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관 앞에 놓인 신발을 보면 매일 아침 계절이 바뀌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출근길에 아무 생각 없이 블로퍼를 끌고 나가려다 발이 시리겠지 생각에 스웨이드부츠를 꺼내 신으면 얼마 지나지 않아 입김이 나오는 아침을 맞이하게 된다.
몇 년 전 엄마와 함께 백화점에서 산 이 부츠는 이제 앞 코가 살짝 들린다. 이미 몇 번이나 빨리 새 부츠를 사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아직도 자연스럽게 이 부츠에 손이 간다. 지금은 이 부츠가 어떻게 생겼는지 의식하지 않지만 부츠를 살 때만 해도 마치 평생 이 신발만 신을 것처럼 예민하게 디자인을 살폈다. 생각해보면 이 부츠가 내가 운동화를 떠나 처음으로 산 어른스러운 신발이었다. 부츠의 적당한 가격도 디자인도 몰랐던 나는 구두 브랜드를 돌아다니다 한 눈에 들어온 이 신발을 가격도 묻지 않고 착용해보았다. 혼자였다면 번쩍거리는 백화점 매장에 기가 죽어 신발을 신어봐도 되냐고 물어보지도 못하고 지나쳤겠지만 나는 오른팔로 엄마의 팔짱을 꼭 쥐고 있었다. 그 때 직원에게 내가 물어봤던 말이 아직도 생생하다. ‘이거 너무 나이 들어 보이지는 않죠?’직원이 뭐라고 대답했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당연히 그렇지 않다고 했을 것이다.
나는 그런 시기에 있었다. 어른처럼 보이고 싶지만 누군가 나를 보고 아이가 어른을 흉내냈다고 흉을 볼까봐 겁이 났던 때였다. 스스로 내가 어른이 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부츠의 가격은 거의 25만원 정도였다. 지금의 나라면 고작 신발 하나에 25만원을 쓰지 않겠지만 그 때는 어른의 신발이란 다 그런 줄 알았다. 엄마는 알고 있었겠지만 가격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한 번 걸어봐라. 신발은 무조건 편해야 된다. 양 발에 다 신고 한 번 걸어봐.’걸어봤는데 괜찮았다.
종이에 상자까지, 곧 부서지기라도 하는 냥 신발을 고이 포장한 종이백을 달랑달랑 들고 백화점을 나왔다. 그 부츠는 참 편했다. 굽이 낮지도 높지도 않았고 스웨이드 재질이라 얇은 스타킹과 함께 신어도 따뜻했다. 그 부츠를 신고 출근을 하고 여행을 했다. 겨울이 되면 운동화보다도 더 편하게 그 부츠를 신고 다녔다. 재질은 신경 쓰지도 않고 비가 오는 날이나 눈이 오는 날에도 그 부츠를 신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