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 트레킹 19차]
[백두대간 트레킹 19차] 겨울 태백산 트레킹 후기
글/사진. 구자룡
원래 19차 트레킹은 2020년 2월 22일부터 2박 3일간 강원도 정선 능경봉-고루포기산 동계 백패킹으로 계획했었다. 눈꽃 산행, 정상 일출, 야영, 그리고 강릉 바닷가에서 커피 한 잔의 여유를 갖고자 했는데, 코로나19가 2월 들어 확산이 되고 특히 대구에서 많은 감염자가 나오면서 걱정스러운 가운데 추진되었다. 대관령(832m)-능경봉(1,123m)-고루포기산(1,238m)-닭목령(680m)으로 이어지는 약 13km의 여유 있는 트레킹을 계획했었다.
당시 대구에서 2명이 참가할 예정으로 대중교통으로 서울로 와서 함께 강릉으로 이동하는 일정이었다. 대구에서 왔다는 말을 하기 어려운 분위기였다. 그리고 출발 당일 대원 1명이 배낭을 메고 집을 나섰지만 갑자기 몸이 좋지 않아 힘들겠다는 소식을 전했다. 이미 집에서 출발한 뒤 엿지만 바로 다음으로 미루기로 결정했다. 항상 안전을 최우선하는 우리만의 원칙이 있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거의 2년 동안 백두대간 트레킹을 멈추게 되었다.
코로나가 곧 끝나면 다시 시작해야지 했던 것이 팬데믹으로 이어지면서 기회를 잡지 못했는데 갑자기 근식이가 태백산 산행 계획을 공지했다. 혼자서도 간다면서.. 효갑이가 함께 가자고 제안하여 갑자기 팀이 결성되고 경화도 참여하게 되어 역전의 용사 4명이 다시 트레킹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래서 19차 백두대간 트레킹은 번개로 당일 유일사에서 출발하여 다시 돌아오는 코스로 산행을 하고 해산하는 일정으로 잡았다. 출발 하루 전에 효갑이가 오랜만에 가는 산행이라서 힘들 수 있으니 갈아입을 옷을 준비해서 가면 어떻겠느냐는 의견을 냈다. 그럴바엔 아예 1박2일로 계획을 세워서 여유있게 산행을 하고 술도 한 잔 하자는 방향으로 의견을 모으고 구체적인 계획을 세웠다.
일정 : 2022.01.22-23(토-일)/1박 2일
코스 : 유일사 주차장 - 태백산 정상(장군봉)-천제단-반재-백단사 주차장 / 총 7.6km(약 4시간 예상)
1박 예정지 : 함백산 민박집(강원 정선군 고한읍 산 214-18)
참가대원 : 남효갑, 김근식, 이경화, 그리고 구자룡
22일 10시 백단사 주차장에서 만났다. 서울에서는 수서 기준으로 7시경 승용차로 출발했다. 효갑이의 K8 신차를 타고 미끄러지듯 원주, 제천을 지나 태백을 향했다. 대구에서는 경화의 애마로 비슷한 시간에 출발하여 영주을 지나 태백으로 왔다. 먼저 백단사 주차장에 한 대를 주차하고, 다른 한 대로 유일사 주차장에 도착하니 주차할 곳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차들이 주차해 있었다. 등산장비를 챙기는 와중에 불어오는 바람이 쌀쌀하여 냉기를 느낄 정도였다. 10시 30분경 다른 많은 등산객들 틈에 끼여 한걸음 한걸음 유일사 방향으로 오르기 시작했다. 최근이 등산을 하지 않아 여파로 우리 모두 몇 걸음 걷지도 못하고 숨이 막였다. 더하여 모두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어서 가파른 산을 오르기에는 숨이 찼다.
이 길은 까마득한 옛날(거의 30여 년 전 어느 3월 1일 연휴)에 혼자 오르다 미끄러지고 다시 오르다 미끄러지며 힘들게 오르다 중간 어디쯤에 텐트 치고 눈으로 저녁을 간단하게 해 먹었던 길이다. 당시 대구에서 출발하여 포항, 울진, 태백을 거쳐 여러 번 버스를 갈아타면서 종일 걸려 유일사 입구에 도착했다. 이미 해가 넘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당시의 장비는 지금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열악했다. 3월인지라 아이젠조차 챙기지 않아서 고생한 기억이 생생하다. 어디쯤 올랐는지는 모르지만 아마도 중턱 정도까지 4시간은 걸린 것 같다. 밤 10시 정도가 되어 산행을 중지하고 야영을 했던 것이다. 정상까지 2시간이면 갈 수 있겠다고 나섰던 기억이 난다. 망경사 용정의 물로 저녁을 해 먹을 생각이었는데. 그때는 젊었고 무서움이 없을 때였다. 이런 추억을 이야기하며 천천히 올랐다.
