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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온 마을이 필요하다

by 교준

1.

2019년 가을, 부산에서의 학교 설명회 자리로 기억한다. ‘책과 아이들’ 건물 앞마당에는 초록잔디가 펼쳐져 있고, 활짝 열린 문으로 들어가면 온갖 그림책으로 둘러 쌓인 아담한 다목적실이 자리 잡고 있다. 그곳에서 지혜학교에 관심 있는 가족들이 삼삼오오 둘러앉아 학교에 관한 여러 이야기들을 들었다. 각자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알아서 척척 준비해 오는 재학생들의 발표는 언제나 감동이었다.

학교에 관한 재미있고 신나는 이야기들이 나올 만큼 나온 뒤에, 저기 구석에서 딸 아이의 아빠가 조심스레 손을 들고 이런 질문을 했다.


“궁금한 게 하나 있습니다. 아이들은 거기서 연애도 하나요? 관련해서 학교에서는 어떤 교육을 하는지 궁금합니다.”


이에 박세천 선생님이 대략 이런 답변을 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학생들의 자신의 삶을 책임 있게 사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연간 2회 전체 성교육과 일상 수업에서 성과 관련된 소통, 관계 교육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또 학생문화 차원에서 공공장소에서 연인들의 몸가짐에 대해서 함께 이야기하고 합의하고 있습니다.”


그 자리에 함께 앉아 있었던 나는 손을 들고 이런 말을 덧붙였다.


“그런 교육이나 공동체 합의와 더불어 저는 연애를 하는 학생들에게 당사자로서 열렬히 사랑하라고, 후회하지 않도록 뜨겁게 사랑하기를 권합니다. 그 시기에 할 수 있는 경험이 있고, 이를 통해 배우고 성장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보면 서로 부딪히는 이야기들이고, 저렇게 보면 서로 채워주는 이야기들일 수 있겠다. 그날 함께 자리했던 재학생들 몇몇이 뒤에서 ‘학교 설명회 자리에 와서 이렇게 서로 다른 말을 하면 어떻게 하냐’며 투덜거렸다는 말을 무심결에 전해 들었다.


2.

비슷한 시기에 학교 운동장 초입 공터로 45인승 버스 1대가 들어왔다. 전남의 어느 대안학교 교사들인데 이른바 ‘선진지 탐방’을 온 것이다. 학교 강당에 둥글게 모여 앉아서 간담회를 진행했다. 당시 일과 중이라서 지혜학교 구성원들의 경우 교장 선생님과 몇몇 부장 선생님들만 참석했다. 학교에 대한 전반적인 현황과 교육과정에 대한 설명을 간단하게 한 다음, 자유롭게 질문과 답변을 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날 여러 이야기들을 주고 받았는데, 내 기억 속에 선명하게 남아있는 장면이 있다. 그 자리에 참석했던 전남의 모 대안학교 교감 선생님이 이렇게 물었다.


“사실 대안학교에서 일하면서 많은 어려움들이 있는데, 솔직히 말하면 교감 입장에서 교사들 사이의 갈등도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 중 하나입니다. 10년 이상 학교가 운영되는 과정에서 교사들 간의 갈등을 어떻게 해결해 왔는지 궁금합니다.”


이에 교장 선생님의 답변이 있었고, 더 이상 질문이 없어서 간담회 자리가 마무리 되려는 그때, 나는 기어이 손을 들고 이야기를 덧붙였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저기 맞은 편에앉아 계신 과학 선생님은 수년 동안 회의 시간에 많은 현안에 관해서 저와 사사건건 부딪혀 왔습니다. 서로의 기질이나 가치관 등이 다르다 보니 같은 사안에 대해서도 계속 부딪힙니다. 앞으로도 그럴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이런 갈등이 파국으로 치닫지 않고 있습니다. 저분도 나만큼, 또는 나보다 더 이곳 지혜학교를 사랑하고 있다는 점, 우리 학생들에게 소중한 분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한 치의 의심도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마 과학 선생님도 저에 대해 그렇게 생각할 것입니다. 그런 믿음을 가지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2019년, 교육과정 개편 작업으로 서로 간에 의견 대립이 무르익던 시기에 나는 이렇게 공개적으로 박세천 선생님에게 나의 속내를 드러냈었다. 그리고 5년이 흐른 지금도, 교감의 역할을 맡아서 새까만 맨발로 동분서주하는 모습을 멀리서 보면서 내 마음이 그때와 같다는 것을 확인한다.


