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에서 이사하기 #1
영국에서의 첫 이사. 잊고 있었다가 이번에 또 느꼈다. 이사는 준비보다 후처리가 더 빡세다는걸. 먼지까지 포장해서 있던 자리 그대로 새집에다 정리해주는 포장이사가 없는 외국에선 더더욱 말이다.
이삿짐 쌀 때는 예쁘거나 말거나 박스에 일단 다 쑤셔 넣고 보면 끝. 허나 새집에서 짐을 풀 때는 쓰기 편하면서도 새로운 공간에 어여쁘게 보이게 배치해야 해야 하는데 이게 보통일이 아니다. 실용성과 (나름) 예술성 두 마리 토끼를 다 잡는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이던가. 이것은 이사 후, 새 집에서 만의 빡셈. 여기에 예전 집을 원상복구 해놓아야 하는 빡셈을 추가해야 한다.
내일은 예전에 살던 집 넘겨주는 날. 이번 주는 새집에서의 빡셈은 잠시 미뤄두고 예전 집 원상복구를 위한 노동 중이다. 그간 쓸고 닦고 잘 치우면서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여기저기 묵은 때며 찌든 때가 한가득. 오븐, 냉장고, 찬장, 서랍, 손잡이, 계단 난간 하나하나 우리 식구들의 손때를 닦으며 생각했다. 영국에서 우리의 첫 보금자리가 되어줘 고마웠다고.
영국 오자마자 코로나로 온 나라가 봉쇄되었을 땐, 정말이지 집 밖으로 나가면 큰일 나는 줄 알았다. 낯선 땅에서 맞닥뜨린 팬데믹 Covid-19. 총성 없는 전쟁이라고도 했다. 영국에서는 코로나 사망자가 2차 세계 대전 전사자와 민간인 사망자를 합친
수보다 훨씬 많으니 전시 상황이나 매한가지. 두려운 나날 동안 이 집이야말로 우리 네 식구를 지켜줄 수 있는 요새였다. 작은 뒷마당은 답답할 때면 나가 바깥공기를 쐴 수 있던 지구 상의 유일한 안식처였고, 마음 놓고 아이들을 풀어놓을 수 있던 우리들만의 놀이터. 다달이 월세를 내야 하는 남의 집이었지만 너무 감사했다. 이 집을 둥지 삼아 우리 넷 코로나 폭풍우를 피할 수 있어서.
폭풍우 속에서도 작은 기적이 있었으니 그건 바로 행운목. 동쪽으로 난 거실의 맨 바깥쪽에는 높은 유리천장이 있었고, 그 아래 크고 작은 화분을 여럿 두었다. 덕분에 귀한 햇살을 많이 받아 7년 동안 키우던 행운목이 처음으로 꽃을 피워냈다. 사실 꽃이 피는 식물인지도 몰랐는데… 자그맣고 하얀 꽃이 몽글몽글 동그랗게 무리를 지어 긴 가지에 가득 매달려 있는 게 어찌나 귀엽던지. 온 집안에 가득히 퍼지는 은은하고 달달한 향은 장담컨대 그 어떤 향수도 흉내 낼 수 없을 것이다. 행운목의 꽃말은 ‘행운, 행복, 약속이 이뤄짐’. 행운목이 꽃을 피우면 그 집안에 평생에 잊지 못할 행운과 행복이 깃든다는데, 그 덕분이었을까? 드디어 내 집 마련에 성공해 새집으로 이사 갈 수 있는 게.
여러 가지로 고마운 마음이 들어 더 빡빡, 더 깨끗이 청소했다. 힘껏 걸레질 한 손가락이 저려올 정도로. 고강도 중노동이지만 감사한 마음으로 남의 집에서의 마지막 청소를 마무리했다. 다음에 들어올 세입자에게도 좋은 보금자리가 되어주길 바라며.
고마운 남의 집이여,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