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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맘 Oct 28. 2024

경의선 숲길 속 시간을 걷다

새 파란 하늘이 무척이나 인상적인 가을다. 

근처 경의선 숲길을 걷기 위해 아파트 입구를 걸어 나와서 큰길 쪽을 향했다.

어제는 보이지 않았던 공연 홍보용 옥외광고물들이 줄지어 가을 스카프처럼 휘날리고 있었다.

심수봉, 변진섭 등 낯익은 이름 때문인지 가로등 배너광고 현수막들을 자꾸 힐끔거리며 걷게 되었다.

티켓을 예매하려는 조바심은 없어도 왠지 연말연시와 가까운 공연날짜가 스산한 마음을 앞당겼다.




멋 내기가 짧은 가을은 소중하다고 해서 아끼고 저축해야 하는 계절은 아닌 것 같다.

창문 너머의 풍경보다는 어느 개방형 카페에 앉아 바람의 감촉을 느끼며 푸른 하늘을 시야에 담아야 옳다고 본다. 

정지된 풍경에서 벗어나 걷거나 이동 중에 달라지는 나무들의 색감과 어울림을 목격하는 것이 예의일 것이다.


요맘때 주말 철도예매를 서두르거나 기름을 가득 채운 자동차를 데리고 집 밖을 나서야 하는 큰 이유다.




등산을 좋아하는 남편은 유독 가을 설악산에 가고 싶다며 노래를 했었다.

하지만 주말 장거리 산행에 필요한 대피소 예매가 매진되자 소백산으로 최종 산행을 결정하게 되었다.

결국 우리 부부와 뜻이 통했던 큰 시누 부부가 소백산 천동코스 등산을 함께 가기로 했다.

코레일 승차권 예매와 제2 연화봉 대피소 1박도 예약을 완료해 놓은 상태다.


오랜만에 함께하는 산행이다 보니 혹시라도 무리 중에서 느린 민폐가 될까 봐 매일 워밍업을 결심했다.

산행을 앞두고 나의 녹슨 지구력과 근력을 소생시킬 목적으로 집 근처에 있는 경의선 숲길을 걷기로 한 것이다.




경의선 숲길은 2016년에 조성된 효창공원 앞역에서 가좌역까지 총길이 6.3Km의 도심 숲길이다.


2000년대 용산과 가좌를 연결하는 용산선 철도가 지하화 되면서 남은 지상 철길을 도시재생사업의 일환으로 대규모 녹지공원으로 탈바꿈한 곳이다.


숲길조성 초기만 하더라도 키 작은 나무들이 대부분이라 그늘이 아쉬웠던 기억이 있었다.

지금은 제법 나무터널이 될 만큼 성장해서 봄에는 벚꽃 구경과 여름에는 쓸만한 그늘을 제공하기도 했다.




오늘도 집 가까운 공덕역 구간에서 출발해서 홍대입구까지의 경의선 숲길 구간을 왕복해서 걷기로 했다.


큰길을 따라 나오면 만나는 공덕 교차로 부근은 빌딩 상권이 발달해서 유동인구로 유난히 사람들로 북적이는 장소다.

발길이 닿았던 식당이나 상점들을 지날 때면 내가 머물었던 그 순간의 여운이 따라오는 듯했다.

S오일 본사 빌딩 앞을 지날 즈음엔 ‘닥터로빈’이라는 이탈리아 음식점을 만난다.

설탕, 버터, FRY, MSG를 넣지 않고 요리를 한다고 해서 수차례 친구들과 방문했던 맛집이다.




버스중앙차로가 있는 횡단보도를 건너 공덕역 1번 출구에서 본격적인 경의선 숲길로 진입하게 된다.

오가며 간단한 식료품을 구입하던 ‘오아시스’ 생협 마켓과도 눈이 마주쳤다.

본연의 맛이 살아있는 두부와 콩나물부터 정육코너의 부위별 고기가 개인적으로 자주 사는 목록이 되었다.


건물코너를 돌자 톰크루즈가 방한 마지막날에 방문했던 ‘바른 치킨’ 나타났다.

문밖 벤치까지 사람들이 올라서서 목을 빼고 매장 안을 훔쳐보던 웅성거림이 있었다.

우연히 지나던 나도 궁금해서 보려고 했지만 빼곡한 사람들을 뚫을 엄두가 안 났던 기억이 난다.




경의선 숲길은 크게 4구간으로 나뉜다.

공덕에서 대흥동, 염리동 구간까지는 주로 주택가로 둘러싸인 길로 인근주민들이 조용히 산책하며 운동기구도 이용하는 숲길 초입이다.

주택을 개조한 감각적인 카페와 공방이 소박하고 편안한 볼거리다.


경의선숲길 신수동 구간에는 철로 위를 걷는 소녀와 철로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소년상이 과거의 시간을 데리고 멈춰 있기도 했다.


서강대와 홍대입구 사이엔 와우교 구간이다.

철도 건널목을 복원한 홍대 땡땡거리와 경의선 책거리가 옛 향수를 자극한다.


연남동 구간에는 기찻길과 간이역을 닮은 쉼터가 있어 현재를 걷다가 과거 배경 속으로 순간이동 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나만의 에피소드가 있는 친근한 장소를 만날 수 있고 기차 철로를 매개로 한 멈춘 시간을 상상할 수 있는 경의선 숲길의 걷기는 정겹다.




며칠 후엔 도심숲길과는 비교할 수 없는 힘겨운 소백산 등산길이 펼쳐질 것이다.

경의선 숲길에서의 걷기 시간이 헛되지 않도록 문밖에서 만나는 가을 산행을 거뜬히 즐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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