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착도, 걱정도 없는 평화로운 오후

by Chong Sook Lee



어제는 눈이 오더니 오늘은 화창하다. 하늘이 하는 일은 도대체 모르겠다. 캐나다 중부에 비가 너무 와서 동네가 위험에 빠진 곳에 비가 더 온다고 해서 걱정했는데 비대신 눈이 왔다. 사람들은 어찌할 바를 모르고 정부는 긴급 상황을 발표했다. 어찌하여 해마다 이런 일이 생기는지 모르겠다. 내가 사는 곳에서 멀리 떨어진 곳이지만 매일 뉴스로 나오니까 남의 일 같지 않고 걱정이다. 자연재해는 해마다 커다란 손실을 가져다 주지만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있다. 홍수가 시작된 것은 봄이 되어 온도가 올라서 얼었던 강물이 녹기 시작하면서 얼음이 갑자기 녹는데 중간에 녹지 않은 얼음 때문에 물이 넘치기 시작하여 동네가 잠겼다.


몇 년 전에 북쪽에 있는 도시가 잠겨서 엄청난 손실을 가져왔는데 같은 현상이다. 거기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비까지 와서 강물이 불어나 동네가 물에 잠기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은 아무것도 챙기지 못한 채 피신했지만 동네로 물이 들어가고 비는 계속 오는데 눈까지 왔으니 걱정이 태산이다. 물에 젖은 집과 동물 그리고 수많은 재산 피해가 복구되려면 기하학적인 시간과 경비가 필요할 것이다. 나라마다 자연재해가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는데 해결책이 없다. 지구 온난화 때문에 생긴다는 말도 있고 지구가 오염되어 그렇다는 말도 있는데 과학자들의 연구는 자연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여기저기 화산이 터지고 전쟁이 계속되고 전염병은 없어지지 않고 있다.


가뭄으로 산불이 많아지고 날씨의 변화와 예측할 수 없는 재해로 사람들은 지쳐가고 있어도 세상은 돌아간다. 어제는 눈이 와서 겨울처럼 춥더니 오늘은 다시 봄 날씨같이 따뜻하다. 하늘도 파랗고 나무들이 푸르름을 더해가도 날씨는 추운데 꽃이 피는 것을 보면 신기하다. 지난번 빅토리아에 갔을 때 바닷바람으로 인하여 엄청 추웠는데 꽃은 만발했던 것을 보면 추위와 꽃피는 것은 무관한 것 같다. 꽃은 피기 위한 본능으로 피고 사람들도 견디기 위한 본능으로 옷을 껴입고 웅크린다. 추워 추워하면서 봄이 왔다 간다. 이렇게 봄이 가면 봄도 여름도 아닌 봄 같은 여름이 온다. 작년에는 폭염이 오랫동안 계속되는 바람에 더워서 빨리 겨울이 왔으면 좋겠다는 말을 했다.


올해는 어떤 여름 일지 모르지만 더워도 여름이 좋다. 건조한 이곳은 아무리 더워도 바람 한번 불면 시원해서 땀이 안 난다. 이민 와서 처음 몇 년 동안은 여름에도 추워서 스웨터를 입고 살 정도로 이곳은 건조하다. 겨울도 영하 30 도 이하로 내려갈 때도 춥긴 추운데 든든하게 옷을 입으면 뼛속까지 춥지는 않다. 한국은 벌써 덥다 고 하는데 이곳은 아직도 춥다. 사과나무 꽃이 피려면 5월 말이나 되어야 하고 텃밭에 채소 농사도 그때가 되어야 모종을 심는다. 6월과 7월 두 달 동안 채소가 자라고 8월부터는 아침저녁으로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이곳은 8월 말이나 9월에 눈이 온 해도 있다. 자연이 하는 일을 인간은 모른다. 이렇게 춥다가도 갑자기 더워져 반팔을 입고 갑자기 추워져 스웨터를 입어야 하니까 일기예보를 열심히 봐야 한다.


날씨가 좋아지니 새들은 바쁘게 날아다니며 노래를 한다. 잠시도 쉬지 않고 짖어대는 그들의 언어를 알아들을 수 있으면 재미있을 것 같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역시 봄은 왔다. 아무리 추워도 사람들의 옷차림은 화사하고 발걸음도 가볍다. 쇼핑몰에 가보면 꽃을 사가는 사람들이 많다. 짧은 여름 동안 밖에 걸어놓기 위해 여러 가지 꽃을 사 가지고 집 앞뜰과 뒤뜰에 놓으면 여름 내내 꽃을 볼 수 있다. 몇 년 전 예쁜 꽃을 사다 놓았는데 갑자기 내린 우박으로 꽃이 다 구멍이 났던 것이 생각이 난다. 구멍 뚫린 꽃잎을 만지며 속상해했는데 그래도 그 후로 날이 좋아 본전 생각은 하지 않고 여름이 갔다.


언제 비가 올지, 언제 바람이 불지 모르는 게 인생사이다. 집안끼리, 이웃끼리, 형제끼리, 나라끼리 싸우며 분쟁한다. 더 많이 차지하기 위해서 더 높이 오르기 위해서, 남의 것을 빼앗고 가진 것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싸운다. 서로를 경계하지 않으면 아군도 적군이 된다. 사람을 믿고 의지하며 서로 사랑하고 살아야 하는 것은 단지 논리에 불과한가 보다. 같은 길을 간다는 명분은 이름뿐이고 보이지 않는 알력을 끌어안고 산다. 언제 어느 때 무슨 일이 생길 줄 모르며 평화를 내세운다. 아무 때나 눈이 오고 우박이 떨어지고 바람이 부는 날씨와 다를 게 없다. 갑자기 쏟아지는 소나기는 예쁜 무지개를 남기지만 보이지 않고 구름 뒤에 숨어 있는 기상변화는 어떤 날씨를 가져다 줄지 아무도 모른다. 오는 대로 맞고, 가면 보내는 수밖에 없다.


세상 그 무엇도 내 것이 없다. 나는 세상과 함께 살뿐 아무것도 소유할 수 없다. 물건도, 마음도 잠깐 빌려 쓰는 것이기에 그 무엇도 집착할 수 없다. 집착하지 않고 가지려 하지 않을 때 진정한 마음의 평화를 만난다. 쉽게 이루어지는 것이 없지만 이루기 위해서 노력할 뿐 세상의 모든 것은 주인을 찾아간다. 사람과의 인연도, 물건과의 인연도 잠깐 머물 뿐 그 무엇도 영원하지 않기에 때가 되면 오고 때를 다하면 간다. 봄이 오지 않아도 봄 속에 살면 봄을 만나고 마음이 행복하면 헐벗어도 춥지 않음을 배운다. 토끼가 우리 집 앞뜰에 있는 소나무 아래서 잠을 잔다. 조금 전까지도 무언가 입에 물고 오물거리더니 피곤한지 아주 자리를 잡고 배를 깔고 잔다. 잘 자라 토끼야. 아무 걱정하지 않고 토끼가 낮잠을 잘 수 있는 평화로운 오후다. 낮잠 자는 남편의 코 고는 소리가 평화롭게 들린다.

(사진:이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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