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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억과기억 Dec 06. 2023

인생의 터널을 지나고 있는 그대에게

탄탄대로를 걸으며 살아가는 건 누구나 한 번쯤 살아보고 싶은 삶일 거다. 대부분의 삶이 그렇지 못하기 때문인데 특히 힘든 날이 끝날 것 같지 않을 때는 그런 삶을 더 갈망하게 된다. 그 시기를 비유적인 표현으로 '어두운 터널을 지나고 있지만 빛이 보인다'라고 쓰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과연 그 빛이 있긴 할까?'라는 생각이 떠나지 않기 때문에 회의감을 가질 수밖에 없는 거 같다.

'빛이 보이긴 할까?' 이는 두 가지 의미를 담고 있다.

첫 번째로는 절망이다. 터널 끝에 빛이 있는데 그 끝이 없을 것 같다는 거다. 지금 가고 있는 터널 안에 있는 작은 불빛처럼 소박하고 미소 지을 수 있는 어떤 것이 가끔 있을 수 있다. 하지만 터널의 끝에 있는 빛이 존재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이 절망으로 바뀌면 작은 불빛마저 점점 사라지게 되면서 더 깊은 어둠을 걷게 된다.


두 번째는 두려움이다. 터널 끝에 빛은 분명히 존재하는데 얼마나 더 가야 하는지 모르는 데에서 오는 거다. 끝을 모르는 상태에서 걸어가는 거만큼 지치는 경우가 없다. 더군다나 지금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면 더욱이 힘들다. 끝을 생각하지 않으려고 해도 걸어가고 있는 시간 자체가 힘들면 생각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간에 지금 터널을 지나고 있다면 절망과 두려움은 양립할 수 없기 때문에 선택해야 한다. 이때 무조건 '두려움'을 선택하는 게 정답이다. '끝이 언제일지 모른다'는 건 적어도 끝이 존재한다는 믿음이 있다. 이는 희망을 안고 나아갈 수 있다는 뜻이 된다. 즉, 두려움을 선택한다는 건 희망을 선택한다는 의미가 된다.


절망과 희망의 '망'은 望 (바라다 망)으로 같은 한자를 사용한다. 그 바람을 끊어버리기보다는 더 바라는 것이 중요하다. 이대로 어둠 속에서 계속 힘들게 살지 않으려면. 지금 어차피 힘들다면 두려움을 안고 희망까지 안고 버티는 게 어떨까? 절망을 안고 가만히 있거나 움직이기보다는 두려움을 안고 움직여 탈출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만들어보자. 터널의 끝에 보일 밝은 빛을 한 번은 봐야 하지 않은가 우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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