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 페어를 방문하기 위한 준비물은 다음과 같다.
일단, 파일첩을 챙긴다. 구매한 스티커나 엽서, 굿즈를 구김 없이 보관하기 위해서다.
그 다음은 큰 가방. 되도록 손이 들어갔다 나오기 편한 쇼퍼 백 모양의 가방이 편하다.
하루 종일 돌아다닐 거니까 편한 신발도 필요하고, 갑자기 배가 고플 경우를 대비해 과자나 사탕 같은 간식도 필요하다.
만약 나처럼 다꾸 친구를 만나기 위한 약속을 잡았다면, 함께 다꾸를 하기 위한 준비물도 어느 정도 챙겨주면 좋다.
그런데 뭐, 어느 정도여야지.
챙기다 보니 너무 무거워진 짐가방을 두고 나는 머리를 감싸쥐었다.
햄찌 언니를 만난다는 생각에 흥분해 버린 모양인지, 간식도 한 가득. 다꾸 짐도 한 가득 싸 버린 것이었다.
결국 나는 다시 짐을 풀기 시작했다. 역시, 간단한 게 최고다. 무거운 가방을 메고서는 넓은 전시회장을 돌아다닐 수 없는 것이다.
다음 날이 바로 일러스트 페어였다.
사실 나는 다이어리 꾸미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에도 이 ‘일러스트 페어’라는 행사에 방문한 적이 있었다. 승진이가 아장아장 걸어다닐 때였으니, 아마 두 살 즈음이었나 보다.
코엑스는 우리 집에서 그다지 먼 곳이 아니었고, 수유실과 화장실이 잘 되어 있는 곳이어서 한 번 와본 김에 방문했었다.
당시에 나는 부스마다 서 계신 분들이 스티커나 굿즈를 직접 제작하신 작가님이라는 것을 꿈에도 몰랐고, 그저 제품을 홍보하러 나오신 분들인 줄만 알고 있었다.
그래도 방문 자체는 몹시 즐거웠고, 작가님들께서 아장아장 걷는 승진이의 옷에 스티커를 붙여 주시며 귀여워해 주셨던 좋은 기억만을 갖게 되었다.
물론 아기가 금방 울고 지루해한 덕에 얼마 못 보고 금방 퇴장해야 했었지만 말이다.
이번에는 아기와 함께가 아니다. 온전히 나 혼자 즐길 수 있다. 두근대는 마음으로 코엑스 정문으로 들어서 전시홀로 걸어가는데, 이게 웬걸.
저 멀리, 벌써부터 줄이 늘어선 게 보였다. 이렇게 인기가 많은 행사였던가? 나는 눈이 휘둥그래졌다.
알고 보니, ‘오픈런’이라고 해서 전시실이 열리기 전부터 대기를 한 후, 좋아하는 작가님의 부스에 달려가 첫 번째로 제품을 사려는 팬들이 있는 모양이었다. 그것이 어느덧 하나의 문화로 자리잡은 지도 꽤 됐다고.
어쨌든 나는 시간에 맞춰 갔기 때문에 입장이 시작되며 줄이 금세 줄어드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햄찌 언니에게선 그새 연락이 왔다.
-촙님, 어디세요?
-저 이제 도착이요!
-전 이미 줄섰지요! 그럼 입장하고 나서 만나야겠어요.
-그러시죠.
줄줄이 줄을 선 사람들이 술술 빠지고 (그마저도 오랜 시간이긴 했지만) 드디어 전시홀에 입장하는 순간.
수많은 귀여운 캐릭터들과 예쁜 캐릭터들이 늘어선 수많은 부스들이 마치 천국에 온 것처럼 나를 반겼다.
‘어서 와, 촙촙!!’
입 안에서 채 내뱉지 못한 탄성을 삼키며, 나는 사람들의 물결에 멍하니 섞여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분명히 예전의 방문으로 알고 있는 광경인데도, 지금 다꾸러로 다시 태어난 나에게는 환상적인 풍경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내가 아는 세계, 내가 발을 들여놓은 세계.
나를 맞아주는 세계.
그 세계가 나를 향해 인사를 건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