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복동 원적골
무더운 여름이 지나고 어느덧 아침저녁으로 한기를 느끼게 하는 가을이 되었다.
우복동 원적골의 해발 420미터.
가을비가 내린 다음 날 안개 자욱한 어느 가을의 아침이 밝았다.
아침 이슬하면 먼저,
김민기 작사 작곡의 '아침 이슬'을 부르며 거리를 쏘다니던 그 옛날의 추억이 생각난다.
"긴 밤 지새우고 풀잎마다 맺힌
진주보다 더 고운 아침 이슬처럼
내 맘에 설움이 알알이 맺힐 때
아침 동산에 올라 작은 미소를 배운다"
진주보다 더 고운 아침 이슬을 우복동에서 보게 되었다.
내 맘에 설움이 알알이 맺히듯 이슬방울마다 하나의 세상이, 하나의 우주가 맺힌 듯하다.
솔잎.
솔잎에 맺힌 이슬방울마다 영롱한 아침이 보인다.
가늘디 가는 솔잎에 곧 떨어질 것 같은 이슬 방울이 맺혔다.
금방이라도 이슬 방울이 떨어질 것 같다.
송엽국.
수줍은 송엽국에 맺힌 이슬이 다가올 햇살을 기다리고 있다.
언젠가 옮겨 심은 송엽국은 해마다 자신의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밤이면 꽃잎을 오므렸다 낮에는 펼친다.
분홍이 보여주는 강렬함을 이제야 느낀다.
억새.
억새의 줄기에도 이슬이 맺혔다.
하나의 줄기에 무려 10개의 이슬이 햇살을 받으며 빛나고 있다.
아침 이슬이 영롱하다는 표현은 아마도 이런 순간을 표현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개여뀌.
아무런 쓸모가 없어서 그런지 지천에 널려져 있어서 그런지,
이제는 신기하지도 않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앙증맞고 예쁘다.
마침 아침 이슬을 머금고 더욱 반짝이고 있다.
햇살에 역광으로 이슬을 머금은 개여뀌를 쪼그려 앉자 한 참을 들여다본다.
사진으로 남겨 놓지 않으면 어찌 작은 꽃과 이슬을 볼 수 있을까.
산박하.
길가에 터를 잡고 있다.
산에서 자란다 하여 산박하라고 한다.
영어로는 민트(mint)라고 하며 그리스신화에서 지옥의 신 하데스의 연인 민테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이 꽃이 산박하가 맞는지 아직도 헷갈린다. 다양하게 검색을 해보았지만 명쾌하지 않다.
무당거미.
황금색 마디 무늬가 있어 무당거미라는 명칭을 얻었다고 한다.
대형 거미라 좀 무섭게 느낄 수 있지만 해충을 잡아 주는 익충이라고 한다.
대식가라 특히 복부가 크다고 한다.
지난밤 나뭇가지 사이에 대형 거미집을 만들었다.
이슬 머금은 무당거미의 거미집에 아직은 걸려든 해충이 보이지 않는다.
농막 주변에 있는 해충을 잡기 위해서는 무당거미를 좋아해야 할 것 같은데...
댕댕이덩굴.
대문 옆으로 이어진 철책 담장을 댕댕이덩굴이 장악했다.
볼 때마다 잘라주었는데 어느덧 열매를 맺었다.
그 열매만큼 큼직한 이슬을 맺었다.
자세히 보려고 검색을 해보니 이 댕댕이덩굴이 약재로 사용된다.
자세히 알면 지천에 약초 천지인데 그것을 알지 못했다.
도라지꽃.
텃밭에 심은지 4년 차이다.
이제는 도라지를 캐야 하는데 꽃을 보려고 그냥 두기로 했다.
코스모스.
코스모스에 벌이 날아들었다.
여기 농막과 텃밭 주변에는 벌이 많다.
아마도 야생화와 심어 놓은 꽃이 있기 때문이리라.
코스모스 씨를 뿌리고 2년 차가 되어 제대로 꽃을 피웠다.
그 막바지 한 가닥 코스모스에 벌이 날아들었다.
로즈메리.
텃밭에 심어 놓은 로즈메리
바늘 같은 잎에 이슬이 맺혔다.
허브향 사이로 햇살이 빛난다.
봉선화.
텃밭에 심어 놓은 봉선화
봉선화 꽃은 이미 졌지만 내년을 위한 열매가 아침 이슬에 빛난다.
아내 손톱에 들인 봉선화물이 아직 마르지 않았다.
우복동 원적골 깊숙한 곳
이 주변에 이렇게나 다양한 식물들이 자리를 잡고 있다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안갯속에 숨어든 아침 이슬을 맞으며 생명은 다시 태어난다.
나도 이슬 한 모금 마시며 다시 태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