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6.12-13.
다시 청화산 우복동길 농지다.
주말에 고등학교 선후배 캠핑이 농지 근처 문장대 캠핑장에서 예정되어 있어서 겸사겸사 혼자 왔다. 텐트를 준비했지만 혼자인 데다 여기는 산중이고 무엇이 나올지 모르니 안전한 차 안이 좋을듯하여 차박을 해보기로 했다. 여태껏 차박을 한 적이 없었기에 요즈음 유행하는 특히 코로라 19로 트렌드가 되고 있는 차박을 한 번 해보는 것도 좋은 추억이 될 것 같았다.
차박을 위한 별도의 준비물은 없다. 타프만 치고, 야외테이블을 설치하고 저녁 준비를 하면 끝. 그리고 지프의 뒷좌석을 접고 트렁크까지 실내 공간으로 만들면 조금은 불편하지만 훌륭한 잠자리가 만들어졌다.
오롯이 혼자만의 시간이다.
산 중에 인기척이라곤 없다.
해발 420미터 우복동 청화산 원적골의 밤이 깊어간다.
풀벌레 소리와 간간이 계곡의 물소리가 들린다.
정적 그 자체다.
산 정상 아래쪽 해발 700미터에 원적사가 있다. 원적사는 관광지도 아니고 대중적인 절도 아니다. 조계종 절이고 수도승이 주로 머무는 곳이라 한적하기 그지없다. 아래 마을은 500미터 이상 떨어져 있고 이 마을 역시 몇 가구에 지나지 않고 흩어져 있어서 더욱 왕래가 쉽지 않은 어쩌면 오지에 가까운 곳이다. 다만 우리 밭을 관통하는 도로(아마도 오래전에 임의로 개설한 도로)가 있어서 차량으로 원적사까지 운행이 가능하고 이 도로 때문에 나도 밭까지 차량을 가지고 들어올 수 있다.
깊어가는 밤하늘에 구름인지 안개인지 흘러가고
코펠에서는 물이 끓고
맥주 한 모금에 시름을 잊는다.
어느덧 시간이 지나 정신을 차려보니 적막함에 두려움이 밀려온다.
차량의 실내는 일어설 수 없어서 불편하긴 한데 다리를 뻗고 누울 수 있기 때문에 침낭 안에 들어가서 누우면 편안한 정도의 공간이 확보되었다. 모든 불을 끄고 누우러고 마지막으로 점검차 창문으로 주변을 둘러보는데 저기 언덕 위에 뭔가 빛이 나는 것이 있다. 온몸이 갑자기 긴장되고 어릴 적 들었던 도깨비불이 아닌가 섬뜻했다. 인골에서 반사되는 빛인가, 야생동물의 눈인가? 유심히 살펴보니 빛이 계속 움직인다. 그러고보니 인골이나 야생동물은 빛이 있어야 반사되는데 지금은 칠흑같은 밤이다. 잠시나마 두려움에 떨게 했던 위험한 상황은 아닌 것으로 결론 내렸다.
이제 여유를 가지고 서서히 살펴보니 반딧불이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 여러 개의 불빛이 날아다니는 저것은 반딧불이다. 아무도 안 믿을 테니 사진을 찍어야지 하고 스마트폰을 꺼내 찍어보았지만 밤이고 창문 넘어 그것도 30미터나 떨어진 곳에서 날아다니는 조그마한 물체를 포착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DSLR을 꺼내보기도 했지만 촬영은 실패하고 나의 마음속에 고이 간직하기로 마음먹고 한참을 지켜봤다. 그리고 이곳이 얼마나 청정한 지 알게 되었다.
이튿날 아침
밭이 눈에 들어왔다. 풀밭이다.
작년에 동네 주민이 깨 농사를 지었다고 한다.
이를 어찌할꼬?
시골에 계시는 어머님이 밭에 풀이 있으면 못쓴다라고 하셨던 말씀이 생각났다.
밭에 풀이 나면 호미로 매던 모습이 불현듯 지나갔다.
아니 풀이 좀 있으면 어떤가?
이제 나의 밭에 풀 밖에 보이지 않으니 혹여 지나가던 등산객이나 동네 주민이 보면 농지를 방치한다고 하지나 않을까 염려되었다.
그래서 아직 모임에 갈 시간도 2-3시간 여유가 있고 딱히 할 일이 있는 것도 아니고 낫도 있겠다 생각이 드니 한번 작업을 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이게 엄청난 고난의 행군이라는 것을 다 마치고 나서야 깨달았다. 허리를 굽혔다 펴기를 수백 번 반복한 후에 드디어 깔끔해진 밭을 보니 기분이 좋다. 다음에 올 때는 또 자라나 있기는 하겠지만 지금은 풀밭이 아니라 밭이라서 좋다. 마음이 깨끗해지는 느낌이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