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속에 파묻혀 보낸 하루

by Chong Sook Lee



비 온 다음날은 더없이 맑고 화창하다. 언제 비가 왔나 할 정도로 하늘은 맑고 청명하다. 거리는 깨끗하고 꽃은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답게 피었다. 어딜 가도 꽃이 만발한 거리를 걸으니 이유 없이 기쁨이 솟는다. 원색의 꽃들이 피어 있고 세상은 초록으로 옷을 입었다. 그토록 오래 기다려온 봄을 이곳에서 만나는 나는 가슴이 뛴다. 아직도 내가 이토록 감성적인 줄 몰랐는데 꽃을 보며 좋아하는 나 자신에게 놀랐다.


끝이 보이지 않는 푸르른 들판이 매끈한 카펫처럼 펼쳐져 있어 그 위를 걸어 본다. 꿈같이 아름다워 한없이 걸어가고 싶어 진다. 나무는 굵고 하늘 무서운 줄 모르고 높이 자란다. 자연을 좋아하는 나는 이곳에 올 때마다 너무 좋아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사진을 찍는다. 내가 사는 곳도 좋지만 이곳은 정말 완벽하다. 하늘은 높고 푸르며 바다로 둘러싸인 주위는 그야말로 그림 같다.


사슴이 걸어 다니고 새와 다람쥐들은 사람들 앞에서 재롱을 떨며 같이 놀자고 한다. 나무 옆에서 꽃을 보고 있는데 작은 새가 날아와 바로 앞가지에 앉아 갈 생각을 하지 않아 내가 오히려 놀랐다. 빵조각이라도 손에 들고 있으면 집까지 따라올 듯하다.


빅토리아 대학교 공원으로 발길을 옮긴다. 3년 전에 딸과 사위가 결혼한 곳인데 여전히 아름답다. 양가의 가족만 참석하여 공원에서 결혼식을 한 공원이다. 딸이 엄마 아빠 팔짱을 끼고 신부 입장을 하며 신랑에게 걸어간 것이 어느새 3년 전이다. 세월이 너무 빠르다.


그때를 회상하며 다시 걸어본다. 구굴 통역 앱을 이용해 말이 통하지 않는 사돈과 소통하며 웃었던 추억이 새삼스럽다. 말이 안 통하여 걱정을 많이 했는데 통역 앱이 효자노릇을 하여 하고 싶은 말을 다하며 결혼식을 잘 끝낸 것을 생각하면 그렇게 좋은 통역 앱을 만든 사람이 너무나 고맙다.


딸과 사위를 나무 아래에 다시 세워두고 두 달 뒤에 오는 결혼기념일을 미리 축하해주며 사진을 찍는다. 서로 사랑하고 건강하게 잘 살아주어 고맙고 앞으로도 잘 살아가라는 덕담을 하며 행복이란 이런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가까이 살지 않아 늘 보고 싶고 그리운 딸을 만나서 너무나 좋다. 공간을 초월한 세상에서 영상으로 볼 수 있어 그나마 다행이지만 이렇게 만나서 웃고 손을 잡으며 사는 것을 보니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


꽃으로 장식된 공원 한가운데로 들어가는 길에 쌍쌍의 노인들이 산책을 한다. 가다가 의자에 앉아서 쉬기도 하고 오리에게 밥을 주며 먹는 모습을 보기도 한다. 완벽한 날씨에 한가하고 평화로운 그들의 삶을 보며 이곳에 살고 싶은 생각이 든다. 긴 겨울 동안 봄이 오기를 기다리지 말고 멀지 않은 이곳으로 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사람이 살면 얼마나 산다고 눈 쌓인 추운 겨울에 묻혀서 살기보다 꽃과 나무와 바다와 산에 둘러싸인 이곳에서 사는 것도 좋을 듯하다. 이름도 알 수 없는 수많은 종류의 꽃들이 저마다의 자태를 자랑하며 서 있다. 빨갛고 노랗고 하얗고 연분홍, 연보라 색의 온갖 꽃들은 그것에서 피고 진다.


하루 종일 걸어도 끝이 없는 공원을 나와 집으로 간다. 바다가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춤을 추고 자연은 하루를 감사하며 고개를 숙인다. 딸이 만들어주는 저녁을 먹으며 바쁘게 살아온 내가 이렇게 호강해도 되나 싶은 생각이 든다. 부엌을 점령하고 살아온 내가 조금씩 구역을 내어주게 하는 세월 속에 웃음이 난다.


아이들이 빨리 자라기를 바랐는데 어느새 아이들이 어른이 되어 내 자리를 차지하는 세월이 왔다. 세월 따라 부엌뿐이 아니고 모든 것을 내려놓을 날이 오면 새털같이 가벼워 훨훨 날을 수 있을 것이다. 사람이 세월을 만들지 않고 세월이 주인이라는 생각으로 하루를 마감한다. 오늘의 나를 있게 한 부모님과 남편 그리고 딸과 사위와 아들들과 며느리들, 손자 손녀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한다. 인연은 참으로 아름답다.



(사진:이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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