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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지현 Apr 15. 2024

모르는 이와 친해진다는 건

다꾸를 통해 친해지기


그렇게 보석 같은 스티커들을 내 종이 위에 촘촘히 붙여가며 매일을 즐기던 때. 햄찌 언니에게서 다시 불쑥 연락이 왔다.


-촙촙 님.

-네!

-혹시 다음 달에 서일페 가시나요?


서일페란, '서울 일러스트 페어'의 줄임말이다.


여름과 겨울에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리는 아주 큰 일러스트 페어로, 일러스트 작가님들이 많이 참여하는 행사다.


그림만 그리는 작가님들도 계시지만, 보통은 스티커나 마스킹테이프 등 다이어리 꾸미기에 사용하는 굿즈들을 함께 판매하고 있기 때문에 다꾸러들 사이에서는 필수 방문 코스가 되어버린 지 오래다.


나는 당장 답변 메시지를 보냈다.


-방문할 생각이에요, 당연히!

-오. 그러시다면.


햄찌 언니에게서 링크 하나가 보내져 왔다.


-제가 친하게 지내는 문구 작가님인데, 초청장을 보내주셨어요. 한 분 더 드려도 된다고 해서, 촙촙 님 드리려고요!

-헉. 제가 받아도 되나요.


초청장으로 코엑스에서 열리는 박람회에 가보는 것 자체가 처음이었다. 뭔가 특별한 대접을 받은 것 같아 기분이 벌써부터 부웅 떠올랐다.


-그럼요. 대신에 그 날 저하고 얼굴 한 번 보실래요?

-헉.


오프라인 만남이다. 막상 언젠가는 만날 것 같은 분이었는데, 정말로 얼굴을 본다고 생각하자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벌써부터 말이다. 나는 휴대전화 화면에 다다다 글자를 찍어 내려갔다.


-당연히 좋죠! 그날 제가 뭐 준비할 거라도 있을까요? 언제까지 오시나요? 저 거기서 가까이 살아서, 먼저 제가 데리러 갈 수도 있어요. 아님 불편하시면 다 보고 만나도 되고요!

-ㅋㅋㅋ 아직 시간 많이 남았으니까요. 그 때 상의해서 봬요.


메시지 교환이 끊겼는데도 정신이 조금 멍했다.


나이가 어느 정도 들고, 아이를 낳으면서부터는 친구를 사귄다는 생각 자체를 해보지 못했다.


필요에 의한 만남, 정보를 교환하는 만남. 주변에 존재하는 만남은 모두가 그런 것들 뿐이었고, 나는 어느새 그런 피상적인 만남에 익숙해져 있었다.


사람에 대한 기대는 엷어졌고 과거의 상처들에 의해 닳아져갔다. 받은 것이 없으니 주어야 할 것이 남아있지 않았다. 버석버석한 모래를 씹듯이, 그렇게 겨우 견디며 관계를 해왔다.


겉으로 보면 친절할 수 있지만 나는 시니컬한 인간이다. 건조하고 차갑다. 어찌 보면 냉혹할 수도 있는 내면을 생존하기 위해 감추고 있다. 그런데 그런 내게 말도 안 되게 호의적인 사람들이 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불특정 다수에게 일기를 공개하고, 자신의 따뜻한 일상을 공개하는 사람들의 존재가 때로 너무나 놀라워서 꿈을 꾸는 것 같기도 하다.


요즘 같은 혐오의 시대에 말이다.


손 안에서 미지근해진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리다가 책상 위에 놓아두고 부엌으로 걸어가 커피를 한 잔 탔다. 사회에 닳고 닳은 머릿속이 뾰족하게 경계신호를 울린다.


혹시 몰라. 친해진 다음에 사이비 종교를 권유하거나 보험에 들라고 할 수 있어.


그래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이렇게 가슴이 따뜻한 걸까? 왜 입가에 미소가 지어지는 걸까?


나는 어느새 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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