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나는 방송 장비를 사 두고도 며칠째 라이브 방송을 켜지 못했다. 역시 불특정 다수에게 나를 노출시킨다는 건 상당한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때는 갑자기 찾아왔다.
스티커를 몇 장 구매한 날이었다. 유튜브를 보고 구매한 독특한 빈티지 스티커였는데 일반적으로 다이어리 꾸미기를 할 때 많이 보이지 않는 스타일의 스티커였다. 때문에 나와 같이 다꾸를 하고 있는 누군가에게 이걸 보여주고 싶어 견딜 수가 없었다.
말 그대로 관심을 받고 싶었다는 게 맞겠다.
나이를 이렇게 먹고도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싶은 건 어쩔 수 없는 인간의 본능인가 보았다. 휴대전화를 켜 시계를 확인했다. 밤 11시를 향해 가고 있는 시각. 일단 내가 구독하고 있는 분들은 아무도 라방을 하고 있지 않았다. 심장이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방송을 켜기 딱 좋은 타이밍이었다.
휴대전화를 재빨리 방송 장비에 거치하고 인스타 메뉴에 들어갔다. 손바닥 안에 땀이 흥건했는데 눈치채지 못했다. 책상 위에 오늘 산 스티커를 늘어놓고 라이브 버튼을 눌렀다.
5분, 시간이 지났다. 그 동안 두 명 정도가 들어왔다가 금세 나갔다. 아마 잘못 눌러 들어온 사람들일 것이다. 사람들이 입장했다는 글씨가 뜰 때마다 심장이 덜컥거렸다 다시 가라앉았다.
후아. 한숨이 나왔다. 그럼 그렇지.
그리고 그 순간. yulmucha15님, 그러니까 율무차님이 입장하더니 웃으며 물으셨다.
-ㅋㅋㅋ. 님 이거 뭐 하시는 거에요?
"으앗, 안녕하세요!"
너무 당황해서 악 소리가 절로 나왔다. 손끝이 파르르 떨렸다. 나는 스티커 뭉치를 재빨리 집어들었다.
"제가 이, 이거 사서, 자랑하려고 방송 켰어요!"
-오, 자랑 방송이군요.
"네! 이쁘죠!"
-네. 특이하네요.
반응해 주는 사람이다. 눈이 팽팽 돌았지만 준비한 멘트를 쳐야 했다. 재빨리 스티커 하나하나를 넘기며 율무차님에게 스티커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이게 그 빈티지 스티커래요. 옛날에 팔던 문구 스타일! 되게 특이하죠. 근데 예뻐가지고요 사버렸어요. 제가 잘 꾸밀 수 있을지는 자신이 없지만요! 색깔이 엄청 쨍하잖아요. 게다가 좀 반딱거리는 타입이기도 하고요. 캐릭터도 좀 튄다고 할까......"
-그러네요. 어디서 사셨어요??
"저, 유튜브 보고 ...... 어, 어디더라...... 인터넷 그 ...... ㅇㅇ상점이라는 곳이었는데, 검색하면 나오실 거에요! "
-근데 스티커가 제 타입은 아니네요.
"그, 그래요??"
머릿속이 하얘졌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율무차님은 감성 다꾸를 하시는 분이라 색깔이 휘황찬란한 그 스티커는 말 그대로 율무차님의 타입이 아니었던 것이다. 게다가 내가 횡설수설하니 좀 장난을 치시고 싶었던 듯 하다.
"그, 그럼...... 이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준비한 스티커는 이게 끝이라서 이만 방송을 끝낼까 합니다. 다음에 또 뵈어요! 안녕~!"
나는 도망치기를 택했다. 화면 안의 손으로 열심히 안녕, 을 하며 손을 휘젓고 라이브를 종료하고 나니 방송을 한 시간은 불과 5분. 나는 땀에 젖어 있었다.
정신이 돌아오고 나니 율무차님께 너무너무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방송 보러 들어갔더니 진행자가 횡설수설 후 급히 방송을 꺼버린 것 아닌가. 황급히 DM(다이렉트 메시지)을 보냈다.
'제가 방송이 처음이라 너무 당황해서 율무차님께 실례를 한 것 같습니다. 다음 번에는 좀 더 스킬을 익혀서 매끄러운 방송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금세 답장이 왔다.
'아니에요 재밌었어요 ㅋㅋㅋㅋ 보니까 스크랩 다꾸 하시는 것 같은데 저랑 스타일이 진짜 많이 다르시네요. 제가 선물로 스티커 좀 보내드릴까요?'
다꾸러들은 상대방에 대한 경계심이 없는 걸까? 나는 율무차님의 답장에 두 번째로 당황하고 말았다.
'어엇 아닙니다! 그럼 너무 죄송해서요.'
'아니에요. 제가 드리고 싶어서 그래요. 주소 주시면 보내드릴게요. 제가 어차피 안 쓰는 스타일의 스티커가 집에 쌓여 있는데, 촙님은 잘 쓰실 것 같아서요.'
다꾸러들은 천사만 있는 것인가?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알고 보니, 다꾸러들 사이에서는 자신의 취향에 맞지 않는 스티커나 메모지들을 따로 모아 두었다가 교환하거나 초보 다꾸러들에게 나눔해주는 문화가 있는 모양이었다. 그 또한 너무 따뜻한 문화여서 가슴이 간질거리지 않을 수 없었다.
주저하며 주소를 적고 나니 율무차님은 의외의 말씀을 또 해주셨다.
'근데요, 방송 그거 진짜 재밌었어요. 한 번 또 해주세요. 저 처음 들어가 봤거든요.'
율무차님도 다꾸 라이브 방송을 들어와 본 게 처음이셨다는 것이었다. 어안이 벙벙했다. 방송을 처음 켠 사람과 처음 들어와 본 사람의 만남이라니, 뭔가 낭만적인 느낌이기도 했다.
그리고, 율무차님과 DM으로 대화를 나누다 보니 갑자기 햄찌 언니에게서도 DM이 왔다.
'엇, 촙님 방송 켜셨었어요?! 아쉽다! 봤어야 하는데!'
'아니에요, 너무 부끄러워서 5분만에 꺼버렸어요.'
'긴장하셨나보다. 담번에 같이 해요! 그럼 훨씬 재밌을 거에요!'
우와. 합방 제안이라니.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벌써 두근거림이 배가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