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지에서 캠핑을 하다

2020.05.29-30.

by 구자룡

토지매입 후 25일 만에 청화산 우복동길 밭에 다시 왔다. 잔금까지 치르고, 농암면 사무소에 가서 농지취득자격신청서를 신청하고 등기 절차에 들어갔다. 농기구 매장에서 삽, 괭이, 삽괭이, 낫, 톱 등 기본적인 도구도 구입했다. 내려간 김에 캠핑으로 1박 하기로 했다. 캠핑 장비와 이 장비를 농지에서 보관할 조립식 창고를 사서 차에 실었다.


잡초가 자라기 시작한 농지는 작년에 들깨를 심었던 흔적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5월 말의 맑은 하늘 아래 내리쬐는 땡볕의 열기는 대단했다. 이 땡볕을 가리기 위해서는 타프(방수천)를 쳐야 한다. 먼저 고랑을 메꾸어 평탄하게 만드는 작업을 했다. 내가 괭이로 이랑의 땅을 쪼면 아내가 삽괭이로 고르는 작업을 했다.

나는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지금까지도 고향에 내려가면 농사를 거들었기 때문에 기본은 한다. 물론 40여 년 전 도시로 유학을 떠난 이후 사용하는 근육이 다르기 때문에 농사를 돕는 정도로도 힘이 많이 든다. 이런 경험이 전무한 아내의 고역은 충분히 미루어 짐작이 된다. 그래도 우리는 좋아서 즐겁게 땀을 흘리는 시간을 보냈다.


땡볕을 가린 그늘에 서늘한 골 바람이 불어왔다. 아내가 만든 비빔면으로 맛있는 점심을 먹고 잠시 휴식을 취한다. 마침 하늘은 파란 도화지에 흰 구름으로 그림을 그려놓은 듯하다. 청화산을 뒤로하고 시루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의 싱그러움이 상상의 프레임 안에 한 장의 사진을 만들었다.


2_1-IMG_2263.JPG 우복동 © 2020. 구자룡


오후 3시를 전후하여 나무 그늘이 생기기 시작했다. 텐트를 칠 수 있을 정도의 땅을 고르는 작업을 이어서 했다. 대략 20평 정도의 크기를 손으로, 괭이로, 삽괭이로... 트랙터를 불러 전체 밭을 밀면 10만 원 정도면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다락산장 주인이 전에 귀띔해줬었다. 지금 밀면 전체 땅이 잡초밭이 될 것 같아 캠핑할 수 있는 정도의 땅만 평평하게 만들었다. 어쩔 수 없이 고급 인력을 단순노동에 투입한 꼴이 되었다. 이제는 이런 인식부터 버려야 생존할 수 있는 세계로 입문한 것인데 아직 정신 못 차린 것이다.


처남이 중국에 주재원으로 가면서 사용하던 대형 텐트(코베아 팬텀)를 내게 맡겼었다. 이 텐트를 한 번도 친 경험이 없었다. 텐트를 치려고 보니 중학교 때부터 캠핑을 했던 나로서도 대략 난감한 상황이었다. 보통은 사각형의 바닥에 팩을 박고 세우면서 폴대를 끼우면 된다. 그런데 이 텐트는 너무 크고 팩을 먼저 박는 방식이 아니었다. 설치 매뉴얼을 보고서야 알게 되었고, 큰 그림을 그리고 기둥을 세우는데 30분은 족히 지나간 것 같다. 캠핑을 좋아하지 않는 처남이 이런 텐트를 가지고 있다는 것 자체가 의외였다.


아내와 끙끙거리며 다 세워 놓으니 대궐 같은 크기의 집이 만들어졌다. 다시는 이 텐트를 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전실과 후실로 되어 있어서 4인 가족이 오토캠핑으로 적합한 사양이다. 우리는 여기에 달랑 2명인데... 후회막급. 그리고 포항에서 오기로 한 절친을 위해 나의 백패킹용 텐트(제로그램 엘찰텐 2인용)도 옆에 쳤다. 혼자 5분이 안 되는 시간에 간단하게 집 한 채를 완성했다. 이런 텐트가 나에게는 맞다. 두 텐트를 비교하면 거인과 난쟁이 같다. 이렇게 해서 하루 묵을 집을 완성했다.


