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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롱 May 24. 2017

떠난 자의 기쁨, 남겨진 자의 슬픔

독일에서 두 아들을 키우는 씩씩한 한국 엄마의 육아일지 #8

"형아…. 혀 어어어 엉아…. 형아…"


우리 집 둘째 노아가 운다.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운다.

이건 예상치도 못한 시나리오다. 사실 내가 염려하고 있었던 대로 시나리오가 펼쳐졌다면, 지금 우는 아이는 둘째 노아가 아니라 첫째 조슈아 여야 한다. 그리고 지금 둘째는 자유를 만끽하며 즐거워해야 하는데,,, 이게 뭐지? 현실은 정 반대다. 첫째는 웃는 얼굴로 방실 거리고 있고, 둘째는 애간장을 태우며 울고 있다.  역시, 인간은 한 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는 존재구나.


노아가 애타게 찾는 형아 조슈아는 오늘 아침 2박 3일 일정으로 학교 수련회를 갔다.  9살 조슈아 인생의 첫 외박이다.  잘 지내고 올 거라 믿었지만, 그래도 혹시나 밤에 갑자기 집에 가고 싶다고 울면 어쩌나 싶었다. 낮에는 노느라 정신없지만, 왜 조용한 밤 자려고 누우면 괜히 집 생각이  나곤 하지 않는가. 그러는 와중에 누구라도 하나 눈물이 터지면 다 같이 따라 우는 건 시간 문제 이지 않을까?  야외 활동하다 다치는 건 아니겠지? 요새 날씨가 변덕스러운데 옷은 어떻게 잘 챙겨서 입을 수 있으려나? 감기 걸려서 아프면 안 되는데… 겉으로 내색은 안 했지만, 수련회 날이 가까워질수록 내 머릿속엔 걱정이 하나둘 늘어갔다.  

큰 캐리어를 가득 채운 2박 3일 수련회 준비물

하지만 내 걱정과는 달리 첫째는 첫 수련회가 마냥 좋고, 그저 기다려지기만 했나 보다. 떠나는 날 아침 학교로 향하는 아들의 발걸음이 어찌나 가볍고 빠르던지 나도 덩달아 종종 걸음으로 따라가야 했다. 빼곡히 적힌 준비물 목록대로 짐을 싸다 보니 2박 3일 일정에 큰 캐리어가 가득 찼다.  자기 몸집만 한 캐리어를 무거운 줄도 모르고 끌고 가는 아이의 얼굴에 감출 수 없는 기쁨이 환한 웃음으로 넘쳐났다.  학교에 도착하니 방방 들뜬 반 친구들이 우르르 몰려와 인사를 한다. 누가 도착할 때마다 몰려가서 인사하는 모습이 마치  작은 참새들이 떼를 지어 요리조리 푸르르 날아다니는 것 같다.  버스에 올라 창가에 자리 잡은 아이는 환하디 환한 얼굴을 신나게 손을 흔들었다.


떠나는 자는 그렇게 갔다. 기쁘고 설레는 마음으로…

수련회 가는 길 - 무거운 캐리어도 가볍게 느껴지는 즐거운 발걸음



남겨진 둘째는 마냥 신나 할 줄 알았다. 유치원 끝나면 형아 없이 엄마랑 둘이 아이스크림 데이트도 하고, 밤에는 안방에 와서 같이 자도 된다고 약속을 해 놓은 터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엄마를 독차지했다는 기쁨은 두어 시간의 짧은 데이트를 마치고 집에 들어서는 순간 끝이 났다.  껌딱지처럼 붙어다니던 형아가 집에 없다는 게 그제야 실감이 났나 보다.  둘째는 항상 기분이 좋은 까불이인데 오늘은 어째 너무 조용하고 얌전하다.  입을 꾹 다물어 버린 노아에게서 이상한 기운을 감지한 나는 아이의 행동을 유심히 지켜 보기로 했다. 자신의 베스트 프렌드이자, (아직까지는) 절대 이길 수 없는 경쟁자인 동시에 최고 동경의 대상인 형. 그런 형아의 첫 부재를 요 다섯 살 꼬맹이가 오늘 아주 처절하게 느끼나 보다.


1.      현실 확인: 그 과정의 첫 출발은 '집안 배회하기' 였다. 조슈아가 어디 숨어있기라도 한 듯, 노아는 집안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형아를 찾았다. 형아가 있나 없나 자기 두 눈으로 확인하려 하는 듯했다.

2.       현실 인식: 형이 없다는 사실을 인지하기 시작하는 건가? 조슈아 방문 앞에서 서서 한참 동안이나 텅 빈 방을 물끄러미 본다. 한동안 그렇게 바라만 보다 말없이 들어가 형아 책상에 자리를 잡고 앉는다.  

3.      현실 인정: 책상에 앉더니 고개를 푹 숙인다. '쟤 뭐하는 거지? 나 몰래 콧구멍 파려고 그러나?' 하고 생각하는데 노아가 흐느끼기 시작한다. 달래 주려고 일으켜 세웠더니 이미 얼굴이 눈물범벅이다. 형아가 없다는 걸 인정하니 슬픔이 밀려오나 보다.


가서 달래주니 본격적으로 목 놓아 울어 제끼는데...형아가 얼마나 보고 싶으면 저러나 안쓰럽기도 하면서,  내 배로 낳은 이 두 녀석들이 이렇게 사이가 좋구나 싶어 뿌듯하기도 했다.  한참 동안 눈물, 콧물을 쏙 뺀 둘째는 그날 저녁 내내 사진과 그림으로 형아 없는 슬픔을 달랬다. 일종의 '형아 금단증상' 이라고나 할까? 형아 사진을 꺼내 얼굴을 매만지고, 버스 타고 가서 형아를 만나는 그림을 그렸다. 저녁 식사 시간에는 형아 자리에 앉아 형아 사진을 보면서 밥을 먹었다.


형아 금단증상 1- 형아 사진 보며 밥 먹기
형아 금단증상 2 - 눈물 흘리다 버스타고 형아 만나러 가는 그림 그리기
형아 금단증상 3 - 형아 사진 보고 또 보고, 그리고 또 그리고


남겨진 자는 그렇게 슬픔을 달랬다. 그리운 마음을 담아서…


덧붙이는 글: 2박 3일이 지나고 첫째가 돌아왔다. 서로를 그리워했던 애틋한 모습은 그날 저녁 바로 원상복구 되었다. 레고 때문에 바보, 멍청이를 입에 달고 다투고, 서로 자기 아이스크림이 더 크다고 우기는 평범한 형제의 모습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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