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을 암살하라

역사는 잃어버린 신화일 뿐이다.

by 아이호퍼

미국 역사에서 4명의 대통령이 암살로 사망을 했다.

그리고 5명의 대통령에 대한 암살 시도가 있었다. 포드 대통령은 재임 중인 1975년 9월 5일과 22일 두 차례나 저격을 받았으나 털끝 하나 다치지 않고 무사했다. 9명의 대통령에 대해서 10번의 암살 시도가 있은 셈이다.


미국에선 대통령의 암살을 다룬 영화나 드라마가 상당히 많다. 그중에서도 <달라스의 음모, 1973년작>, <제푸르더 필름, 1975년작>, <Beyond JFK, 1992년작>, <JFK, 1991년작>, <더 파크랜드, 2013년작>, <킬링 케네디, 2013년작>, <재키, 2016년작>처럼 케네디 대통령의 암살은 영화나 드라마의 가장 인기 있는 소재다. 케네디 대통령의 뉴프론티어 정신이 미국인에게 끼친 지대한 영감과 그의 죽음을 둘러싼 미스터리 한 사실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했기 때문일 것이다.

▲ 케네디 대통령의 암살을 소재로 한 영화의 포스터. 맨 좌측의 파크랜드(PARKLAND)는 케네디 대통령이 저격을 받은 후 옮겨졌던 병원의 이름이다.

암살의 대상이 되었던 9명의 대통령에 대해 살펴보자.


에이브러햄 링컨(Abraham Lincoln)

암살로 희생된 최초의 대통령은 에이브러햄 링컨이다. 링컨은 대통령에 당선된 이듬해인 1865년 4월 14일 워싱턴 D.C의 <포드 극장>에서 연극을 관람하는 중에 머리에 총을 맞고 그다음 날 사망했다. 암살범 존 윌킨스 부스 John W. Booth는 남부 연합의 광적인 추종자였고 링컨을 증오했다고 한다. 암살에 성공한 부스는 “독재자는 죽음으로....”라는 뜻의 라틴어를 외친 후 도망을 갔고, 결국 버지니아의 한 창고에서 북군에 대항하다 사살되었다.


암살범 부스를 링컨을 죽인 미치광이 배우 정도로 알고 있는 게 보통이다. 사실, 부스는 당대의 인기 배우이자 남부군의 충성스러운 비밀요원으로서 남다른 정치적 열정을 가진 인물이다. 미국 역사에 가장 큰 죄를 범한 잘못된 열정이었지만 말이다. 180여 년이 지났지만, 링컨 암살 사건은 아직까지도 수많은 추측과 가설을 낳고 있다. 그중에 하나가 2013년에 개봉한 영화 <킬링 링컨>이다. 영화는 부스의 신념과 행동이 ‘미친 것이 아니라 틀린 것’이라고 말하는 듯하다. 역사는 승리한 자들의 작품이니까!

▲ 국립초상화박물관에 걸린 링컨의 초상화

링컨의 암살을 예고한 불길한 징조가 여러 번 있었다. 링컨은 암살당하기 3일 전, 아내에게 꿈 얘기를 했다.

"꿈에서 죽음과 같은 적막이 감돌았고 많은 사람들이 우는 것 같은 소리가 들렸어. 그리고 아주 소름 끼치는 것을 보았지. 내 앞에는 수의로 싼 시체가 있었고, 그 주위에는 호위병과 많은 사람들도 모여 있었지. 나는 한 호위병에게 물었어. ‘백악관에서 누가 죽었소?’ 그가 대답했어. ‘대통령입니다. 암살당하셨습니다.’ 그러자 군중들이 큰 소리로 울었고 나도 꿈에서 깨어났다네”


워싱턴 D.C의 국립초상화박물관에 소장된 링컨의 사진 중에는 굵은 선 자국이 마치 총탄이 머리를 관통하는 것처럼 보이는 작품이 있다. 링컨이 생애 마지막으로 찍은 이 사진은 인화할 때 유리가 깨져 사진에 그 흔적이 남은 것이다. ‘깨진 유리 초상’이라고 불리는 이 작품은 링컨의 불행한 미래를 예언한 물품으로 알려져 있다.


