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된 주장을 근거로 끔찍한 전쟁을 일으킨 대통령도 있었고, 인턴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은 후 이를 감추기 위해 위증을 한 대통령도 있었다. 최근엔, 선거 결과에 불복하는 것도 모자라 연방의회를 폭력으로 점거하라는 메시지를 보낸 대통령도 있었지만, 어느 누구도 탄핵되지 않고 임기를 무사히 마쳤다.
▲ 2021년 1월 13일 하원에서 가결된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이 들어보이고 있는 모습
지금까지 21명이 하원에 의해 탄핵소추가 이뤄졌는데, 15명이 법관이고, 4명은 대통령(앤드루 존슨, 리처드 닉슨, 빌 클린턴, 도널드 트럼프)이며, 국방부장관과 상원의원이 각각 1명씩이다. 도널드 트럼프는 탄핵소추가 2번 이루어진 유일한 인물이다. 하원의 탄핵소추가 이루어진 21건 중 상원에서 탄핵이 가결된 것은 8건인데, 모두 법관이다. 닉슨 대통령은 결정적 증거인 백악관 집무실 녹음테이프의 존재가 드러나자 하원 표결을 앞두고 사퇴함으로써 탄핵의 불명예를 가까스로 비껴가기도 했다.
▲ 미국 의회의 탄핵 절차
우선, 미국의 탄핵절차 등에 대해 간략히 알아보자.
미국 헌법 제1조(5항 및 6항)는 하원과 상원의 탄핵 권한을, 제2조(제4절)는 탄핵의 대상과 사유를 명시하고 있다. 하원은 검찰의 기소에 해당하는 탄핵소추권을 갖고, 상원은 법원의 판결에 해당하는 탄핵심판권을 갖는 것으로 이해하면 된다. 탄핵의 대상과 사유는 미국 헌법 제2조 제4절에 규정되어 있다. “대통령과 부통령, 그리고 합중국의 모든 관리는 반역죄, 수뢰죄 및 그 밖의 중한 범죄(crimes)와 비행(misdemeanors)에 대해 탄핵 소추와 판결을 통해 파면된다.”
미국의 탄핵심판 절차에서 두드러진 특징은 상원의 결정이 최종적이라는 점과 법원의 재판에 준하는 절차를 따른다는 점이다. 상원이 탄액소추안을 가결하면 연방대법원의 심리가 형식적으로 진행될 뿐이다. 연방대법원은 이미 지난 1993년 만장일치로 "탄핵 심판을 위한 권한이 의회에 있고 다른 곳에는 없다"라고 판결한 바 있다. 그렇기 때문에 탄핵심판에서는 연방 대법원장이 상원 의장을 대신해 탄핵심판 절차를 주재한다. 상원의 탄핵심판은 우리나라와는 달리 비공개 심리로 진행되고, 비공개 심리가 끝나면 공개투표 절차로 넘어간다. 탄핵심판 가결에는 출석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이 있어야 한다. 상원에서 탄핵안이 가결되면 자동적으로 부통령이 대통령의 지위를 승계한다.
탄핵이 '하늘의 별따기'처럼 어려운 이유
탄핵에서 눈여겨볼 대목은 탄핵 소추의 사유 중에서 ‘기타 중한 범죄와 비행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이다. 어느 정도가 중(重)한 것인지, 비행은 사생활도 포함되는 것인지에 대한 해석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기 때문에 정쟁에 의한 탄핵의 빌미가 될 수 있지만, 반대로 탄핵을 반대하는 논리로도 얼마든지 활용될 수 있다.
빌 클린턴의 경우가 그렇다. 하원에서는 과반수인 218표보다 10표 많은 228표의 찬성으로 탄핵안이 통과되었지만, 상원에서는 공화당이 55명으로 다수당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위증죄에 대해선 찬성이 45표, 사법방해죄에 대해선 찬성이 50표에 불과했다. 무엇보다도 “성 추문이 도덕적으로 단죄될 수 있어도 헌법상 탄핵사유가 아니다”라는 것이 부결을 주장한 민주당과 공화당 의원들이 내세운 논리였다.
