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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맘 Nov 11. 2024

다시, 남이섬

무엇이든 시기를 딱 맞추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때마침이란 단어를 만나면 더 기분이 좋은지 모르겠다.

오랜만에 남이섬에서 맞춤 가을을 제대로 만났다.


우리는 메타세콰이어길을 따라 북한강변이 보이는 안쪽으로 빨려들 듯 천천히 걸어갔다.

노란 단풍카펫이 깔린 나무들 사이에서 우리가 찾던 야외 테이블을 발견하고 걸음을 멈췄다.


마주 보며 테이블에 앉으려는 나에게 친구는 북한강 뷰가 보이는 옆자리에 함께 앉기를 권했다.

센스 있고 배려심 있는 친구 덕분에 같은 눈높이의 풍경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평일오전의 햇살 따스하게 나무 틈 사이를 삐져나오며 잘게 부서져 내리고 있었다.

절정에 도달한 단풍잎들은 바람에 실려 하나 둘 노란 낙엽으로 쌓여가는 중이었다.

잔물결 위 빛나는 윤슬 섬세하고 황홀했다.


다시, 남이섬과 함께다.

“아.. 좋다, 그냥 아주 좋다”


멋진 형용사를 찾을 필요도 없이 솔직한 마음속 감탄사가 먼저 내 귀에 들려왔다.




오늘 아침, 남이섬 셔틀버스를 기다리던 동대문 역사문화공원 10번 출구 앞에서의 느낌은 달랐다.

지하철 계단을 올라오자 갑자기 추워진 10도 아래의 날씨와 세찬바람이 머리카락을 흔들었었다.

달리는 자동차가 남긴 바람의 여운까지 도심 콘크리트의 차가운 느낌이 맴돌았었다.


셔틀버스가 목적지 주차장에 도착한 시각은 오전 11시가 조금 안된 시간이었다.

배를 타고 5분여 만에 도착한 남이섬은 걱정과는 다르게 포근했다.

바람은 얌전했고 가을단풍만 조용히 흔들리다 우아하게 떨어지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착한 바람과 파란 하늘을 칭찬하며 남이섬에서의 시간을 온전히 즐기겠노라 마음먹었다.




벤치에 앉은 우리는 배낭을 앞으로 옮기며 포물선으로 지퍼를 열었다.

키 큰 텀블러에는 레몬 한 조각을 넣은 따뜻한 생강차가 둘이 먹을 만큼 담겨있었다.

은박호일에 싼 토스트 2개와 깨끗이 씻어 지퍼팩에 넣어온 샤인머스켓도 테이블에 올렸다.


토스트는 백종원샘 레시피를 응용해서 만들어 왔다.

채 썬 양배추와 당근에 소금과 후추로 밑간을 하고 부침가루와 계란, 다진파를 넣어 도톰하게 오래 익힌 패티가 들어있다.

친구가 만들어 준 사과잼을 바르고 케첩도 뿌린 든든한 메인 메뉴였다.


싱가포르여행도 함께 했던 친구는 바샤커피와 TWG홍차를 아낌없이 준비해 왔다.

큰 종이컵에 드립 할 커피를 걸치고 텀블러에 담긴 온수를 천천히 붓기 시작했다.

가을 감성까지 몇 스푼 추가된 따뜻한 커피는 우리가 아는 맛 이상이었다.




종이컵의 온기를 두 손으로 감싸며 자연스럽게 강변 쪽으로 눈을 돌렸다.

햇살을 삼킨 단풍커튼 너머로 북한강변의 깊고 푸른색이 하늘과 닿아 있었다.

단풍을 배경으로 가다 서다를 반복하며 셔터를 누르는 사람들이 같은 듯 다르게 파노라마처럼 지나갔다.

지구마을 어디쯤에서 왔을 이방인 관광객들이 연출하는 표정과 동작들은 즐거운 상황극을 보는 것 같았다.

관찰자 시점으로 바라보며 느낀 남이섬의 낭만과 여유가 깊고 진했다.


테이블을 정리하고 일어서기 전에 우리는 준비한 핫팩을 서로의 등짝에 붙여주며 온기까지 교환했다.

맛있게 피크닉을 즐긴 우리는 북한강변을 따라 걸으며 사진에도 진심을 다했다.




11월 초의 남이섬은 빠르게 가을을 덜어내고 있었고 반갑게 마주친 동물들의 자유로움은 여전해 보였다.

송파은행나무길의 은행나무는 이파리를 모두 떨어뜨려 겸손한 가지만 하늘을 향해 있었다.

조만간 송파구에서 공수해 온 은행잎들이 바닥에 노란 카펫으로 더해져서 아쉬움을 달래줄 것이다.


나무 타기의 달인인 청설모의 귀여운 퐁당 걸음도 빠르게 지나가는 볼거리였다.

어쩌다 마주친 공작 한 마리는 기념품 가게의 지붕 위를 걷다가 우아하게 땅 위로 내려앉는 모습으로 우리의 시선을 끌었다.

그런데 간식을 먹고 있는 외국인들 앞에 멈춰 서더니 침 흘리듯 간식을 빤히 쳐다보는 공작의 모습이 의외였다.

우아함 뒤에 숨어있던 식탐을 들켜버린 것 같았다.

귀족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단순한 본능은 어쩔 수 없었던 공작에게 왠지 친근함이 느껴졌다.


때로는 따뜻한 모닥불 앞에서 두 손을 뻗고 있는 눈사람 인형과 추운 몸을 녹일 수 있었다.

계절마다 세심하게 관리된 모습으로 감성을 채워주고 다시 올 이유와 기대감을 주는 남이섬이 좋다.


다시, 남이섬을 약속하며 가을 여행의 마침표를 데리고 서울행 셔틀버스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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