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송지현 Mar 18. 2024

다꾸와 인스타 라방 (1)

바깥 세계로 관심을 돌리다 

지난 주말에는 코엑스에서 하는 디자인 박람회에 다녀왔다. 


아름다운 디자인 물품들을 눈으로도 감상하지만, 내가 하는 일은 또 있다. 팸플릿과 명함을 모으는 것이다. 예쁜 종이들은 다꾸러인 나에게는 재료이자, 기록하고 수집할 만한 어떤 것이다. 


오리고, 찢고, 종이에 붙인다. 그 행위만으로 가득히 충족되는 감각적인 만족을 느낀다. 그렇게 한참 다꾸에 몰두하다 문득 고개를 들었다. 


다른 사람이 하는 것도 보고 싶다. 


나와는 다른 스타일의 다이어리 꾸미기는 평소에도 사진으로 많이 보고 있다. 그러나 내 다꾸를 하면서는 역시 방송으로 보는 게 좋을 것 같았다. 


다른 사람의 라이브 방송을 들으며 다이어리 꾸미기를 하다 보면 함께 하는 기분이 들 것이다. 나는 주저 없이 휴대전화를 켜 인스타그램에 들어갔다. 혹시 인스타그램의 다꾸 친구 중에 라이브 방송을 켠 사람이 없나 기웃거려 보았다. 


인스타그램은 누구나 '라이브' 기능을 켜면 방송을 할 수 있게 지원하고 있다. 위쪽의 프로필을 보다 보니 라이브 표시가 켜진 방이 두 개 있었다. 


첫 번째 방에 들어가니 대화가 한참이었다. 나는 용기를 냈다. 


-안녕하세요.


하고 채팅을 쳤는데, 가볍게 무시당하고 말았다. 


이번에는 라이브 방송을 하고 있는 사람의 아이디를 넣어 채팅을 쳐 보았다. 


-안녕하세요! ㅁㅁ님! 반갑습니다.


또다시 무시당하고 말았다. 함께 채팅을 하고 있던 다른 사람들 역시 나를 상대해주지 않는 분위기였다. 기분이 나빠지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라, 나는 시무룩해진 채 첫 번째 방을 나오고 말았다. 


여기에도 텃세라는 게 있는 걸까? 그건 참 싫은데. 그런 생각을 해버리고 말았다. 


결혼 전 직장생활을 할 때, 새로운 곳에 발을 들일 때마다 항상 텃세를 경험했다. 별로 기억하고 싶지 않은 일이라 고개를 흔들었다. 그러한 일들 때문에 염세주의에 깊게 빠져 헤어나오기 힘들었던 적이 있었다. 힐링하려 발을 들인 취미에서까지 그런 기분을 느끼고 싶지 않았다. 


그냥 혼자 다꾸하지 뭐. 속으로 중얼대다가 두 번째 방에 눈길이 갔다. 


여기까지만 시도해 보자. 


사람에 대해 넌덜머리가 난다고 생각했던 과거와 달리, 그래도 마음에 한 뼘 정도 여유는 생겨 있었던 모양이었다. 나는 두 번째 방을 손끝으로 눌러 보았다. 


두 번째 방에서도 대화는 이어지고 있었다. 나는 첫 번째 방에서와 똑같이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여기에서는 채팅방에 있던 사람들이 먼저 인사를 해 주었다. 


-안녕하세요!

-하이하이!


그리고 나자 방장이었던 햄찌 님이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어, 다쿠촙님?!"


-?


 "오. 촙님이다!"


괜히 수줍어졌다. 왜 격하게 아는 척을 해 주시는 거지?


-반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촙님 다꾸 엄청 잘 보고 있어요! 다꾸 진짜 예쁘게 하셔서 저 완전 좋아하고 있었거든요!!"


햄찌 님과는 댓글로 소통도 별로 해 본 적 없었기 때문에 얼굴이 화끈거렸다. 


-으앗 감사합니다.


"네. 제가 댓글은 별로 안 달지만요. 마음속으로 좋아하고 있어요."


-하하.


원래는 방송을 들으며 조용히 다꾸를 할 생각이었는데, 순식간에 수다에 참여하게 되어버렸다. 




햄찌 님의 라이브 방송을 몇 번인가 보면서 다꾸를 한 지 며칠이나 지났을까. 방송을 듣다 보니 나는 그녀에 대해 몇 가지 정보를 알게 되었다. 


일단, 그녀는 나와 생각보다 가까운 거리에 살고 있다. 지하철로 이동하면 30분 정도면 갈 수 있는 거리다. 


그리고 나와 나이 차이도 얼마 나지 않는다. 두 살 정도 차이가 나는데, 그녀가 나보다 언니이며 그녀 역시 나처럼 아이를 키우고 있다. 다만 햄찌 언니의 아이는 18개월로, 우리 승진이보다는 한참 어리다. 


그녀는 처음에는 날짜를 정해 놓고 라이브 방송을 했었는데, 하다 보니 그냥 자유롭게 라이브 방송을 켜게 되었다고 했다. 


햄찌 언니는 때로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방송을 하기도 했다. 다들 라이브 방송을 하는 사람들이었고, 나는 그게 은근히 부러웠다. 


'나도 해 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게 그 즈음이었다. 말 그대로 초짜의 밑도끝도 없는 자신감이었는데,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초보였기 때문에 그 자신감의 실체가 무언지 몰랐다. 


휴대전화를 켜고 책상에 올릴 수 있는 방송 장비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간단하게 둥근 링 모양의 조명이 하나 붙어 있고, 휴대전화를 거치할 수 있게 되어 있는 괜찮은 크기의 방송 장비가 2만 원 정도였다. 


나는 남편에게 휴대전화를 보여 주며 의견을 물었다.


"이거 어때?"


남편은 처음에는 내가 보여준 방송 장비가 영상을 찍는 용도라고 생각한 듯 했다. 


"영상 찍게? 무슨 영상?"

"응, 다꾸하는 영상. 근데 영상 아니고 라이브 방송 할 거야. 라방."

"방송을 한다고?"

"어. 근데 얼굴 안 나오고 손만 나오는 거."

"오. 대단한데."


진심으로 대단하다고 여기는 듯한 목소리였다. 하긴, 나 같아도 느닷없이 방송을 한다고 하면 그렇게 생각할 것 같긴 했다. 나는 설명을 덧붙였다. 


"막 대단한 방송은 아니야. 사람들 많이 들어와 봤자 네다섯 명? 나는 초보라 1명 들어와도 다행일 수도 있어."


햄찌 언니는 팔로워가 4000명 정도인데도 방송을 하면 시청자수가 5-6명 정도인 편이었다. 다꾸 라방이 그렇게 재미있는 방송은 아니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종이를 만지는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수다를 떠는 게 목적이고, 어쩔 땐 친목 도모가 중심이 되기도 한다. 그런데 나는 그런 소규모의 느낌 자체가 좋았다. 









이전 02화 촙촙이 된 이유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