한 참을 오른 후 항상 후미를 책임졌던 경화의 모습이 보이지 않아 기다리기도 하고 전화를 해도 받지 않아 걱정을 하고 있었다. 휴게소에서 먹은 음식으로 설사를 만나 그 많은 사람들을 피하고 피해서 문제를 해결한다고 혼자 힘든 시간을 보냈단다. 그럭저럭 쉬엄쉬엄 유일사 쉼터에서 기다렸다가 함께 장군봉을 향해 걸었다. 이때까지 눈다운 눈을 보지 못했다. 길에는 수많은 등산객들의 발자국으로 변색이 된 눈과 흙의 결정체를 아이젠으로 튀겨내며 걸었다.
장군봉으로 오르는 능선길에 그 유명한 주목나무 군락지가 있다. 여기서부터 상고대가 있어야 한다. 이 상고대를 보려고 멀리 추위를 무릅쓰고 왔는데 나무 밑에 잔설이 조금 있을 뿐이었다. 한겨울에 상고대 없는 주목은 더욱 쓸쓸하게 느껴졌다.
장군봉 아래에 있는 쉼터에 여러 명이 점심을 먹고 있었다. 쉼터 의자를 하나 잡았다. 여기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후미가 올 때까지 잠시 여유가 생겼고 미리 컵라면에 보온병의 뜨거운 물을 부었다. 그런데 어째 컵라면이 제대로 붇지가 않는다. 1천2~3백 미터 높이의 고지대이고 영하의 기온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덜 불은 라면을 먹고 라면 물을 다 마셨다. 버릴 수 없으니 물 조절을 잘해야 한다. 경화가 가져온 찰밥을 함께 먹고 빵도 나누어먹고 오이도 먹고 나니 다시 생기가 돈다.
이런 먹는 즐거움을 만끽하기에는 겨울산, 바람이 부는 곳에서는 어려움이 있다. 어떤 팀은 쉘터용 비닐을 이용하여 그 안에 여러 명이 들어가서 식사를 하고 있었는데 생경한 풍경이다. 이미 트렌드인데 요즈음 등산을 자주 하지 않아 보지 못해서일 것이다. 근식이가 한마디 한다. "저 비닐 안에 코로나19 감염자가 한 명이라도 있다면 모두 감염될 수밖에 없을텐데." 우리도 마찬가지 이지만 우리끼리는 안전하다는 것을 알고 있듯이 저 사람들도 그들끼리는 안전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이런 걱정을 떨쳐버리고 마음껏 산행할 수 있는 시기가 빨리 오면 좋겠다.
다시 힘을 내어 주봉인 장군봉(1,567m)에 도착했을 때가 1시 30분 정도였다. 3시간 정도 걸렸는데 중간에 점심을 먹었으니 적당한 주행속도로 큰 힘 들이지 않은 여유로운 산행이 되었는데 이는 가벼운 배낭 때문에 가능한 것으로 생각된다. 만약 20kg 정도의 백패킹 배낭을 메고 올랐다면 사정은 많이 달랐을 것이다. 이번 코스 중에서 유일사 쉼터부터 천제단까지는 백두대간이다. 이 길은 지난 2014년 백계 3차에서 걸었던 코스다. 그때는 8명이었고 그중에서 이번에 효갑, 경화가 함께 했다.
당시의 트레킹 코스는 두문동재에서 시작해서 함백산과 만항재를 거쳐 이번에 1박 할 예정한 함백산 민박집에서 1박을 했었다. 그리고 다음날 다시 만항재로 올라 수리봉, 화방재를 거쳐 유일사 쉼터로 해서 장군봉, 천제단, 망경사, 반재, 당골로 내려가서 당골에 있는 민박집에서 2박 하는 일정이었다. 여름철이었고 야영을 하지 않고 민박을 했기 때문에 그나마 짐이 적었었다. 이때 만항재와 민박집까지 2km 하산, 그리고 다음날 다시 2km 등산은 너무 힘이 들어서 이후부터 야영 장비를 하나씩 준비해서 백패킹으로 전환하는 계기가 되었었다.
2014년 여름 오후 늦은 시간에 장군봉에 도착했을 때 운해와 함께 너구리가 놀고 있었는데 이번에는 눈은 없고 바람은 불고 사람은 넘쳐났다. 장군봉 제단에 잠깐 들려 기원을 드리고 단체 사진도 찍으며 잠시 정상의 공기를 맡았다. 장군봉에서 천제단으로 나 있는 길에 여러 명의 등산객들이 다니고 있었고 고르지 않은 일기로 금세라도 눈과 폭풍이 칠 것 같은 음산함이 몰려와서 서둘러 천제단으로 향했다. 하산하는 갈림길이 천제단에 있기 때문이다.