어쨌든, 대통령의 탄핵안이 하원을 통과하기도 어렵지만, 상원의 3분의 2에 해당하는 67명의 찬성을 얻는 것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미국은 연방 상원의원 한 명, 한 명이 그 자체로 상원이기 때문이다. 상원의원은 당 지도부나 당론의 영향에서 하원보다 훨씬 자유롭다. 더구나 상원의원이 맘만 먹으면 혼자서도 얼마든지 필리버스터 등의 방법을 통해 상원 전체의 작동을 멈춰버릴 수도 있다.
탄핵이 어려운 이유는 또 있다.
우리나라처럼 대통령이 탄핵되면 선거를 실시해서 대통령을 다시 선출하는 것이 아니라, 미국은 탄핵된 대통령이 임명한 부통령이 대통령직을 바로 승계하기 때문이다. 경우에 따라선 늑대를 피하려다 호랑이와 맞닥뜨릴 수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 때의 상황이 그랬다. 설사 트럼프 대통령 탄핵에 성공하더라도, 워싱턴 정가에서 가장 보수적이면서 공화당의 전통적 가치에 지나치게 충실하다는 평가를 받는 펜스 부통령이 뒤에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야당으로선 대통령 탄핵이라는 엄청난 정치적 도박에서 이기고도 펜스 대통령이라는 버거운 장벽에 맞닥뜨리는 더욱 불리한 상황에 처할 수도 있는 것이다.
대통령 탄핵을 광고하다
트럼프 대통령에게 탄핵은 굴욕적 멍에이자 숙명과도 같다. 우선, 미국 역사상 재임 중 가장 이른 시기에 탄핵안이 제출된 대통령이란 불명예를 얻었다. 불과 취임 7개월 만이다. 그리고 미국 역사상 탄핵소추안이 두 번이나 하원을 통과한 대통령이란 불명예도 얻었다. 탄핵 2관왕인 셈이다.
2016년 대선에서 승리한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식이 열리기도 전에 탄핵이 이슈로 부각되었다. 당선이 확정된 다음 날, 유타대학의 크리스토퍼 L. 피터슨 교수는 “연방의회는 연방헌법 제2항 ‘범죄행위로 탄핵할 권리’를 근거로 트럼프를 탄핵할 수 있다”라는 내용으로 23쪽 분량의 논문을 발표했다. 그리고 취임 열흘 후에는 트럼프 대통령의 ‘반(反)이민법 행정명령’에 대해 민주당 호아킨 카스트로 하원의원은 “트럼프 대통령이 헌법에 규정된 권한을 의도적으로 넘어서고 있다”며 탄핵을 염두에 둬야 한다고 주장했다.
트럼프의 당선을 예측한 역사학자인 앨런 릭트먼 교수도 <워싱턴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공화당은 트럼프를 대통령으로 원하지 않는다. 통제할 수 없기 때문”이라며 “트럼프가 국가 안보를 위험에 처하게 하거나 자신의 재산을 불리기 위한 일을 저지르는 식으로 탄핵당할 여건을 만들 거라고 확신한다”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톰 스테이어가 트럼프 대통령의 탄핵을 요구하는 타임스퀘어 광고판 앞에 서있다(2017.11.20).
탄핵안이 제출된 지 4개월 후인 2017년 11월 뉴욕의 타임스퀘어 광장에 트럼프 대통령의 탄핵 광고가 올라왔다. 수백만 달러의 광고료를 지불한 사람은 톰 스테이어라는 억만장자다. 스테이어는 500만 명 서명을 목표로 <Need to Impeach>라는 청원 사이트를 개설했고 불과 3개월 만에 430만 명이 탄핵에 서명을 했다. 가만히 있을 트럼프 대통령이 아니다. 그는 톰 스테이어를 선거 결과에 승복하지 못하는 ‘통제가 안 되는 고삐 풀린 괴짜’로 조롱하는 트윗을 곧바로 날렸다.
<참고>
국내 대부분의 문헌에는 하원 재적 과반수와 상원 재적 3분의 2 이상으로 틀리게 설명하고 있다. 하원은 출석의원 단순 다수(기권이 있을 수 있으므로)로 탄핵소추를 의결하고 상원은 출석의원 3분의 2 이상으로 탄핵을 결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