볕을 쬐는지 꼼짝 않고 있다. 그들은 무엇을 생각하며 저렇게 앉아 있을까? 먹을 것을 찾아 먹는지 먼길을 오느라 힘이 들어 쉬고 있는지 벌써 며칠째 떼를 지어 이나무 저 나무 옮겨 다닌다. 그들이 인간의 세계를 알 수 없듯이 우리 또한 그들의 세계를 알 수 없다. 각자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눈이 녹은 길에는 나무뿌리들이 많이 나와 있어서 잘못하다가는 뿌리에 걸려 넘어지기 십상이라 조심해야 한다. 위험이 곳곳에 숨어 있는 숲 속을 걸으며 틈틈이 하늘을 바라본다.


나무 사이로 보이는 파란 하늘과 눈을 마주치고 눈부신 햇살을 등에 지고 가슴에 안으며 열심히 걸어간다. 아침 바람이 아직은 쌀쌀해서 모자를 쓰고 목도리를 하고 걸었는데 덥다. 여전히 바람은 불지만 걷다 보니 몸에서 열이 나서 단추를 풀고 웃옷을 벗고 걷는다. 넓은 숲 속에 남편과 나만의 발자국 소리만 들린다. 지난해 꺾어져 옆에 있던 나무에 걸려있던 나무가 바닥으로 떨어진 채 누워있다. 지나갈 때마다 혹시나 그 나무가 머리에 떨어질까 봐 빠르게 지나갔는데 땅에 떨어져 있어서 안전하다. 오솔길을 따라 계곡 옆으로 걸어본다. 갑자기 눈이 녹아 물이 넘쳐나서 오솔길이 없어졌었는데 지금은 길이 다시 생겼다.


물은 갈길을 가고 나무들은 자라고 들풀들도 세상을 구경하러 나올 때가 머지않았다. 다음 달 중순이면 산나물이 하나둘 파릇파릇하게 나온다. 아무것도 없던 땅에서 나온 산나물을 따서 끓는 물에 살짝 데쳐 초장에 묻혀 먹을 생각을 하니 입안에 침이 고인다. 길었던 겨울이 떠나고 봄을 맞으며 생전 처음 만나는 봄 인양 가슴이 뛴다. 반질반질한 새싹들이 낙엽을 헤치고 나와 방긋 웃을 것을 생각하며 걷는다. 아침에 나오기 전에 갈까 말까 망설이다 나왔는데 너무 잘했다. 귀찮은 생각에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집에 있었으면 만나지 못할 기쁨이다. 세상 모든 것은 선택의 기로에서 방황하고 선택한 대로 살아간다.


바쁘다는 이유로 하지 않은 일들이 후회를 가져오고, 싫다는 이유로 멀리한 것들이 미련을 가져다준다. 좋은 것만 하며 살 수 없듯이 때로는 귀찮고 힘들어도 하다 보면 좋아진다. 오솔길에 눈이 쌓여 있을 거라 생각하고 오지 않았다면 오늘 만난 모든 것을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아무리 하찮은 것이라도 인연이 없으면 만나지 못한다. 인연은 인간의 선택으로 만들어지는 묘한 관계다. 걷다 보니 숲을 바라보며 지어진 집들이 보인다. 집안에서 편하게 앉아서 사시사철을 보며 사는 사람들은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이렇게 숲을 찾아와 만나는 숲도 언제나 사랑스럽다. 산책을 하고 가서 저녁에 잠자리에 누워 눈을 감으면 숲이 보인다.


흐르는 물이 보이고 새소리도 들리고 딱따구리가 나무를 찍어 대는 소리도 들린다. 내가 다닌 길과 내가 만난 자연은 내 영혼과 만난다. 오늘도 나는 숲을 찾고 나무들과 대화한다. 있는 것을 다 주고 떠나서도 멈추지 않는 부모님의 사랑 같은 숲에서 행복을 만난다. 생각할수록 그립고 고마운 부모님의 마음을 되새기며 파란 하늘을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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