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따라 이어가는 삶의 여정

by Chong Sook Lee




새날이 밝았다. 시간은 어제를 보내고 오늘을 데려다 놓았다. 냉정하고 매몰찬 시간은 미련도 후회도 없이 한번 가면 뒤돌아보지 않는다. 어제가 아무리 좋았어도, 어제가 아무리 슬펐어도 어제는 이미 나를 떠났다. 삶은 시간을 따라 이어가는 여정이다. 좋은 일이 있어도 보내야 하고 모르는 내일을 맞으며 견뎌내고 이겨내야 한다. 커다란 호수가 바다처 럼 펼쳐져 있다. 호수를 가운데에 두고 빙 둘러서 나무가 빡빡하게 있는 트레일을 걸어본다. 산은 아닌데 산 같고 바다는 아닌데 바다 같다. 땅이 넓어서 그런지 끝이 보이지 않는다. 나무는 하늘을 향해 쭉쭉 뻗어있고 나뭇가지 사이로 파란 하늘이 호수에 앉아서 논다. 아름답다는 말이 부족할 정도로 신비하다.


숲이 깊어서 트레일이 이중삼중으로 나뉘어 있어 너무 높지도 너무 낮지도 않은 중간으로 걷는다. 왼쪽으로 높은 절벽이 병풍처럼 쌓여있고 오른쪽으로는 아찔할 정도의 절벽이 호수와 손을 잡고 있다. 수천수만 년 내려오는 자연의 모습에 고개 숙여진다. 깊은 숲 속에 있는 트레일은 외롭지 않다. 그 속에서 수많은 생명이 살고 수많은 사람들이 오고 가며 인연을 맺는다. 우리들 앞으로, 뒤로 연인이 걸어가고 부부가 걷는다. 여러 엄마들이 아기를 안고 걸어가고 혼자서 운동하는 사람은 숨을 헐떡이며 뛰어간다. 개들이 뛰어다니고 버섯이 자라고 달팽이가 느릿느릿 기어 다닌다.


우연히 땅을 내려다보았는데 나뭇잎들과 풀 사이에 가래떡 굵기의 연두색 달팽이가 누워있다. 징그럽지만 너무나 신기해서 남편이 나뭇가지로 살짝 건드려보니 다리를 움츠리며 몸을 오그린다. 그냥 지나쳤으면 모를 정도로 나뭇잎과 똑같다. 수많은 종류의 크고 작은 나무들이 서로를 바라보며 사이좋게 서 있다. 굵고 가늘고 자라면서 껍질이 벗겨지는 나무가 있고 비틀어져 허리를 구부린 채 몇백 년을 서 있는 나무도 있다. 걷다 보니 나무뿌리가 코끼리 발같이 생긴 나무가 길가에 있다. 사람의 얼굴이 다르듯 나무도 같은 것이 하나도 없다.


(사진:이종숙)


거울처럼 맑은 호수가 옆에 서 있는 나무들을 껴안고 하늘을 바라본다. 한없이 오르는 길이 있고 미끄러지듯 가파른 길도 있다. 눈으로 보이는 모든 것은 창조주의 훌륭한 작품들이다. 인간이 아무리 노력해도 자연을 만들지 못한다. 볼수록 아름답고 만날수록 신비로운 자연 안에서 인간은 하나의 작은 점에 불과한데 가소롭게 큰소리치고 산다. 바위와 바위 사이에 난 꼬불꼬불한 길을 따라 걸어본다. 길 가운데에 엎드려 있는 바위가 거북이를 닮았다.


(사진:이종숙)


노랑, 파랑, 빨강, 보라의 온갖 예쁜 색의 들꽃이 소리 없이 여기저기 피어나 살다가 소리 없이 간다. 내년을 기약하지 않아도 봄이 오면 그 자리에 다시 피어나는 그들이 참으로 예쁘다. 그 누구도 예쁘다고 꺾어가지 않는다. 있는 대로 놓아두고 다시 만나면 반갑게 맞으면 된다. 숲이 깊은 이곳에 고사리가 여기저기 자란다. 고사리를 좋아하는 한국사람들이 비닐봉지에 잔뜩 뜯어가다가 걸렸던 적이 있다는 말을 들었다. 고사리가 너무 많고 아무도 지키는 사람이 없으니 친구들과 재미있게 잔뜩 땄는데 가는 길에 걸려서 법정에서 나온 결과는 엄청났다.


고사리 하나에 여기 돈으로 25센트를 보상하고 고사리를 원상복구 하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결국 수 만불의 보상금을 지불하고 풀려났다는 소문이 있었다. 그 소문이 전해지면서 한국사람들이 조심한다. 자연을 훼손한 죄가 그토록 큰데도 여전히 인간들은 무서운 행패를 멈추지 않는다. 가는 길에 숲이 반쪽이 난 곳을 보니 커다란 아파트가 준공을 기다리고 있다. 인간의 잔인한 면모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자연이 우리에게 모든 것을 주는데 자신들의 주머니를 불리기 위해 생각 없이 자연을 훼손하는 인간이다.


앞으로 얼마 남지 않은 지구의 생명은 인간에게 달려 있다. 한없이 이어지는 트레일은 시시때때로 변하며 잠시도 가만히 있지 않는다. 숲 속에는 생명을 잉태하고 생명이 다하는 반복의 세월이 흐른다. 바람이 지나가고 물이 흐르고 해가 뜨고 지는 시간들은 할 일을 쉬지 않고 계속한다. 삶이란 보이지 않고 만질 수 없는 오묘한 연결고리를 돌며 이어지는 여정이다. 강제로 멈출 수도 없고 그냥 흘러가고 날아가 갈길을 간다. 시작한 곳으로 다시 돌아와 집을 향한다.


누구든 떠날 때가 있고 돌아갈 때가 있다. 가는 길은 차로 도로가 바쁘다. 부활절 연휴가 내일부터 시작하는 데 사람들은 연휴를 준비하기에 바쁘다. 여행을 떠나는 사람이 있고 가족을 만나러 집으로 가는 사람이 있다. 며칠간의 연휴 동안 먹을 장을 보러 나온 사람이 있고 어딘가에 볼일을 보러 가는 사람도 있다. 하루를 맞아 하루를 살며 하루를 보내기 위해 발돋움하며 열심히 산다. 바다가 보이고 숲이 보이는 고속도로를 지난다.


어느새 이곳에 온 지 5일이 간다. 매일매일 딸의 극진한 대접을 받으며 왕비처럼 살아간다. 따뜻한 침대에서 편안하게 실컷 자고 일어나면 맛있는 아침이 준비된다. 아침을 먹고 나면 딸과 사위가 계획한 하루가 시작된다. 멀고 가까운 관광지를 데리고 다니며 아름다운 추억을 만든다. 오늘은 오늘을 대접하는 사람에게만 머문다. 오늘이 가면 다시 보지 못하는 오늘과 함께 신나게 놀아야 한다.

(사진:이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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