제임스 가필드(James Garfield)

암살의 두 번째 희생자는 제20대 대통령인 제임스 가필드다. 1881년 7월 2일 가필드는 동창회에 참석하러 기차역의 대합실을 지나갈 때 찰스 기토Charles J. Guiteau로부터 44구경 리볼버 총알 두발을 등에 맞고 쓰러졌다. 암살범 기토는 "난 건장파이며 아서가 대통령이다!"라고 소리를 질렀고, 현장에서 즉시 체포되었다. 스스로 '건장파'라고 칭한 기토는 범행 동기에 대해 “가필드 대통령이 자신을 파리 주재 미국 대사에 임명하는 것을 거부한 데에 대한 앙심을 품었다”라고 밝혔다.


가필드 대통령의 사망원인은 총탄이 아니라 의료사고라는 것이 정설이다. 심지어 "의사들이 그를 가만 내버려 뒀다면 틀림없이 살 수 있었을 것"이라는 주장도 제기된다. 암살범의 총탄은 중요 장기를 전혀 스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가필드가 총탄에 쓰러지자 12명의 의사가 치료에 투입됐다. 의사들은 대통령의 피를 뽑은 후, 몸속에 박힌 탄환을 제거하기 위해 금속 도구와 손가락으로 상처부위를 헤집었지만, 탄환은 숨바꼭질하듯 더욱 몸속 깊숙이 숨어 들어갔다. 금속 탐지기까지 동원됐지만 탄환을 찾아내지 못했다.


끝내 가필드 대통령은 사망했다. 주된 사망원인은 피를 너무 많이 흘린 데다, 탄환을 꺼내기 위해 의사들이 소독되지 않은 금속 도구와 더러운 손가락으로 상처부위를 마구 헤집은 바람에 발생한 세균 감염이다. 취임한 지 불과 넉 달만의 일이다.


가필드 대통령은 자수성가의 대명사다. 역대 미국 대통령 중에서 가장 가난한 가정에서 자랐다. 오하이오 주 클리블랜드 근처의 조그만 통나무집에서 태어나, 한 살 때 아버지를 여읜 가필드는 통나무집에서 4남매와 함께 홀어머니 손에 자랐다. 어릴 적부터 막노동을 하며 고달픈 유년시절을 보냈지만, 어머니로부터 올바른 삶의 가르침을 배웠다. 가필드는 취임식장의 대통령석에 어머니를 대신 앉히고, 취임사에서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남을 도울 수 있었던 것은 어머니의 가르침 때문"이라고 말한 후, 어머니가 사용한 성경에 취임선서를 한 일화는 교과서에 실릴 만큼 감동적이다.


17살에는 오하이오 농장에서 하인 생활을 했는데, 농장주의 외동딸과 사랑에 빠졌고 농장주에게 들켜 쫓겨났다. 35년 후 가필드가 사용한 방에서 "농장주의 딸을 사랑했다"라는 메모를 뒤늦게 발견한 농장주는 땅을 치고 후회했다고 한다. 농장에서 쫓겨난 가필드는 하이럼 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한 후 문학교수로 임용되었고, 다음 해인 1857년에 26살의 나이로 하이럼 대학의 학장에 올랐다. 변호사 자격증까지 취득한 가필드는 잇따라 오하이오 주 상원의원에도 당선되었고, 남북전쟁이 발발하자 자원입대했다. 3년간 군에 복무하면서 두 차례의 전투에서 큰 공을 세웠고, 최연소 소장으로 진급해 전쟁영웅으로 전국에 이름을 알렸다.


가필드는 군 복무 중에 연방하원 의원에 당선되었고, 17년 동안 하원의원을 역임하면서 공화당의 재정과 군사 전문가로 자리 잡았다. 1880년엔 공화당 대선 후보를 선출하는 중재 전당대회에서 36번의 재투표 끝에 극적으로 공화당의 대통령 후보에 지명되었고, 본선에서는 민주당의 윈필드 스콧 핸콕 후보를 불과 1,898 표차로 꺾고 마침내 대통령직에까지 올랐다. 미국 역사상 하원의원 재직 중에 대통령이 된 사람은 가필드가 유일하다.

