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를 알아가고 서로 사랑한다는 건 그야말로 행운 같은 일이다. 그 많은 사람들 중에서 단 두 사람만 같은 기억의 조각을 소유하게 된다는 건 그 어떤 확률보다 낮기 때문이다.
그 낮은 확률에 당첨된 두 사람이기 때문에 그들에게 가장 중요한 건 바로 소통이다. 그 사람의 생각, 감정을 소통으로 공유하면서 서로를 지키고 더 단단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면 둘만의 이야기가 한 조각씩 모이다 보면 언젠가 눈 감는 그 순간 가슴속에 하나의 구슬로 간직할 수 있다.
가슴에 두 사람의 기억과 감정으로 만들어진 조각은 세상에 단 하나뿐인 것이기 때문에 그 누구와도 실질적 공유를 할 수 없다. 이는 만약 두 사람이 아이를 낳았을 때의 아이에게도 적용된다. 아이가 그 기억 조각의 일부로 참여할 수는 있지만 말이다. 아이에 대한 관심은 영향을 줄 수 있을 뿐 상대방에 대한 관심과 아예 다른 부분이라는 것이다.
그들의 사랑과 선택으로 낳은 만큼 아이의 인생을 책임지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영원히 책임질 수도 없고 책임져서도 안된다. 아이도 소중하지만 진짜 소중한 건 두 사람의 관계다. 내 맘대로 조종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 될 아이를 (유아 시절을 제외하고) 더 신경 쓰게 된다면 두 사람의 소통은 점점 사라질 수 있다.
아이가 없을 때의 두 사람을 떠올려보자. 서로만 사랑하고 서로의 생각과 감정을 공유하며 행복하게 지냈을 거다. 이는 아이가 생겼다고 해서 바뀌는 것이 아니다. 아이에 대한 사랑과 분리해서 가져가야지 같은 사랑 영역에서 아이와 상대방을 두고 지분 싸움으로 가서는 안된다. 두 사람의 사랑으로 낳은 아이는 엄밀히 말하면 두 사람의 인생에 방문한 귀한 손님이라고 볼 수 있다. 즉, 언젠가는 두 사람을 떠나게 될 사람이다.
만약 아이에 대한 사랑과 별도로 그 사람과 너무 맞지 않다면 어떡해야 할까? 갈라서면 된다.
아이가 상처받을까 봐 두렵다? 그래도 갈라서야 한다.
단, 두 사람의 진솔한 소통을 반드시 해보고 나서 결정해야 한다.
그래도 부모님이 있어야 나중에 아이에게 도움도 되고 아이가 무시당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을 할 수 있다. 단언컨대 그건 부모의 잘못된 생각이다. 사이 나쁜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는 그 과정에서 불안감, 주눅, 심지어는 사랑에 대한 회의 등의 생각을 안게 되고 부모에게 감사함을 느끼기 어려워진다. 오히려 부모에 대한 원망과 두려움으로 거리를 두게 될 것이다. '아이 때문에 그 사람과 산다'라는 말을 결코 아이 앞에서 꺼내거나 느끼게 해서는 안 되는 이유도 그런 걸 더 가속화시키기 때문이다.
결국 아이에 대한 사랑과 상대방에 대한 사랑을 따로 분리해서 관리하는 게 중요하다. 혼용해서 쓰면 아이 혹은 상대방에게 결국 상처를 줘서 어떤 사람도 다 지킬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