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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맘 Nov 04. 2024

소백산 붉은 노을처럼

수고했어 오늘도.."

"내일 또 만나..”


진한 다홍빛으로 물들며 손톱 끝처럼 저무는 해를 향해 옆에서 함께 바라보던 시누이가 따뜻한 위로와 안녕을 다.


소백산 제2 연화봉 대피소의 서쪽하늘은 세찬바람에도 끄떡없이 뜨겁게 일몰의 시간을 내뿜고 있었다.




출발 새벽, 큰 시누이 부부와 집결장소인 청량리역 대합실에서 산행 컨디션을 점검했었다.

무리하지 않는 게 좋다는 생각으로 처음 계획한 천동코스가 아닌 짧은 죽령코스로 변경을 결정했다.


죽령코스도 오르막길의 능선풍경은 좋았지만 밋밋한 콘크리트 도로만 따라 걷는 아쉬움남았었다.

우리에게 남았던 산행의 아쉬움을 달래준 소백산의 일몰은 행운선물 같았다.

묵은지 김치찌개와 햇반으로 저녁을 먹고 대피소 앞 데크에서 마주한 저녁노을 풍경은 맛있는 시각적 후식이 되기도 했다.




2층으로 배정받은 잠자리의 시설도 깨끗했고 물이 부족한 곳이라 제대로 씻을 수는 없었지만 공기청정기 덕분에 쾌적했고 난방도 훈훈했다.

대피소 출입문 앞에 붙어있던 녹색건축물 인증명판에서 느낀 기대감은 수준급이었다.


큰 시누이와 나란히 나무칸막이를 사이에 두고 오늘 하루 기특했던 각자의 몸을 누였다.

대피소 1박의 첫 경험이 생소하긴 했지만 설레는 추억인 듯 덮고 깊은 잠에 들었다.




다음날, 이른 새벽 등반을 준비하는 무리들의 인기척이 우리를 깨웠다.

딱딱한 마룻바닥을 밀며 일어나는데 저린 어깨를 대신해서 입이 신음소리를 냈다.

취사장에 모인 우리는 발열도시락 설명서를 무시하고 4 봉지를 몽땅 털어서 코펠에 넣고 물과 함께 볶았다.

엉뚱하게 만든 아침 볶음밥에 우린 한바탕 웃었고 의외로 맛있어서 놀랐다.


대피소 난간 앞에서 기다렸던 '일출'자꾸 몰려드는 구름의 방향을 바꿀 도리가 없어서 뒤돌아 걸음을 옮겨야 했다.

목적지는 연화봉에서 희방사를 지나 희방주차장으로 연결되는 하산 코스였다.




먹거리들을 비웠으니 물리적으로는 배낭이 가벼워졌겠지만 심리적인 무게감은 처음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연화봉을 지나면서 경사진 돌계단과 마주했깔딱 고개 내리막 구간에 접어들자 다리가 조금씩 후들거리기 시작했다.


오르막이 대부분이던 어제는 지친 기색 없이 꾸준히 올라올 수 있었지만 급경사의 내리막은 만만치 않았다.

시누이 부부는 무리 없이 선두로 내려가고 있었고 남편은 뒤처진 나를 돌아보며 가다 서다를 반복했다.


가만히 나를 올려다보던 남편이 갑자기 거꾸로 내쪽으로 올라오는 모습이 보였다.

괜찮다는 말에도 아랑곳없이 나의 배낭을 낚아채 둘러메고 후다닥 경사 구간을 내려가 주었다.

버너와 코펠까지 담긴 남편의 배낭무게를 알기에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남편의 돌발행동은 나를 심쿵하게 만들었다.




TV 예능 프로그램 ‘강철부대’의 한 장면처럼 전우애를 발휘한 남편의 모습에 감동이 올라왔다.

배낭의 무게가 남편에게 옮겨가자 내리막은 한결 수월했고 빨라졌다.

그 후로도 급경사 내리막길에서 한번 더 남편이 말없이 내 배낭을 가져갔다.


덕분에 여유롭게 가성비 좋은 영주 한우도 먹고  온천사우나까지 누리며 예약된 고속버스에 탑승할 수 있었다.

옆자리에 앉은 남편에게 다리가 후들거린 하산의 어려움을 얘기했더니 코어근육을 강조했다.

플랭크 같은 복부와 허리의 코어근육 운동이  필요할 거라는 얘기도 했다.


배낭을 들어준 공치사도 하지 않고 차분하게 설명하는 남편의 옆모습이 왠지 고맙고 듬직해 보였다.




시누이부부와 우리는 사진과 함께 만족스러운 산행 후기채팅방에 올려가며 서로에게 감사했다.

50대였지만 휴대폰 여행어플(트리플) 사용을 두려워하지 않고 공유했더니 스마트한 부가 서비스를 누릴 수 있었다.


특히 가계부 기능이 있어서 n분의 1 정산까지 해 주니 별도의 총무역할이 필요 없이 경비계산에서 자유로웠다.

그렇게 1박 2일 소백산 등산은 무사히 즐겼고 신박하게 마무리되었다.

 

산행의 후유증인 뻐근한 근육은 기분 좋은 불편함으로 며칠 머물다 사라졌다.

말없이 나의 묵직한 배낭을 들어주던 남편의 심쿵한 전우애 소백산의 붉은 노을처럼 선명하게 남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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