캠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물이다. 식수는 생수를 사 온다 해도 나머지 필요한 물은 계곡물을 써야 했다. 어떻게 계곡물을 끌어올 수 있을까를 많이 궁리했다. 결론은 낙차를 이용하여 호스를 적당한 위치까지 끌어오면 되겠다는 생각으로 40미터짜리 호스를 구입했다. 계곡물이 많은 것은 아니지만 도로까지만 끌어와도 생활의 편의성이 높아질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싶었다.


도로 옆 계곡을 따라 위쪽으로 가봤다. 올라갈수록 계곡이 자꾸 멀어지는 상황이라 어쩔 수 없이 30여 미터 밑으로 내려가서 임시 상수도를 만들었다. 물이 과연 나올까? 낙차가 크지 않기 때문에 위에서 밑으로 흐르는 것도 가능할지 의심이 들었다. 짧은 호스로 테스트를 하니 물이 약간의 높이를 넘지 못했다. 그래서 마중물을 생각했다. 호스의 한쪽 끝을 계곡물에 댄 다음 반대쪽 호스를 입으로 빨아들이니 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40미터 호스에 연결하고 아내가 잡고 있는 끝 지점까지 물이 흘러갈 수 있도록 줄을 조정한 다음 "물 나오나?"라고 소리를 질렸다. 약간의 시간이 지난 다음 "나와"라는 아내의 환호 소리를 들었다. 드디어 성공. 임시변통 상수도 완성.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주변의 죽은 나뭇가지로 적당한 크기의 삼각대를 만들어 세우니 훌륭한 수도가 되었다. <삼시세끼>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유해진 씨의 마음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2_2-IMG_2272e.JPG 우복동 © 2020. 구자룡


기다리던 친구가 왔다. 열악한 공간, 금요일 저녁에 멀리 찾아온 친구가 고맙다. 자주 만나지는 못하지만 고등학교와 대학을 함께 다니고, 그 이후 작은 모임을 만들어 지금까지 1년에 서너 번 만나는 절친 중의 절친이다. 만찬은 장어구이와 약간의 삼겹살로 식사를 하고, 총알 오징어를 삶아서 술안주로 먹고, 라면으로 끝냈다. 그리고 깊어가는 밤, 적막한 밤을 위해 숯불에 고구마를 굽고, 장작불을 피워 추위를 막았다. 모닥불이 사그라질 즘 긴 하루를 마무리했다.


산속의 아침은 일찍 찾아왔다. 다양한 새소리와 ‘딱 딱 딱 딱딱~’ 딱따구리의 작업 소리에 잠을 깼다. 새소리의 종류가 다양한데 시간대에 따라 소리가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새들마다 각자의 시간대가 따로 있는 것 같았다. 새벽에 추울 것이라고 했지만 내 말을 듣지 않은 아내가 결국 추위에 잠을 깼다. 겨울용 침낭을 사용하라고 했지만 누에고치처럼 들어가는 침낭의 형태 때문에 아내가 싫어했다. 여름용과 겨울용 침낭을 서로 바꿔서 짧은 꿀잠을 다시 자고 일어났다.


친구는 잘 잔 모양이다. 이 친구와는 80년대 중반 겨울 지리산 종주를 한 적이 있었다. 세석평전의 대피소가 무인으로 운영될 때 정확히 온도는 모르지만 실내가 영하 10도는 되었을 것이다. 달랑 두 사람만 잤는데 장비가 허술했던 이 친구는 추워서 한잠도 못 잤다고 이제야 말한다. 이번에는 겨울 패딩까지 입고 잤다고 한다. 전혀 추위를 느끼지 못했다고 한다. 텐트가 겨울용이기 때문에 아마도 일조한 측면이 있을 것이다. 엘찰텐 텐트로 말할 것 같으면 백두대간 매봉산 바람의 언덕(태백) 어느 고랭지 밭 산판 도로에서 영하 20도를 견딘 그런 텐트다. 이것을 알지 못하는 친구는 패딩을 입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겠지.


