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회복.
코로나 일일 확진자가 7만 명까지 치솟던 영국에서 이보다 더 소중한 말이 또 있을까. 최악의 고비를 넘긴 후, 지난봄부터 등교를 시작한 아이들도 여름이 된 지금 '평범한 학교생활'에 한 발짝씩 다가가고 있다. 방과 후 수업이 하나 둘 재개된다는 소식에 큰 아이는 유난히 들떠했다. 그간 한 번도 못 가본 실험실에서 진행될 과학 클럽에 꼭 들어가 현미경으로 나뭇잎 세포도 관찰하고, 알코올램프에 머리카락도 태워보고 싶다고. 그 마음을 알기에 학교에서 안내 이메일을 받자마자 하던 일을 멈추고 바로 신청서를 제출했다. 7학년과 8학년, 이렇게 두 학년만이 대상이지만, 한 학년에 11 반씩이나 있는 큰 학교. 선착순 30명 안에 들려면 일분일초가 급하다. 소싯적 인기 교양과목 수강 신청을 하고, 흠모하던 가수 콘서트 티켓을 예매하던 실력까지 발휘해 시쳇말로 광클을 했건만…
30명 안에 못 들었단다. 서둘러서 신청했는데도 엄마가 늦어서 미안하다고 진심을 꾹꾹 눌러 담아 사과했다. 대답은 괜찮다고 하지만 아이의 얼굴에는 실망이 가득하다 못해 뚝뚝 흘러넘쳐 내렸다. '기운 내, 이게 전부가 아니잖아. 다음에 들어가면 되지.'라고 말해주고 싶었으나, 괜히 더 말을 붙여봤자 좋을 게 없을 듯하여 방에서 혼자 고독을 씹게 내버려 뒀다.
하지만, 나는 네가 뭘 좋아하는 줄 알지! 잔뜩 만들어서 얼려둔 소보로를 냉동실에서 꺼냈다. 계란, 버터, 설탕, 밀가루, 베이킹파우더, 우유를 차례로 넣고 만든 반죽 위에 소보로를 듬뿍 올려 케이크를 구워야지. 세로토닌인지 뭔지하는 호르몬 분비를 촉진시켜 기분을 좋게 만드는 효능이 과학적으로 입증되었다는 다크 초콜릿은 보너스. 달달하게 구워낸 최애 케이크에다 아들이 애정 하는 녹차 아이스크림까지 크게 한 숟가락 얹어 놓으면 준비 끝. 이제 이불속에 찌그러져 있는 아들을 불러내기만 하면 된다.
"아드으을. 소보로 케이크 먹을래?"
뭉그적뭉그적.
어슬렁어슬렁.
꿈지럭꿈지럭.
단단하게 뭉쳐있던 아들 번데기는 여러 번의 발길질 끝에 겨우 이불 껍질을 벗고 나왔다. 탈피하느라 힘들었나? 식탁에 와서는 쓰러지듯 풀썩 의자에 주저앉는다. 억지로 나오는 척, 못 이기는 척, 민망해서 괜히 더 속상한 척하는 거 뻔히 보이지만 모르는 척 해줬다. 말없이 한 접시 비우더니 축 늘어트리고 있던 날개를 파르르 살짝 움직이기 시작한다.
“엄마아, 더 주세요오.”
소보로 케이크 두 조각과 녹차 아이스크림 세 숟가락을 먹고 난 나비는 이제 제법 팔랑거리며 날갯짓을 한다. 역시 기운이 없을 때에는 달콤한 게 약인가. "엄마, 내년에도 과학 클럽 한대. 그럼 그때는 더 빨리 신청해줘. 헨리는 하기 싫은데 부모님이 신청해서 억지로 들어간 거래. 나는 하고 싶은데도 못 들어간 건데. 선생님한테 헨리 대신에 내가 들어가면 안 되냐고 여쭤볼까?......" 묻지도 않았는데 웅얼웅얼 그러다 조잘조잘. 그렇게 한참을 떠들더니 폴폴 날아가 버린다. 얼른 숙제하고 헨리한테 전화를 해본다나 뭐라나.
다행이야. 속상해서 꽁꽁 굳어버린 네 마음을 보들보들 풀어줄 필살기 하나는 갖고 있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