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좋은 바람' 부에노스 아이레스
부에노스아이레스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앞서 말한 우려만큼이나 기대도 가득했다. 누가 내게
'당신 인생에서 가장 멋진 1년이 언제냐?'
고 묻는다면, 아마 나는 아르헨티나에서의 2019년이라고 주저 없이 말할 것이다. 아마 이 대답은 어지간하면 죽기 전까지 유효할 것이다. '축구선수'에 도전하며 매일매일이 힘들었지만 황홀했던 시간을 보낸 추억 가득한 곳, 아르헨티나에 5년 만에 방문한다. 2019년 아르헨티나에 처음 도착했을 때보다 공항은 더 크고 좋아졌다. 아르헨티나 환율은 오르고 나라는 더 어려워졌다고 소식을 들었는데 공항에서 받은 인상은 상반됐다.
공항은 늦은 시간이었지만 사람들이 붐볐고(나중에 이렇게나 붐빈 이유를 알게 되었는데 바로 전날 파업 때문이었다.), 못 보던 건물도 들어섰으며 공항 내부시설은 더 좋아졌다. 빈곤한 나라라는 인상은 전혀 받을 수 없었다. 교통카드 충전이 현금으로 밖에 안되는데, 현금이 없어서 우버를 불러 부에노스 아이레스 시내로 향했다. 늦은 밤 부에노스아이레스 공기는 시원하고 기분 좋았다. 숙소에 도착하니 배가 고팠다. 뭘 사 먹으려 해도 당장 현금이 필요하기 때문에 숙소 근처 끼오스코(편의점)에서 환전을 시도했다. 이 나라 사람들은 불안한 화폐가치 때문에 달러를 좋아한다.
"나 지금 도착해서 달러밖에 없는데, 환전해 줄 수 있나?"
-얼마?
"100달러"
-일단 위험하니까 들어와
야간에 열려있는 끼오스코(편의점)는 보통 창살로 막혀있고 손님은 밖에서 주문을 하는데 환전을 한다니까 들어오라고 한다. 그래서 100달러를 1달러에 1000페소로 환전했다. 5년 만에 엄청난 화폐가치 급락이었다. 2019년 아르헨티나에 처음 왔을 때만 해도 1달러에 45페소였고, 1년 뒤 내가 아르헨티나를 떠날 때도 1달러에 그래봐야 70페소였다.
5년 전에 잘 구경도 못했던 1000페소짜리 지폐가 1000원짜리처럼 느껴졌다. 우리나라가 IMF 때 1달러에 800원이었던 것이 2000원이 됐을 때도 대한민국은 이제 망했다고 세상 끝난 것처럼 뉴스가 빗발쳤는데, 아르헨티나에게 그 정도는 그냥 애교 수준이었다.
첫날 밤은 산텔모 쪽 숙소를 잡았는데, 그 이유는 부에노스 아이레스 센뜨로(시내)의 아침풍경을 보고 싶어서였다. 서울에 비유하자면.. 종로나 을지로 정도에 숙소를 잡았다고 보면 된다. 왠지 모를 뒤숭숭함을 가득 안고 잠에 들었다. 그리고 곧 아침이 되었다. 난 서둘러 밖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