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파길 가는 길
[청파동 기행문]
글/구자룡(골목길 문화인류학자)
어느 날 우연히 찾아간 서울의 옛 동네,
오래전 최승자 시인은 이렇게 노래했다.
"주인 없는 해진 신발마냥
내가 빈 벌판을 헤맬 때
청파동을 기억하는가”
그 청파동에 오래된 새길이 났다.
새로 길을 낸 것이 아니라 이미 오래전부터 있었던 그 길을
함께 걸으면 좋은 그런 길로 다시 태어났다.
이정표도 안내지도도 없다.
걷는 자의 마음속에 달랑 지도 한 장 그려 넣고 그냥 걸으면 좋은 그런 길이다.
작년 여름 뜨거웠던 그곳에,
빈 벌판 같이 텅 빈 느낌의 동네가 그곳에 있었다.
아마도 겨울이라 모두 집안에 있는 모양이다.
따스한 온기가 가슴으로 가슴으로 전해져서 훈훈해지면 좋겠다.
현재는 '문화역서울 284’로 명명된 구 서울역사를 출발하여 '서울로 7017’로에 올라서면 서울의 심장과 혈관을 볼 수 있다.
서울역은 암울했던 근대시대의 질곡을 건너, 산업화를 거쳐 현재를 지나, 미래로 나아가는 중심에 우뚝 서 있었다.
강우규 의사의 동상에서, 구 서울역사에서, 그리고 KTX 신 역사에서 심장의 박동을 느낀다.
사통팔달이라 했던가 서울역을 중심으로 대한민국을 연결하는 혈관이 지하와 지상의 수많은 선으로 연결되어 있다.
청파동에는 오래된 가게가 하나 있다. 역사를 가늠할 수 없는 그런 낡은 건물에 구멍가게 하나 있다.
한 세기 동안 꿋꿋하게 한 자리를 지키고 있는 가게, 바로 ‘개미슈퍼'는 오늘도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길 하나 건너면 대형 유통점들이 손짓을 하지만 오래된 가게를 찾는 손님들의 발걸음은 정든 이곳을 떠날 수가 없다.
청파는 푸른 언덕이다. 도시화로 비록 녹지는 사라졌지만 언덕은 남았다.
그 언덕 위에 이름 없는 전망대가 하나 있다. 사유지라 조심스럽게 둘러봐야 한다.
원경으로는 남산에서 저 멀리 북한산까지 조망이 된다.
근경으로는 서울역부터 손기정기념관을 지나 만리재로 넘어가는 고갯마루의 즐비한 아파트 숲도 볼 수 있다.
남산과 북한산, 빌딩과 아파트를 차경하여 맥주 한 잔 하며 일몰을 감상하면 서울에서 이만한 경치를 보기는 아마도 어려울 것이다.
효창공원으로 넘어가는 길에 100년 된 이발소가 있다.
‘성우이용원'은 대를 이어 3대째 같은 자리에서, 같은 건물에서 오래된 가위와 면도칼로 이발과 면도를 하고 있다.
더 이상 대를 이어갈 수 없을 것 같은 안타까움이 있다.
서울미래유산으로 등재되어 있지만 그 미래가 언제까지 계속될 수 있을지 의문이 들 정도로 쓰러져가고 있다.
효창공원은 백범 김구, 이봉창, 윤봉길, 백정기 의사 등 독립을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으셨던 애국열사들의 묘와 사당이 있다.
성역화가 절실히 필요한 그곳이 동네 주민의 휴식공원이 아니라 애국열사들의 정신을 기리는 공간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는 좀 더 깊은 관심이 필요할 것 같다.
공원 바로 옆에는 대한제국의 순헌황귀비에 의해 출범한 숙명여대가 있다.
쓰러져 가는 나라를 교육으로 다시 세우고자 했던 고귀한 뜻이 100년의 시공간을 넘어 현재로 연결되고 있다.
청파길 가는 길이 그리 멀리 있지 않다는 것을, 그리 어렵지 않다는 것을 다시 확인했다.
오래된 동네이기에 재개발 고민도 있고 도시재생 고민도 있다.
왁자지껄하게 떠들면서 다니는 길이 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잠시 동네 한 바퀴 산책하는 기분으로 옛 동네에 얽힌 이야기를 나누며 걸으면 좋은 그런 길이다.
이정표도 안내지도도 없지만 마음속의 지도로 옛 동네의 정취 속으로 스스로 길을 찾아 나선다면 더 좋지 않을까.
‘청파길’은 서울역에서 국립극단, 개미슈퍼, 청파 언덕(전망대), 만리시장, 성우이용원, 효창공원, 그리고 숙명여대 역사관으로 이어지는 도보길로 남영역에서 끝났다. 숙명여대에서 캠퍼스타운 사업의 일환으로 개발했다.
2019년 1월 24일 오후에 '청파길 투어 프로그램'을 시범적으로 실시했다.
(구)서울역사(문화역서울 284), 2019 © 추보 구자룡 
문화역서울 284 내부, 2019 © 추보 구자룡 
서울로7017에서 바라본 남대문, 2019 © 추보 구자룡 
개미슈퍼, 2019 © 추보 구자룡 
청파동 전망대, 2019 © 추보 구자룡 
성우이용원, 2019 © 추보 구자룡
효창공원 의열사 내부, 2019 © 추보 구자룡
숙명여대 역사관 내부, 2019 © 추보 구자룡
청파길 투어 프로그램, 2019 © 추보 구자룡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