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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지현 Mar 11. 2024

촙촙이 된 이유

다꾸 인스타를 만들다 

아침 7시 30분, 잠에서 깼다. 


몸이 무겁다. 약 기운 때문인지, 아니면 약이 가라앉혀 놓은 우울증의 여파 때문인지는 알 수 없다. 


어쨌든 아이가 신생아를 벗어나고 그 다음 고비라는 30개월까지의 재접근기를 지나고 나선 지긋지긋하던 육아 우울증도 꽤 호전되었다. 


다만 아직도 발작적으로 덮쳐오는 그림자 같은 것은 있다. 한 번 기분이 안개 같은 것에 휩싸이기 시작하면 다시 헤쳐 나오기가 조금 힘이 든다. 


그래서 내가 노력하는 것은 최대한 그 안개 같은 것들과 멀어지게끔 삶의 태도를 유지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아침에 일어난 후에는 꼭 커피를 한 잔 타 마시는 것. 속이 느글거리지 않도록 먹을 것을 챙겨 먹고 비타민을 한 알 먹는 것. 몸에 조금이라도 꿉꿉한 기분이 들면, 바로바로 몸을 씻어 버리는 것 등등이 있겠다. 


남편은 내가 힘들어하는 아침 시간의 육아를 많은 부분 담당해 주고 있다. 그가 없었다면 힘들었던 시기를 버틸 수 있었을지 모르겠다. 아마 버틸 수 없었을 것이다. 


부엌에서 지글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아마 남편이 달걀 프라이를 하고 있는 모양이다. 


남편은 아침을 하면 대개 식빵에 잼을 바르고 달걀 프라이를 해 준다. 가끔 다른 걸 먹고 싶으면 내가 하는데, 사실 다른 걸 먹고 싶을 때는 거의 없다. 


아이에게 매일 아침마다 3첩 반상을 차려 줘야 한다는 생각은 애초에 내려놓았다. 아침 정도는 간단하게 먹여도 되겠지, 그렇게 생각하자 육아의 부담이 한결 줄어들었다. 


세면을 하고 있자 승진이가 우다다 달려나왔다. 


"엄마아아아!! 일어났어요!!!"


명랑하게 소리를 지르며. 


본격적인 육아의 시작이다. 


이제 세수를 시키고, 양치를 시키고, 빵가루를 여기저기 흘리며 아침을 먹고, 잼을 옷에 묻히고, 그럼 옷을 벗기고, 상을 닦고, 옷을 갈아입히고, 붕 뜬 머리에 물을 묻히고, 양말을 신기고...... 기타 등등. 


이렇게 지지고 볶다 보면 순식간에 아이의 등원 시간이 다가온다. 


남편과 손에 손을 잡고 승진이를 등원시켰다. 승진이가 다니는 어린이집은 우리 집에서 걸어가기엔 살짝 거리가 있다. 하지만 차를 태워 가기에도 애매한 위치다. 


오손도손 나란히 걸으면서, 남편과 함께 걸으니 좋다고, 그렇게 생각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남편은 출근을 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집에서 게임 개발을 하고 있다. 이 또한 다행인 일이다. 남편이 계속해서 회사 일을 했더라면 내 불안은 걷잡을 수 없을 정도까지 커져 나를 잡아먹었을 수도 있었다.


뭐, 이 이야기는 다음에 또 하도록 하자. 어쨌든. 


아이를 등원시키고 나면 그 다음부터는 이제야말로 숨을 고를 차례다. 


마음이 어느 정도 가벼워져 숨을 한 번 들이켜고, 남편과 거의 매일 도장 찍듯 다니는 집 근처의 프랜차이즈 카페에 들어섰다. 


그리고 남편은 남편의 일을, 나는 나의 일을 한다. 


웹소설을 쓰고 있다. 아직 한 번밖에 내지 못했고 돈도 별로 벌지 못했지만 어쨌든 내 적성에 맞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한 시간에서 한 시간 반 정도, 써지든 써지지 않든 자리에 앉아 글을 쓰면 커피 한 잔이 비워진다. 너무 오래 앉아 있는 것도 카페에 민폐이기에 적당히 시간이 지난 후에는 일어선다. 


집에 돌아와서 아침에 어질러진 잔해들을 치우고 이런저런 집안일을 한다. 집안일에는 점심을 차려 먹는 것도 포함된다. 남편과 상의를 해서 메뉴를 정하고, 점심을 먹고 먹은 그릇들을 치우고 나면 오전 일과가 끝난다. 아예 이것을 루틴으로 지정해 두면, 별로 스트레스 받을 일이 없다. 


그리고 나면. 


오후 시간은 보통 게임이다. 넷플릭스를 보기도 한다. 또는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을 읽기도 하고. 뭐, 너무 에너지가 없는 날에는 누워 있다가 약기운을 빌어 그저 잠들어 버린다. 그러다 보면 두어 시간은 쏜살같이 지나가 버리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은 조금 다르다. 새로 할 일이 생겼다. 


현관문을 열자 택배 상자가 나를 반겼다. 


남편이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그게 뭔데?"

"배경지. 다이어리 찍을 때 바닥에 깔아 놓고 찍는 거야."

"다이어리를 찍어?"

"어. 인스타에 올릴 거야."


모두가 잠든 밤에, 또는 승진이가 어린이집에 간 사이 꾸미기 시작한 몇 장의 종이들. 내가 봐도 이렇게 예쁘게 꾸며 놓은 걸. 누군가에게 자랑하지 않고는 배길 수가 없었다. 


부우욱. 


택배 상자를 열어 대리석 무늬와 민무늬의 흰색 배경지를 꺼내고 우리 집에서 낮 동안 햇빛이 가장 강하게 들어오는 베란다에 좌악 펼쳐놓았다. 그리고 그 위에 내가 꾸민 다이어리를 가만히 얹었다. 



이후에는 휴대전화를 이리저리 돌려가며 찰칵찰칵. 역시 사진은 자연광에서 찍어야 예쁘다. 휴대전화에 들어가 앉은 내 다이어리의 모습은 또 달라 보였다. 작은 악세사리 같달까. 


"예쁘다, 예뻐."


중얼거리며 새 인스타 계정을 만들었다. 이름을 뭘로 할까. 이름을...... 난 다이어리 꾸미기 초보니까 '다꾸초보'로 해서 다꾸촙이 좋겠다. 


'@dacuchop'


으로 계정을 개설하고 다이어리 꾸미기, 그러니까 '다꾸' 사진을 몇 장 업로드한 후 유명한 다꾸러들을 몇 명 팔로우하고 나니 벌써 내 사진에 '좋아요'를 누군가가 눌러준 것을 볼 수 있었다. 


그 작은 하트 몇 개가 뭐라고, 가슴이 한껏 부풀어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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