3.

“한 명의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 아프리카 속담으로 알려져 있는, 유명한 말이다. 한 명의 사람을 키울 때에도 모든 이들이 서로 힘을 모아야 한다는 말로 읽힌다. 나는 이 구절을 ‘그 아이’의 입장에서 읽어 본다.

아이가 자라날 수 있는 곳은 온갖 사람들이 함께 모여 사는 ‘마을’이다. 마을에 사는 사람들은 제각각이다. 마을에는 어떤 잘못도 푸근하게 품어주는 우리네 할머니부터, 깐깐한 옆집 할아버지도, 허둥지둥 뒷집 아저씨도, 볼 때마다 잔소리하는 앞집 이모도 살고 있다. 심심하면 놀러 가서 농담을 따먹을 수 있는 아랫집 젊은 삼촌도 있고, 매일 땀 흘리며 망치를 두드리는 대장간 아저씨도 있다. 이들은 각자 자신의 자리에서 다른 표정으로 다른 일을 하고 있다. 아이들은 이렇게 서로 다른 사람들 사이에서 이런저런 일들을 하거나 겪으며 자라날 것이다.

지혜학교를 떠받치고 있는 선생님들의 면면을 떠올리면 다들 하나같지 않다. 이들 사이에서 박세천과 추교준의 차이는 새발의 피다. 지혜학교 학생들은 서로 다른 자리에서 여러 방식으로 몸을 움직이는 선생님들을 만나면서 다양한 것들을 얻어 갈 것이다.

‘선생님들마다 말이 서로 다르면, 학생들이 혼란스럽지 않을까요?’ 걱정 어린 물음이 여기저기서 들린다. 만약에, 아주 만약에 ‘학교’라는 곳이 지시와 통보, 안내만이 울려 퍼지는 곳이라면, 모두가 똑같이 생긴 교실에서 똑같은 옷을 입고 똑같은 내용을 배우며 똑같은 정답만을 이야기해야 하는 곳이라면 이러한 다양함을 혼란이라고 읽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사람이란 단순히 자극과 반응으로 ‘생존’하거나 0과 1이라는 전기 신호로 ‘작동’하는 그런 존재가 아니다. 최소한 10여 년을 이 땅 위에서 살아 온 사람에게는 자기 내면에 있는 다양함을 느끼고 이를 바탕으로 마침내 세상을 풍요롭게 해석해 낼 힘이 있다. 이는 별 다른 말이 아니다. 자연이 지닌 다양성에 관한 이야기이며, 자연적인 존재인 인간이 자연스럽게 산다면, 같은 말이지만 인간답게 산다면 응당 갖출 수 있는 힘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리고 학생들이 자라나는 배움터란 그런 자연을 닮아야 한다는 것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리하여 지혜학교의 학생들은 서로 다른 선생님들 사이에서 혼란을 겪을 것이다. 화가 나거나 고통스러울 것이다. 처음에는 내 편이라고 생각하는 선생님 주위에서 하하 호호 신나게 웃으며 내 편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선생님들에 대해서는 뒤에서 한껏 욕할 것이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이 선생님들 모두 ‘지혜학교의 선생님들’이라는 것을, 어느 누구 하나 학생들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더 나아가 상황과 맥락에 따라 이 선생님의 말도 맞을 수 있고, 저 선생님의 말도 맞을 수 있다는 것을 배우게 될 것이다. 살아가는 데에는 정답이라는 것이 따로 없다는 것을 배우게 될 것이다. 학생들은 서로 다른 선생님들 사이에서, 서로 다른 생각들이 열어 젖힌 그 간극에서 나만의 생각을 세우기 위해 이런 저런 노력들을 하기 시작할 것이다. 그렇다. 한 사람이 자라기 위해서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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