▲ 암살범 촐고츠가 흰 수건으로 권총을 가린 후 맥킨리 대통령에게 총격을 가하는 장면

윌리엄 맥킨리 (William Mclinley)

맥킨리 대통령은 1901년 9월 5일부터 나이아가라 폭포에 있는 버펄로에서 열린 전미 박람회에 참석했다. 박람회 두 번째 날인 9월 6일 28세의 무정부주의자 레온 촐고츠Leon Czolgosz가 권총으로 맥킨리 대통령을 향해 두 발의 탄환을 발사했다. 첫 번째 총알은 매킨리 대통령의 양복 조끼 단추를 맞고 비껴나가 어깨를 스쳤다. 두 번째 총알은 복부를 관통해 위, 대장, 콩팥을 지나 몸속 깊숙이 박혔다. 이 두 번째 총알은 당시 의학 기술로는 발견하기 어려웠다. 그 이유는 맥킨리 대통령이 너무 뚱뚱해서 복부에 깊숙이 박혀 버렸기 때문이다. 담당 의사들은 총알을 무리하게 찾는 것이 오히려 해가 될 수 있다는 판단에 따라 그 총알을 그대로 두기로 결정했다.


다음날인 9월 7일에는 맥킨리 대통령의 상태가 호전되었고, 9월 11일에는 아침 식사를 할 수 있을 수준이 되었다. 하지만 9월 12일 오후가 되자 상태가 급격하게 악화되었고, 사건 발생 8일 후인 9월 14일 오전 2시 15분에 상처 부위의 감염과 괴저로 사망했다. 부통령인 시어도어 루스벨트가 역대 최연소인 43세의 나이로 대통령직을 승계했다. 후일 루스벨트는 이렇게 회고했다.

"나는 대통령이 되고 싶었지만, 그런 식으로 대통령이 되고 싶지는 않았다."


존 F. 케네디(John F. Kennedy)

1963년 11월 22일에 미국 케네디 대통령은 포드 자동차 회사에서 만든 링컨 컨티넨탈 차를 타고 텍사스 주 댈러스 시내에서 퍼레이드를 하고 있었다. 오후 12시 30분 딜리 플라자를 지나던 케네디 대통령의 차량에 보관창고 건물 6층에서 리 하비 오스월드가 3발을 쐈다. 한 발이 케네디 대통령의 목에 관통되었고 목을 잡고 고통을 호소하다 부인 재클린이 보는 앞에서 다시 머리에 총알을 맞고 사망했다.


오스월드는 케네디 저격 후 도주했고, 1.6km 정도 도주했을 때 텍사스 순찰경관 J.D. 티핏이 오스월드를 정지시켰다. 그러나 티핏은 오후 1시 15분경 오히려 오스월드에게 리볼버 권총으로 살해당했다. 30분이 지난 1시 45분경에 텍사스 극장의 제보로 오스월드는 체포됐다. 그리고 11월 23일 새벽 1시 30분에 케네디 암살범으로 공식 기소되었다. 하지만 오스월드는 11월 24일 아침에 텍사스 경찰서 지하에서 잭 루비라는 나이트클럽 경영자의 총에 맞아 암살되었다.

▲ 케네디 메모리얼의 전경(좌)과 내부(우) 모습


케네디 대통령이 저격당한 장소에서 한 블록 떨어진 곳에 <존 F. 케네디 메모리얼>이라는 추모 조형물이 있다. 너무나 수수해서 번쩍이는 초고층 빌딩 사이에서 되레 눈에 띈다. 소박한 디자인으로 설계해달라는 케네디가의 요청에 따라 건축가인 필립 존슨이 위가 뚫린 상자 같은 단순한 형태로 완성했다고 한다. 안으로 들어가 보면 아무런 설명도 없이 케네디의 이름이 새겨진 검은색 화강암 비석판이 바닥에 덩그러니 놓여 있다. 사방이 뚫린 개방형 묘에 가깝다. 사람들은 이곳을 ‘조용한 피안의 장소 a Place of Quiet Refugee’로 부르기도 한다. 아마도 혼잡한 도심 속에서 하늘을 조용히 벗 삼아 편안히 잠들기를 희망하는 듯하다.


