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날 가는 날 해서 12일간의 딸내미 집 방문을 마치고 가는 날이다. 몇 년 동안 연애를 하다가 3년 전에 결혼을 하고 잘 살아가고 있는 딸인데도 어떻게 사는지 늘 궁금했다. 거의 매일 영상통화로 안부를 전하고 살아도 내 눈으로 보고 싶은 생각에 방문한 아이들은 어엿한 어른이 되어 살고 있다. 아직 아기로만 생각한 딸의 깊은 생각에 놀라며 함께 한 나날이 행복이었다. 엄마 아빠가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살아온 것을 너무나 잘 아는 딸이기에 이번 기회에 확실하게 효도를 하고 싶었나 보다. 어른인 나도 손님이 오면 시간이 갈수록 힘들고 지치는데 정성을 다하고 마음을 다하여 보살피는 딸이 한없이 기특하기만 하다.
아침마다 맛있는 식사를 준비하여 주고 잠자리를 마련해주고 좋은 곳을 데리고 다니며 편안하고 행복하게 있다가 가기를 진심으로 바라는 딸의 심성에 감동한다. 효도가 말은 쉽지만 실천하기 어려운데 어린 나이는 아니지만 계획을 세워 불평 한마디 없이 기쁘게 행동하는 딸에게 한없이 고맙다. 열흘 동안 바람이 불었지만 비가 오지 않아 천만다행이다. 옷을 든든하게 입고 모자를 쓰고 다니며 산으로 바다로 돌아다니며 예쁜 꽃과 멋진 나무와 새들을 보며 즐거웠던 날들은 행복한 추억이 되었다.
이렇게 시집간 딸네 집을 방문하고 나니 곱게 키워 시집보낸 딸이 머나먼 타국 캐나다로 이민을 떠나올 때 친정부모님의 심정은 어땠을지 감히 짐작이 가지 않는다. 겨우 열흘 함께 생활하고 떠나는 마음은 잘 살아주어 고맙기도 하고 이제 가면 언제 또 만나려나 하는 서운한 마음도 든다. 사람의 마음이 참으로 간사하여 만나면 헤어져야 하는 것을 알면서도 만나고 다시 만날 것을 알면서도 서운함을 감출 수 없다. 부모 자식의 인연으로 살다가 어느 날 떠나갈 때까지 해주고 싶은 것도 많고 해주지 못하는 것도 많다.
장사한다는 핑계로 아이들을 놔두고 다니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뒤돌아 생각해보니 내가 키운 게 아니고 애들이 자란 것이다. 가르쳐 주지 않았는데 어른이 되어 힘든 세상살이를 살아가는 것을 보면 신기하다. 세상이 살기 좋아져서 옛날처럼 힘들게 살지 않지만 빠르게 변화하는 삶을 거침없이 받아들이고 역경을 헤쳐나가는 모습이 자랑스럽기만 하다. 우리 부모님 세대는 전화도 인터넷도 없이 외국에 살러 간 딸이 얼마나 궁금했을까 생각하니 참으로 불효를 저질렀던 것 같다.
옛날에는 전화요금도 비싸고 상태가 안 좋아서 말소리가 잘 안 들려도 목소리 한번 듣기 위해 무리를 해서 했던 기억이 지금도 난다. 이제는 모든 것이 자유로워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든지 가능하다. 코로나가 발목을 잡아서 잠시 중지되었지만 삶은 여전히 돌아간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열심히 살면 되고 우리는 우리대로 남은 생을 평화롭게 살아가면 된다. 가까이 사는 아들들과 멀리 사는 딸이 틈틈이 연락을 하고 우리를 살뜰히 보살피는 나이가 되었다. 많은 세월이 흘러 아이가 어른이 되고 어른이 다시 아이가 되어 보살핌을 받는다.
아이들이 어릴 적 조심하라고 당부했는데 지금은 오히려 아이들이 우리한테 조심하라는 당부를 한다. 아이들이 살아가는 것을 보면 나는 저렇게 못했는데 참 멋있게 잘 살아가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민생활을 새로 시작하며 새로운 삶의 터전을 잡아야 했던 우리 세대는 옆을 볼 시간도 여유도 없이 앞만 보고 달려왔다. 여행은 갈 생각도 못하고 기껏해야 가는 고국방문도 가족 중에 하나가 아파야만 달려가 보곤 했다. 오죽했으면 우리 아이들이 "왜 엄마 아빠는 누가 아파야만 한국에 가세요?" 하던 생각이 난다.
코로나로 인하여 그나마도 갈 수 없게 된 현실에 하루빨리 코로나로부터 자유로운 날이 되기를 기원해 본다. 딸을 만나고 딸과 생활하며 먹고 싶은 음식을 만들어주며 오래전 친정엄마를 떠나 살면서 엄마 음식이 간절히 먹고 싶던 옛날 생각이 난다. 열흘 동안의 시간을 함께 보내며 딸을 더 많이 알고 더 많이 이해하게 되었다. 누구나 살아가는 방법이 다르고 생각하는 길이 다르기에 서로를 존중하며 배려함으로 좋은 관계를 계속할 수 있는 것이다. 부모의 세대와 아이들의 세대와 우리의 세대가 함께 어울려 아름다운 삶을 이어간다. 재회를 약속하며 비행장으로 간다. 하늘에는구름이 오고 가고 산천은 나날이 더 푸르다. 마지막까지 서서 우리가 잘 들어가는 것을 바라보는 딸과 재회를 약속한다.
사랑하는 딸아, 잘 살아라. 우리 또다시 만나 기쁨의 해후를 하자꾸나. 옆에 있어도 그리운 딸아. 벌써 보고 싶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