간단하게 식빵과 계란 프라이로 아침을 먹고, 커피 한 잔의 낭만을 느끼는 시간을 보냈다. 이제 조립식 창고를 만들어야 하는데, 어제의 피로로 몸을 일으키는데 한참의 시간을 끌었다. 캐터의 락우드라는 제품으로 570리터의 용량이 들어간다. 가지고 온 캠핑 장비와 구입한 농기구를 보관할 생각이다.


포장을 뜯고 조립을 위해 부품을 살피는 중에 뭔가 하나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설명서의 부품과 제품을 확인하는데, 앞면과 뒷면의 판이 동일한 규격인데 원래 2개라고 되어 있는데 하나밖에 없었다. 판매처에 전화를 했지만 주말이라 통화가 되지 않았다. 부피와 무게, 그리고 가지고 온 장비를 생각하면서 부품 하나가 없는 상태에서 조립을 하기로 했다. 뒷면이 텅 비어 있는 상태에서 미완성으로 조립을 끝냈다. 깔끔하고 적당하고 다 좋은데 부품 하나가 부족하여 미완성인 상태가 되었다. 가지고 온 천막으로 감싸는 임시변통을 하고자 마음먹었다. 빠진 부품만 보내주면 좋은데, 걱정이 앞선다.


조립식 창고 하나 조립하는 데는 시간이 많이 걸리지 않았다. 이 창고를 안전하게 주변 환경을 해치지 않은 곳에 잘 놓아두기 위한 기초를 다듬는 것이 문제였다. 위쪽 밭의 옹벽 앞에 도랑을 파고 그 앞에 돌멩이로 직사각형의 기반을 다진 다음 그 위에 올리기로 마음먹고 친구와 함께 계곡가의 넓적한 돌멩이 여러 개를 접이식 손수레에 싣고 끙끙거리며 옮겼다. 족히 1시간은 걸렸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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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점심시간이 되었다. 어제 아내와 둘이 맛있게 먹었던 비빔면을 친구를 위해 다시 준비했다. 삶은 계란까지 올려서.. 그리고 계곡에서 휴식을 취하고, 해 질 무렵 철수했다. 코로나 19 확산으로 착용하게 된 답답한 마스크를 벗고 청화산의 푸르름과 맑은 공기를 마음껏 마신 이틀이었다. 육체적인 고통이 있기는 했지만 힐링이 되는 노동의 시간이었다. 당분간은 캠핑 정도로 이용하면서 농사와 농부의 삶에 대해 계속 공부를 해야 할 것 같다.


우리 밭 바로 밑의 일부 땅에는 아로니아가 심어져 있다. 2-3년 전에 심은 것 같다. 국토부 땅으로 우리 땅의 이전 주인이 사용승인을 받았다고 하니 이 역시 이제는 내가 관리를 해야 한다. 잡초가 무성하지만 작은 열매가 열린 상태다. 집에 와서 검색을 해보니 그냥 두면 되는 것이 아니다. 그냥 두면 웃자라서 열매를 얻기 힘들다고 한다. 가지도 쳐 줘야 되고, 한 곳에 너무 많은 나무들이 있으면 안 된다고 한다. 공부할 일이 너무너무 많아지는 것 같다. 아내가 아이들에게 "아빠가 치매에 걸릴 일은 없을 것 같다"라고 한다.


반농의 삶도 결코 순탄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반농의 삶을 위해 제대로 공부하는 농부가 되어야겠다. 그동안 독학으로 공부를 많이 했는데 농사도 독학으로 할 수 있을까 염려된다. 적당할 때 귀농 귀촌 학교에 들어가 관련 수업을 들어야 할 것 같다. 이제 시작이다. 다행스러운 것은 농촌과 농식품과 농민과 농업 기반 사업가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연속적으로 예정되어 있다. 멀리 남쪽 고창에서 농업으로 창업하는 기업가와 귀농인을 대상으로 마케팅 강의를 하게 되었다. 때가 잘 맞아떨어지고 있다. 강의를 위해 그리고 반농 반작을 위해 로컬에 대한 연구를 본격적으로 해야겠다.


IMG_2276.JPG 우복동 © 2020. 구자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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