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수구 같은 나라.
호기롭게 학교를 박차고 나왔지만, 아직 무엇을 해야 할지 그리고 무엇을 하고 싶은 지 정확하게 정해진 것이 없었다. 그래서 라스베가스로 떠나온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너 뭐 할 건데?'
라는 질문이 반가우면서도 아팠다. 내가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해야 할 질문이었지만, 정작 나는 잊고 있었다. 그래서 이 친구를 좋아한다. 선명하고 직선적이다. 다행히 이 질문을 해 주었기에, 흐려졌던 내 여행의 목적이 다시 선명해졌다. 다시 나의 머리는 복잡해지고 바빠질 수 있었다.
한 달이 넘어가는 꽤 긴 모험을 하다 보면, 시작했을 때의 마음이나 목표가 흐릿해진다. 새로운 날씨와 문화에 눈은 바빠지고 신경은 꽤 많은 곳으로 흘러들어 가, 내가 정작 집중해야 하는 것은 뒷전일 때가 있다. VR관련하여 이야기를 꺼냈다. 코미꼬는
"미국"
"미국"
"미국"
이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결국 모든 최첨단 사업은 미국이 아니겠냐고, 미국으로 넘어가서 도전할 생각을 해보라고 권유했다. 자신도 결국 목표는 미국 무대라고. 한 번쯤 생각해 볼 법도 한 아이디어를 나는 단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했다. 밤마다 생각이 깊어졌다. 내가 할 수 있는 것, 내가 하고 싶은 것, 내가 잘할 수 있는 것 들에 대해 생각하고 메모하고 결론짓고 또 다른 생각을 시작했다.
"내가 미국에 갈 수는 있을까?"
"미국에 가면 당장 하고 싶은 것이 있는가?"
"한국에서는 무엇을 할 것인가?"
.
.
.
질문은 끊이지 않았고 머리는 아주 바빠졌다.
이런 생각들이 시작되면서 난 모든 부분에서 더 예민해졌다. 멕시코를 관찰하기 시작했고, 안 보이던 것들이 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멕시코에 살면 괜찮을까?'
라는 생각을 잠깐 해 본 적이 있는데, 몇 초 걸리지 않아 안될 것 같다는 답이 나왔다. 꽤 큰 기대를 안고 멕시코에 왔지만, 멕시코를 관찰하면 관찰할수록 실망스러운 부분만 눈에 들어왔다.
멕시코를 한 단어로 표현하자면 '하수구'라고 표현하고 싶다. 미국이라는 큰 집 밑에 있는 하수구 같은 느낌이었다. 미국이 있기 때문에 존재할 수 있고 미국이란 집에서 떨어지는 것들로 살아가는 것 같았다. 미국이 의도적으로 멕시코를 하수구로 만들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하수구는 상수도와 마찬가지로 중요하고 또한 '집'과 연결되어 있다. 멕시코는 그런 의미에서 기회의 땅이다. 미국이라는 세계에서 가장 큰 집에 올라갈 수 있는 기회가 있어 보였다. 하지만, 내게 맞는 기회는 아닌 것 같다는 '본능적 거부감'이 들었다. 남미가 나와 맞지 않는 걸까?
이런 '본능적 거부감'때문에 기분이 썩 좋지 않았고, 멕시코에서 아르헨티나로 향하는 비행기에서 나는 불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