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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지현 Apr 08. 2024

다꾸와 관계들

-택배 문 앞에 놓았습니다.


택배 문자가 이렇게 설레던 적이 있었던가. 


두근거리는 마음을 안고 조심조심 현관문을 열고 나가 문 앞에 도착한 갈색 택배 상자를 들고 집 안에 들어섰다. 


이건 분명히 율무차님이 보내주신 택배다. 


선물을 받았으니, 받은 사람은 보답의 의미로 개봉기를 찍어야 하는 것 아니겠는가. 


거실, 햇볕이 드는 자리에 예쁘게 배경천을 깔고 율무차님이 보내신 택배 상자를 뜯기 시작했다. 


택배 상자마저도 예쁜 게, 박스가 열리지 않게 방지하는 테이프는 비닐 박스 테이프가 아닌 종이 테이프다. 조심조심 테이프를 손끝으로 뜯어 열자 충격 방지재 역시도 비닐 뽁뽁이가 아니라 종이다. 내용물에서는 은은하게 향기도 난다. 


역시 감성 다꾸를 하시는 분인 건가. 나는 속으로 감탄하며 조심조심 종이를 좌우로 젖혔다. 그리고 탄성을 내질렀다. 


많다. 


예쁜 종이가 많아도 너무 많다. 


어쩐지 상자를 들 때 생각보다 묵직하다 싶었다. 이 많은 다꾸템들을 다 내게 주셔도 되는 걸까, 싶을 정도로 뭔가가 많았다. 


나는 행복감에 젖어 율무차님이 주신 선물을 한 장 한 장 들춰보기 시작했다. 예쁜 엽서, 태그, 꽃 모양 종이들, 한 장도 뜯어쓰지 않은 네모난 스티커들, 씰 스티커들. 찢어 쓰기 좋은 인쇄된 종이들. 포장지들. 그런 것들이 수북했다. 


멍하니 감상에 젖어 있다 율무차님께 다이렉트 메시지를 보냈다. 


-율무차님, 이렇게 많이 주셔도 괜찮은 건가요?

-그럼요. 저는 다 안 쓰는 것들이에요. 촙닙 취향에 맞을지가 걱정이에요. 그래서 스크랩 템도 하나 사서 넣었어요.


무려 쓰시던 게 아니라 구매한 물건도 있다고 하셔서 더 기겁을 했다. 


-헉. 그렇게까지 안 하셔도 되는데!!

-그냥 제가 좋아서 한 건데요. 

-감사해서 어떡해요.

-방송이나 자주 해 주세요.


그래, 일단 이걸로 다꾸를 해서 인증샷과 감사글을 올려야겠다. 내 머리는 삐걱삐걱 돌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리고. 


빨리 나도 다꾸러로서 성장해서 이렇게 나눌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지. 그런 마음도 생기는 중이었다. 




물론 다꾸러들 사이에 천사만 있는 것은 아니다. 


어디에나 이상한 사람은 있다. 그건 이 세계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나와 맞는 사람이 있고 아닌 사람이 있으며,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시비가 붙기도 한다. 


다꾸를 시작한 지 몇 달이 지나 슬슬 다꾸계에 익숙해질 무렵, 이런 사건이 하나 있었다. 


-촙님, 혹시 doriA 님이라고 아시나요?


라는 다이렉트 메시지가 햄찌 언니에게서부터 날아온 것이었다. 


-네? 잘 모르겠는데요. 


라고 답변을 보내자 언니가 다시 DM을 보냈다. 


-요즘 소문이 안 좋네요. 혹시 촙님한테 다꾸 아이템 교환하자고 하면 거절하세요.

-왜요?

-자기는 엄청 많이 받아 가면서, 교환하기로 한 상대방한테는 조금 주거나 싼 것만 준다는 이야기가 있어요. 


그러고 보니 몇 주 전 받았던 메시지가 갑자기 뇌리를 스쳤다. 


-그러고 보니 저한테도 교환 요청 왔었던 것 같아요! 근데 전 정말 교환할 만한 걸 다 써서 못하겠다고 답변 보냈었네요.


햄찌 언니에게 메시지를 보내자 언니에게 다시 답변이 왔다. 


-다행이에요! 


누군가의 선의에 기대 이익을 취하려 한 사람. 어떻게 보면 어이 없다 싶을 만큼 단순한 사기일 수 있지만, 당한 사람에게는 참 기분 나쁜 일이었을 것이다. 


이렇듯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이다 보니 이런저런 일도 벌어지는 모양인데, 나는 신기하게도 아직 그런 일들을 정면으로 맞닥뜨린 적 없다. 


아무래도 일기를 꾸민다는 것 자체가 일상을 공유하는 일이다 보니 사람들의 성향이나 색깔 같은 것이 나도 모르는 사이 들여다보이는 것 같다. 


그러다 보니 나는 나와 맞는 결대로 흘러다니고 있었고, 부딪힐 만한 일들을 피할 수 있었던 게 아닐까. 


그리고 뭐, 어떤 사람들이 어떻게 이 곳에 자리하고 있든지 간에. 


종이 찢기, 스티커를 뗄 때의 톡 하는 소리. 풀칠. 펜의 딸깍임. 글씨를 꼭꼭 눌러 쓸 때의 손끝에 몰리는 그 감각. 


그리고 내 일상을 따뜻하게 바라봐 주는 그 시선들을 나는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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