앤드류 잭슨(Andrew Jackson)

제7대 대통령인 앤드류 잭슨은 미국 최초로 의회로부터 불신임 결의안이 채택된 대통령이자, 최초로 암살 시도에 노출된 대통령이다. 물론 잭슨에 대한 두 번의 암살시도는 모두 실패로 돌아갔다.

1835년 1월 30일, 잭슨 대통령은 워렌 데이비스라는 의원의 장례식에 참석했다. 영국 출신의 실업자인 페인트공 리처드 로렌스가 몰래 잭슨 대통령의 뒤를 따라갔다. 그의 호주머니에는 총알이 장전된 두 개의 권총이 들어 있었고, 장례식을 마치고 지나가는 대통령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으나 불발이었다. 순간 주변 사람들은 놀라서 우왕좌왕했으나 67세의 잭슨 대통령은 전혀 당황한 기색 없이 저격범을 향해 본능적으로 지팡이를 들어 방어했다고 한다.


이때 저격범은 두 번째 권총을 꺼내 잭슨을 향해 발사했으나 여전히 불발탄이었다. 권총 두 발 모두 불발탄일 확률은 12만 5,000분의 1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32세의 저격범은 스스로를 영국 국왕의 합법적 계승자라고 밝혔으며, 미국 대통령이 자기 아버지를 죽이고 보상금 지급을 거절했다고 주장했다. 법원은 5분 동안의 심리 후에 그를 정신병자로 단정하고 더 이상 법적 책임을 묻지 않았다. 이때부터 정신병은 각종 저격범이 즐겨 사용하는 핑계가 되었다.


▲ 20달러 지폐 앞면에 앤드류 잭슨 대통령의 얼굴이 새겨져 있다.

앤드류 잭슨은 미국의 20달러 지폐의 주인공이다. 잭슨이 대통령으로 선출된 지 100년이 되는 해인 1928년부터다. 그로부터 100여 년이 지났는데, 20달러 지폐의 주인공이 다른 사람으로 바뀔 수도 있다. 2021년 1월 25일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재무부가 해리엇 터브먼을 20달러 지폐 앞면에 넣으려 다시 조치를 하고 있다"라고 발표했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였다.

"우리의 지폐, 우리의 화폐가 우리나라의 역사와 다양성을 반영하는 것이 중요하고 20달러 지폐에 터브먼이 들어가는 것은 분명히 역사와 다양성의 반영에 속도를 내는 것이다."


해리엇 터브먼은 19세기에 노예해방운동을 실천한 인권운동가이자 흑인 여성으로서 노예출신이다.


시어도어 루스벨트(Theodore Roosevelt)

매킨리 대통령의 암살로 미국 역사상 최연소인 만 42세의 나이로 대통령에 취임한 시어도어 루스벨트도 암살 시도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루스벨트의 대통령 재임 중 발생한 것은 아니고, 그가 대통령직을 마치고, 윌리엄 태프트를 상대로 3번째 대통령직에 도전하는 중에 일어났다. 선거운동이 한창이던 1912년 10월 14일 존 슈랭크John Shrank라는 암살범이 쏜 총탄에 루스벨트는 가슴을 저격당했다. 다행히도 암살범의 총알은 루스벨트의 안경집을 관통한 후 두꺼운 연설 원고를 지나면서 루스벨트에 치명상을 입히지 못했다. 루스벨트는 의사의 치료도 받지 않고 그날 예정된 연설을 마쳤고, 그의 가슴에 박힌 총탄은 제거되지 않은 채 그와 일생을 같이 했다.


프랭클린 루스벨트(Franklin Roosevelt)

1932년 대통령 선거에서 당시 대통령 허버트 후버를 압도적으로 누르고 당선된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1933년 2월 15일 취임을 앞두고 마이애미에서 암살 위기를 겪었다. 범인은 시카고 마피아의 사주를 받은 살인 청부업자 주세페 장가라Giuseppe Zangara였다. 장가라가 발사한 6발의 총알은 루스벨트를 빗나가 옆에 있던 시카고 시장 앤턴 서맥의 가슴을 관통했고, 결국 시장은 사망했다. 장가라는 “대통령 때문에 위통이 생긴다”는 엉뚱한 이유를 댔지만 사형을 선고받았다. 암살 시도가 벌어진 한 달 뒤 루스벨트는 1933년 3월 4일 대통령에 취임식에서 "우리가 두려워할 것은 두려움 그 자체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기기도 했다. 만약 장가라의 암살 시도가 성공을 했다면 루스벨트는 미국 역사상 가장 짧은 임기를 지낸 대통령이 되었을 것이다.


