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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맘 Sep 21. 2024

제사 없는 펜션 가족모임

지난주 성묘를 다녀온 후에 남편이 말을 꺼냈다.

“여보, 이 번 명절엔 제사 지내지 말고 아버지 모시고 펜션 가자

며칠 후면 추석인데 갑작스러운 남편의 말에 내 귀를 의심했다.

“제사를 지내지 말자고?”

“그래, 아버님 요양원 근처 펜션 알아보고 거기서 모이자고 하자”


남편의 나의 표정은 참았지만 마음이 가벼워서 춤을 추고 있었다.

괜찮은 척 묵묵히 지내온 제사였지만 하얀 거짓말이 숨어 있었나 보다.



남편은 차남이지만 누구보다 시댁일에 앞장서며 챙기는 걸 도맡아 하는 아들이다.

아주버님이 제사를 추도예배식으로 바꾸자 맘이 불편했는지 대뜸 제사를 우리가 가져오자고 했던 남편이다.



워킹맘인 나로서도 부담은 있었지만 두말없이 남편의 제안에 동의를 했던 게 벌써 8년 전 일이었다.

그런 나를 두고 친정 올케나 주위 사람들은 이해하기 어렵다며 대단하게 바라보던 기억이 난다.

물론 제사를 지내는 서열이 정해진 건 아닐 테지만 일부러 도맡아 하겠다는 얘기를 꺼내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설날과 추석 명절제사를 가져오면서 자연스럽게 우리 집이 시댁 가족모임의 중심에 서게 되었다




어릴 때부터 명절제사와 반복적인 기제사를 경험한 나로서는 제사에 대한 거부감은 없었다.

가난한 집 장남에게 시집온 친정엄마의 고달픔은 모른 채 기름진 음식과 과일 등을 먹을 수 있는 행사로만 느껴졌었다.

특이하게도 친정 기제사는 일주일 동안 하루이틀 차이로 조상님 세 분의 제사가 몰려있었다.



늦은 밤에 이어지는 부엌의 소란함 때문에 친정엄마는 가난한 셋방 살이로 집주인의 눈치를 살펴야 했었다.

연달아 있는 기제사를 위해 시장에서 사 온 나물과 밤, 대추 등은 조금씩 소분해서 보관했다가 사용하셨다.

큰오빠의 결혼으로 며느리들을 생각한 친정아버지는 세 번의 기제사를 한 번으로 통합하는 결단을 내리셨다.

아버지의 결단이 조금만 빨랐더라면 수 십 년 동안 친정엄마의 수고로운 시간이 줄었을 텐데 말이다.




추석연휴에 남편은 곧바로 파주 근처의 독채 펜션을 예약했고 시댁톡방에 게시했다.

제사가 없는 갑작스러운 남편의 결정이었지만 시댁식구 누구도 라는 질문은 없었다.

체크인 시각에 맞춰 우리는 근처 요양원에 계시는 시아버님을 모시고 펜션에 먼저 도착을 했다.

시누이 가족들과 멀리서 아주버님네도 속속 도착을 마쳤다.


깨끗한 자갈이 깔린 펜션 앞마당에는 맨드라미와 환한 꽃나무들이 소복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오렌지, 그린, 핑크로 과하지 않게 포인트를 살린 목재 기둥과 테이블의 색감 카메라 앵글 속에서 더 화사하게 빛났다.




명절연휴에 집을 떠나서 공간대여를 하니 분주하고 정신없었을 집에서의 상황과 자꾸 비교가 되었다.

좋으면 장점만 보이는 게 맞긴 했다.


널찍한 양문형 냉장고의 텅 빈 공간이 준비해 간 음식들로만 채워지는 충만함이 좋았다.

넉넉한 주방도구들은 허락 없이 질문 없이 누구나 주인처럼 사용을 하니 내가 신경 쓸 일이 적었다.

주방과 바비큐 테이블과의 가까운 연결 동선이 상차림 시간도 줄이고 수월하게 도와주었다.

바비큐 메인요리 하나로 준비 부담을 낮춘 밥상은 예외 없이 모두에게 편안한 대화의 시간을 선물해 주었다.




1박 2일 펜션에서의 대화는 평소에는 알 수 없던 가족의 마음을 돋보기로 들여다본 기회가 되었다.

빈 집이 된 본가에 대한 처리문제에 대해서도 자유롭게 생각과 의견들이 오갔다.

퇴직을 앞둔 노후문제부터 자녀에 대한 부모의 역할을 고민하는 이야기로 점점 솔직하고 진지해졌다.

깊이 간섭할 순 없었지만 형제끼리 충분히 공감대가 생겼고 삶을 응원하는 마음이 커졌다.

제3의 공간이 주는 여유와 열린 대화로 기억에 남는 명절연휴를 보냈다.




명절연휴가 제사문화에 집중되고 치우치다 보면 부작용으로 나타나는 피로감이 있다.

대를 이어 제사를 지내는 시스템이 과연 다음세대에게 공감을 받을지도 의문스러운 요즘이다.

그동안 묵묵히 제사를 받아들이고 지내왔던 우리지만 제사에 대한 생각을 다시 쓰고 새로고침 하면서 부족했던 가족애를 느낄 수 있었다.


비록 제사는 지내지 않았지만 비로소 가족과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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