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표 비빔국수로 잃은 입맛을 찾아본다

by Chong Sook Lee



겨울이 떠날 때 내 입맛도 가져갔나 보다. 자꾸만 눕고 싶고 기운이 없는데 식욕도 없다. 때가 되면 배가 고파야 하는데 그냥 먹거나 건너뛴다. 봄을 타는 나는 봄이 오면 늘 그렇다. 무언가 입맛을 돌려줄 음식을 먹어야 돌아올 식욕이다. 집 나간 입맛이 돌아오려면 매콤 새콤한 음식을 먹어야 하는데 만사가 다 귀찮다. 해가 길어져가는데 무언가를 먹고 기운을 내야 한다. 비빔국수를 맛있게 비벼 먹으면 좋을 것 같은데 신김치를 넣으면 맛이 있지만 덜 익은 김치와 고추장을 넣어 비벼 먹어도 좋겠다는 생각을 하니 입안에 침이 돈다. 비빔국수는 특별한 재료가 없어도 먹고 나면 뒷맛이 깨끗해서 좋다. 국수를 유난히 좋아하시던 아버지는 한 겨울에도 차가운 비빔국수를 좋아하셨다. 밖에 눈이 쌓여 있고 찬바람이 불어도 국수를 사랑하시는 아버지는 찬 국수를 드시면서도 땀을 흘리시며 드셨다. 어찌나 맛있게 드시는지 옆에 있으면 배가 불러도 먹고 싶어 진다.


자영업을 하시던 아버지는 우리가 저녁을 다 먹고 난 한참 뒤에 집에 오셔서 식사를 하신다. 아랫목 이불 밑에 묻어 놓은 밥 한 그릇은 아버지 몫이다. 소화가 거의 다 되었을 때 아버지가 저녁 식사를 하시는데 어찌 그리 맛있게 드시는지 모른다. 우리와 똑같은 밥과 반찬들인데 아버지가 드실 때 또 먹고 싶어도 가만히 기다리고 있는다. 땀을 흘리며 맛있게 식사를 하시는 아버지는 매번 한두 숟갈 정도의 밥을 남겨 놓으시며 더 이상 못 먹겠다고 하시며 상을 물리신다. 형제 중에 먼저 숟갈을 잡는 사람이 밥을 차지하게 된다. 한창 자라는 나이에 두 살 터울의 육 남매 중에 누구라도 배가 고프면 먹으라는 아버지의 배려였음을 어른이 되고야 알았다.


땀을 흘리며 맛있게 드시는 모습을 보면 배가 불러도 먹고 싶게 만드시는 아버지만의 기술이었다. 반찬이 별로 없어도 보고 있으면 아버지가 드시는 모든 것이 맛있어 보였다. 깻잎을 밥에 얹어 드시고 나박김치를 떠드신다. 미역국에 밥을 말고 알맞게 익은 오이소박이를 하나씩 드시던 생각이 난다. 반찬이 많고 적고를 떠나 아버지 밥상은 늘 잔치 밥상이었다. 더운 여름에는 열무김치에 고추장과 참기름을 넣어서 비빔국수를 만들어 드시면 우리들은 너도 나도 가락을 가지고 와서 함께 먹던 기억이 난다. 아버지가 웃으시며 "맛있지?" 하시면 "아버지가 만드는 것은 다 맛있어요". 하며 순식간에 그릇을 비운다. 아버지는 우리가 먹는 사이에 비빔국수를 비비시며 행복해하셨다.


나중에 알고 보니 비빔국수나 비빔밥은 거의 비슷한 재료가 들어간다는 것을 알고 입맛을 잃고 식욕이 없을 때는 아버지 레시피대로 비빔국수나 비빔밥을 해 먹으면 잃었던 입맛을 되찾곤 했다. 재료를 일부러 사러 나갈 필요 없이 집에 있는 잘 익은 김치와 고추장 그리고 참기름만 넣어도 뒷맛이 깨끗해서 종종 해 먹는다. 반세기가 넘는 세월이 지나 아버지는 안 계시지만 옹기종기 모여 앉아 아버지와 함께 온 식구가 나눠먹던 비빔국수가 생각난다. 이렇게 지나간 것은 모두 아름다운 추억이 되어 새록새록 떠오른다. 세상이 변하여 옛날 음식이 되었지만 그 맛을 잊을 수가 없다. 어쩌다 외식을 하며 고급진 음식을 먹어도 요즘엔 그 맛이 나오지 않는다.


재료도 많지 않던 시절에 몇 가지 넣고도 맛있게 먹던 입맛이 없어지고 조금만 먹어도 배가 부른다. 재료도 많고 먹을 것도 많아졌는데 내 입맛은 옛날로 되돌아가서 옛날에 어른들이 좋아하던 음식이 좋아진다. 얼마 전에 고추값이 좋아서 몇 봉지 사다가 담은 고추 장아찌가 맛있게 맛이 들었다. 특별한 기술이 없어도 비율만 맞추어 놔두고 시간이 지나면 먹을 수 있다. 색도, 간도 잘 맞아서 고춧가루와 깨소금을 넣고 참기름과 파, 마늘 양념해서 먹으니 다른 반찬이 필요 없다. 여러 가지 반찬도 필요 없고 지지고 볶는 요리보다 담백한 반찬이 좋다. 퇴직한 뒤로 아무래도 활동양도 줄고 소화력도 약해지다 보니 쉽게 먹고 빨리 소화되는 게 좋다. 별로 많은 양을 먹지 않는데도 소화가 안되어 때가 되어도 밥 생각이 없다. 그래도 안 먹고 자면 다음날 기운 없을까 봐 무언가를 먹어야 한다.


어떤 때는 물에 밥 한 숟갈 넣어 김치하고 먹거나 시리얼과 우유로 때우기도 한다. 물론 아침 점심을 잘 먹기 때문에 영양상으로 문제는 없지만 저녁때는 늘 입맛이 없다. 나이 들어가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밥맛이 없어도 남편 식사를 준비하다 보면 없던 입맛도 생겨서 먹게 된다. 혼자 있으면 라면이나 빵으로 때우겠지만 남편과 함께 있는 날은 이것저것 만들어 먹으니 함께 사는 남편에게 고맙다. 입맛이 있건 없건 일단 무언가 라도 먹어야 한다. 먹기 싫다고 안 먹다가는 기운도 떨어지고 의욕도 없어진다. 손가락 조금 움직이면 되는데 귀찮다고 안 하다가는 영양실조라도 걸리면 안 된다. 냄비에 물을 끓여 국수를 넣어 맛있는 아버지표 비빔국수를 해 먹자. 입맛은 없지만 비빔국수를 먹을 생각에 침이 고이는 것을 보니 오늘은 비빔국수로 잃은 입맛을 찾아야겠다.


(사진:이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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