해리 투르먼(Harry S. Truman)

1950년 11월 1일 두 명의 푸에르토리코인이 푸에르토리코의 독립을 주장하기 위하여 해리 투르먼 대통령의 암살을 시도했다. 당시 백악관이 공사 중인 관계로 대통령과 그의 가족은 백악관 건너편에 있는 영빈관 블레어 하우스the Blair House에 머물고 있었다. 두 명의 암살범은 영빈관 현관으로 침입한 후 총격전을 벌여 경호원 1명을 사살하고 경찰관 2명을 부상을 입혔으나, 대통령과 가족은 무사했다. 암살범 그리셀리오 토레솔라Griselio Toreesola는 현장에서 사망했고, 다른 한 명 오스카 콜라조 Oscar Collazo는 체포된 후 종신형을 선고받았으나 1979년 지미 카터 대통령이 그를 석방했다.

제럴드 포드(Gerald Ford)

제럴드 포드 대통령에 대해서는 2번의 암살 시도가 있었다. 2번의 암살 시도는 모두 여성에 의한 것이었고, 모두 실패로 돌아갔다. 첫 번째 암살 시도는 1975년 9월 5일 일어났다. 리네트 프롬이라는 여성이 자기가 추종하던 살인범 찰스 맨슨의 석방을 주장하며 대통령을 향해 45구경 권총을 겨누는 순간 경호원이 재빨리 낚아채 대통령은 위기를 모면했다. 그녀는 현장에서 체포되어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두 번째 암살 시도는 불과 2주일 후 샌프란시스코에서 발생했다. 새러 무어Sara Moore라는 여성은 한 발의 총알을 발사했지만 그 순간 옆에 있던 상이용사가 재빨리 무어를 제지했고, 그녀가 쏜 총알은 아슬아슬하게 포드 대통령의 머리 위쪽으로 빗나갔다. 그녀 역시 종신형을 선고받았으며, 웨스트버지니아 교도소에 수감된 후 1979년 탈옥 후 몇 시간 만에 붙잡히기도 하였다. 무어는 2007년 12월 31일 가석방되었다.


로널드 레이건(Ronald Reagan)

레이건 대통령은 취임 후 겨우 70일 만인, 1981년 3월 30일 오후 2시 25분, 워싱턴 힐튼 호텔 현관 앞에서 저격당했다. 이 날 호텔에서 열린 미국 노동 총동맹 산별 회의에서 연설을 마치고 백악관으로 돌아가기 위해 대통령 전용차에 올라타려던 순간이었다. 범인인 존 힌클리가 쏜 6발의 총탄은 4명을 쓰러뜨렸다. 그중 한 발이 대통령의 가슴에 명중했으나 심장을 살짝 빗나가 조지 워싱턴 병원에서 수술을 받고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범행 동기는 영화 ‘택시 드라이버’의 여주인공인 영화배우 조디 포스터의 관심을 사기 위해서였다.

레이건 대통령은 수술용 침대에 실린 채 수술실 안으로 들어가면서 주위의 의사들에게 “당신들 모두가 공화당원이었으면 좋겠네요”라는 농담을 건넸다. 사건이 있은 지 12일 만에 레이건 대통령은 백악관으로 돌아왔고 죽음을 면한 대통령의 인기는 하늘을 찔렀다.


이듬해 법정에서 힌클리는 정신병을 이유로 무죄평결을 받은 뒤 병원에 수용됐다. '자기애 인격장애' 진단을 받은 그는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택시 드라이버>(1976)를 수십 번 봤다고 한다. 이 영화에는 베트남 참전 경력이 있는 택시 운전사 로버트 드니로가 상원의원 암살을 시도하는 장면이 나온다. 힌클리는 영화 속에서 10대 매춘부로 등장하는 조디 포스터에 매료됐고, 그녀에게 깊은 인상을 주기 위해 이 같은 사건을 저질렀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