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쨌든 하면 된다.
다행히 좌회전 우회전이 거의 없었기에 간간히 등장하는 표지판을 확인하고 달렸다. 그리고 난 결국 '그랜드캐년 국립공원' 입구에 도착할 수 있었다. 시간을 보니 3시 58분. 안도감이 들자 오줌이 더 마려워졌다. 그리고 주유소의 여부가 중요했다. 티켓부스에 물어보니 안으로 조금만 들어가면 주유소가 있다고 했다. 그렇게 난 결국 해냈다.
'High risk high return'이라는 유명하고도 고루한 문장이 떠올랐다. 결국 어찌 됐든 '위험'을 감수해야만 뭐라도 얻어낼 수 있는 게 인생이구나. 앞으로도 이 경험을 잊지 말자고 생각했다. 내가 만약 기름이 떨어지는 게 두려워 중간에 주유소를 들렀다면, 생리현상을 해결하기 위해 멈췄다면 도착하지 못했을 것이다. 가볍고 설레는 마음으로 그랜드 캐년을 돌아보기 시작했다. 출발하기 전에 대충 둘러본 이런저런 블로그를 보니 그랜드캐년은 워낙 넓어서 여러 곳의 관광 포인트가 있다고 한다. 블로그에는 이런저런 정보와 설명, 그리고 아주 '효율'적인 코스를 제시하고 있었다. 이를테면 어떤 포인트에서 출발해 어떤 포인트로 이동하는 게 좋고, 어떤 포인트에서는 뭐를 봐야 한다 같은?
나는 그게 참 싫었다. 나는 '낭만'의 반대말은 '효율'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효율을 찾기 시작하면 낭만은 저 멀리 도망가 버린다고 생각한다. 설명하기 힘들지만 우리가 느끼는 낭만은 보통 비효율적이라 낭만적인 것이다. 그래서 블로그글은 대충 훑어보고 발 길 닿는 대로, 운전대를 잡고 둘러보기 시작했다. 제일 중요한 것은 내가 그랜드캐년에 왔고 그랜드캐년을 눈에 담을 수 있다는 것이지 누군가 추천하는 꼭 봐야만 하는 것을 보는 게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랜드 캐년으로 향할 때 도로 위에서 마주치는 절경들도 실로 대단해서
'이 정도면 그랜드캐년 다 본거 아닌가?
라는 건방진 생각을 했었다. 실제로 그랜드캐년을 목격하니 실로 경탄스러웠다. 열심히 사진으로 담았지만 압도적인 거대한 자연의 신비로움은 사진으로 담을 수 없었다. 그렇게 2~3시간 감탄을 하다 해가 떨어질 때쯤 숙소로 돌아가기 위해 차에 올랐다. 역시나 돌아가는 길 또한 지루함의 연속이었다. 당장 내일 멕시코로 향하는 비행기가 예약되어 있었기 때문에 얼른 돌아가서 쉬고 싶었다. 완전히 해가 떨어지고 어두워지자 운전은 더 지루했다. 그렇게 어둠 속을 달리다 완전한 어둠 속에서 하늘을 보고 싶었다. 대 자연 한가운데 차를 세우는 것이 무서웠지만 용기를 내어 차를 세우고 차의 라이트도 껐다. 그리고 하늘을 올려다보니 정말 뻔한 표현이지만 '별이 쏟아질 것처럼' 가득했다. 육안으로 은하계가 보일 정도였다.
그렇게 한참을 별을 보다 다시 출발했다. 내비게이션을 보니 이제 무난히 2시간만 운전하면 숙소에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그때, 하루정도는 충분히 버틸 수 있을 것이라 감히 예상했던 보조배터리가 엥꼬가 났다. 보조배터리만 믿고 차량용 핸드폰 충전기를 챙길 생각을 못했다. 아무리 직진만 한다 해도 숙소 도착까지 두세 번 정도의 갈림길과 몇 번 정도의 좌, 우회전이 있기 때문에 내비게이션은 꼭 필요했다. 어쩔 수 없이 휴게소처럼 보이는 곳에 정차했다. 알고 보니 그곳은 트럭운전기사들이 쉬는 스테이션 같은 곳이었다. 차량용 핸드폰 충전기를 사려고 보는데... 가격이 최소 25달러 정도였다. 멍청비용을 들여서 살까 하다가, 화장실의 콘센트를 잠깐 빌리기로 했다.
그렇게 또 달리다 보니 라스베가스 도시의 불빛이 눈에 들어왔다. 도시의 불빛이 이렇게 반가울 줄이야.
그렇게 숙소에 잘 도착해, 내일 예정된 멕시코행을 위해 짐을 싸고 잠에 들었다.
'정말로 후련했다.'
이렇게 미국일정이 마무리되는구나. 이런 계획조차 없었던 일정을 잘 마무리하고 나니
알고 있었지만 다시금 떠오른 문장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