천제단은 단군시대부터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곳으로 신라와 고려, 조선에서도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마침 어떤 산악회에서 산신제를 지내고 떡을 줘서 받아먹고 가족과 그동안 백계를 함께 한 대원들의 건강을 빌고 나왔다. 천제단 아래쪽에는 태백산 비석이 있고 CCTV가 있는데 그 주변에는 비석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기 위해 장사진을 이루고 있었다. 족히 50명은 될 것 같았다. 꼭 태백산이란 이름이 적힌 비석 앞에서 인증을 해야 하는 걸까 의구심이 들었다. 다행스럽게도 우리 중에는 줄 서는 사람이 없었다. 대신에 동쪽과 서쪽의 첩첩산중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고 망경사 방향으로 하산길에 올랐다. 단종비각과 용정, 망경사의 모습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는 것 같다. 2014년에는 용정에서 물을 받아 점심을 먹은 기억이 남는다. 30년 전에는 3월이었지만 아직 겨울의 흔적이 남아 있었고 용정 주변에 고드름이 많았었다는 기억이 난다.
망경사에서 반재까지는 느긋하게 짝을 이루어 걸을 수 있을 정도로 넓은 길이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하면서 걸었다. 오랜만에 만났으니 살아가는 이야기, 추억 이야기를 하다 보니 반재까지 한 걸음에 내려온 느낌이었다. 반재에서 백단사로 내려가는 길은 처음 걷는 길인데 생각보다 폭은 넓고 경사는 급했다. 습기를 먹은 눈과 흙이 아이젠에 붙어 나막신을 싣고 걷는 기분이 들 정도였다. 우리가 흙을 털려고 하는 곳마다 이미 앞선 등산객들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었다. 사람들의 생각이 크게 다르지 않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덧 백단사 주차장에 도착했다. 3시 20분이었다. 백단사는 작은 절로 존재감을 느낄 수 없었으며 조금 아래쪽에 있는 민가에서 굿하는 소리가 들리기도 했다. 그런데 한참을 기다려도 효갑이가 오지 않았다. 출발 전부터 허리가 불편했는데 하산할 때 무릎까지 아파 조금 쉬엄쉬엄 오는 줄 알았다. 내려오는 중에 굿하는 소리를 따라 들어가서 잠깐 구경을 했단다. 아마도 무당일 텐데 뒷모습이 너무나 평온했다고 한다. 그러고 반재에서 내려오는 길에 망경사로 올라가는 비구니를 봤는데 그 스님의 얼굴도 곱고 평온했다고 한다. 효갑이의 이야기를 듣고 보니 무ㅁ코 지나쳤던 그 비구니의 얼굴이 떠오르고 그런 느낌이 들었다. 수행하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느낄 수 있는 아우라인가. 굽이 굽이 돌아가는 백단사 가는 길을 쉬엄 쉬엄 걷는 길위의 등산객을 근식이가 멋지게 찍어주었다. 우리의 아우라는 이정도다.
이렇게 트레킹을 안전하게 마쳤다. 약 8.3km의 거리를 5시간 정도 걸려 원점 회귀했다. 세 번째 오른 태백산 트레킹은 이전과 달리 쉬운 편이었다. 역시 배낭의 무게가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 백패킹을 한다면 단 100g의 무게라도 줄일 수 있도록 준비해야겠다는 교훈을 얻었다. 비록 눈꽃을 기대했지만 눈꽃보다 더 훈훈한 동료애와 새로운 추억을 쌓았다.
민박집에 도착했는데 문이 잠겨있다. 아뿔싸. 전화를 해봤다. 비밀번호를 불러준다. 아하. 주인은 오지 않고 휴대전화와 CCTV로 원격 관리를 하고 있었다. 디지털과 온라인은 첩첩산중에도 매우 중요한 사업 도구가 되고 있음을 실감했다. 뜨거운 물도 잘 나온다. 샤워도 하고 느긋하게 저녁을 먹으면 되는 여유로운 오후였다.
코로나 팬데믹도 있고 우리끼리 저녁해 먹던 습관도 있고 해서 민박집에서 삼겹살, 소주, 햇반, 라면, 김치 등으로 직접 만찬을 준비했다. 마침 경화가 휴무라고 하여 염치없지만 부탁을 했는데 부인과 함께 장을 푸짐하게 봐왔다. 효갑이가 연태주를 기증하여 적당하게 취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었다. 백미는 경화가 가지고 온 캠핑 박스(조리도구 세트)와 그리들팬이었다. 삼겹살에 연태주라. 김치도 볶고 라면으로 마무리하고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아침은 근식이가 뽑아준 커피에 라면과 햇반과 김치를 넣은 갱식이로 대신했다.
이런 즐거움을 함께 할 수 있는 동료가 있고 체력이 있을 때 더 자주 가야 하는데 그동안 코로나 핑계로 멈췄던 것이 후회된다. 올해부터 다시 백패킹 혹은 트레킹으로 함께 할 수 있는 기회를 많이 만들어야겠다. 다음 백계는 3월 혹은 4월로 계획을 세워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