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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롬 Nov 06. 2020

영희 씨 병문안기

엄마는 영원히 엄마일 수 없다

  엄마는 하얀 병실에 파리한 안색으로 앉아 있었다. 입술 매말랐고 눈밑은 꺼졌고 손목엔 너무 많은 줄들이 연결돼 있었다. 병원복은 너무 커서 거의 하얀 담요를 걸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렇지만 나는 일단 그녀가 앉아 있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어제 심근경색으로 쓰러졌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만 해도 힘없이 누워있는 모습을 상상했기 때문이었다. 다행히도 엄마는 치료 골든타임 내에 대학병원에 도착해 심장혈관을 확장시키는 시술을 받은 상태였다.  


  심혈관계 집중관리실은 조용했지만 일사란하게 움직이는 의료진의 발걸음 때문인지 긴장이 느껴졌다. 엄마는 멀리서 나를 보자마자 코를 찡긋하고 반갑다는 손짓을 보냈다. 나는 울지 않으려고 일부러 부산을 떨면서 짐부터 풀었다. 칫솔, 치약, 수건, 양말, 마스크, 클렌징폼, 물티슈 등 생활용품점에서 사온 물건이 담긴 쇼핑백이었다. 엄마는 양말을 가장 반가워했다. 쓸쌀한 병원 공기 탓에 발이 시려웠기 때문이었다. "엄마. 발목까지 올라오는 양말이랑 복숭아뼈까지만 오는 양말이랑 둘 다 사왔어." 엄마는 신고 벗기 편한 목이 짧은 양말을 골라 바로 신으려 했다. 하지만 이내 발등에도 주삿바늘이 꽂혀 있어서 양말을 신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곤 멋쩍은 듯 웃었다.


  움직일 수 없는 엄마의 지시에 따라 사온 물건을 병실 곳곳 가져다 두며, 나는 엄마가 운이 좋은 이유에 대해 늘어 놓았다.

"물티슈는 바로 옆에 둬. 그때 그때 꺼내 쓰게."

"응. 엄마, 간호사인 내 친구가 그러는데 엄마는 진짜 운이 좋은 케이스래. 마침 아빠가 옆에 있어서 3시간 안에 병원엘 간 거잖아. 심근경색 골든타임이 최소 3시간, 최대 6시간인데 그 안에 병원엘 갔으니 얼마나 다행이야!"

"맞아. 의사선생님도 조금만 늦었으면 심장마비였다는데 지금 와서 다행이시다더라."


  나는 퇴원 후 엄마의 삶에 대해 얘기했다. 지나친 운동은 조심해야 하고, 고기 등 기름기 있는 음식은 조절해야 한다는, 어느 중병 환자에게나 적용될 뻔한 말이었다. 하지만 엄마는 그 얘길 듣자 마자 한 번더 되물었다. "고기 먹으면 안된다지?" 내가 그렇다고 하자, "아씨. 나 고기 좋아하는데."라고 중얼거렸다. 그녀가 고기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아는 나는 조금 슬퍼졌다. 별다른 행복이 없는 삶에 먹는 즐거움은 하루를 지탱하는 큰 힘이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었다. 또, 정기적 수입이 생기면 그녀에게 비싼 소고기를 원없이 사주겠다는 내 다짐이 사라졌기 때문이기도 했다. 병은 엄마에게서 쉽게 행복해지는 방법을, 나에게선 엄마를 행복하게 해 줄 방법을 빼앗아 갔다.


  "원래 늙으면 못하는 게 하나씩 늘어나는거야. 오죽하면 누가 늙는다는 건 내 몸 하나 건사 못하는 삶을 견디는 거라고 했겠어. 자연스러운거야. 자연스러운 거."

나는 억척스러운 아줌마 말투로 엄마에게 잔소리를 늘어 놓았다. 엄마는 네 말이 다 맞다며 작게 웃었다. 지금처럼 '엄마와 딸'이란 우리 역할이 뒤바뀐 순간은 익숙했다. 엄마가 늙으면서 못하게 된 일 중에 하나는 '엄마' 그 자체이기도 했다. 엄마가 작아질수록 나는 커져야 했다. 그리고 오늘 엄마는 아마도 내가 본 중에 가장 작았다.


  엄마가 두 번째로 반가워한 물품은 물티슈였다. 쓰러진 이후 양치도, 세수도 못해서 찝찝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나는 물티슈로 얼굴을 닦으려는 그녀를 만류했다. 그리고 간호사에게 의료용 스테인리스 용기를 받아 따뜻한 물과 찬 물을 섞어 담아왔다. 미용실에서럼 엄마의 목에 수건을 둘러 물이 환자복에 튀는 것을 방지했다. 소매를 걷어 부치고 손에 물을 묻혀 엄마의 얼굴에 문질렀다. 그녀가 말했다. "물이 닿기만 했는데 시원하다 야."


  일요일 오후의 병실엔 창문을 통해 햇살이 들어왔다. 햇살을 받은 엄마의 얼굴이 유독 하얗고 잘 보였다. 앞머리에 물이 묻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이마에 먼저 거품을 얹었다. 엄마의 얼굴 콤플렉스 삼대장 중 하나는 좁은 이마였다. 그래서 엄마는 내가 태어나던 날 신께 기도했다. 첫째는 아빠의 사각턱을 물려받지 않게 해달라는 것이었고 둘 째, 셋째는 자신의 좁은 이마와 작은 키를 닮지 않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엄마에 따르면 신은 턱과 이마에 대한 기도는 듣고 키에 대한 소원만 외면했다. 사실 내 이마는 그녀를 닮았다. 엄마만 그 사실을 모를(혹은 외면할) 뿐이다. 하지만 엄마는 바가지 머리를 고집해 언제나 앞머리가 빽빽했던 학창시절의 내게 "이쁜 이마를 왜 가리고 다니냐"는 말을 입이 마르고 닳도록 했었다. 신은 한 가지 소원만 들어줬지만 그녀의 눈에 나는 언제나 완벽한 피조물이었다.


  엄마의 광대에는 언제 이렇게 많이 생겨난 건지 알 수도 없는 검은 기미가 가득했다. 코 옆엔 언제 이렇게 깊어졌는지 모르는 팔자주름이 있었다. 기미와 주름이 세월의 흔적이라면 그녀의 심장에 생긴 병은 불행의 흔적일지 몰랐다. 엄마는 살면서 가슴을 움켜쥘 일을 많이 겪었으니까. 고혈압도, 당뇨도, 고지혈증도 없는 50대 초반의 그녀가 심장병에 걸릴 이유는 단 하나였다.


  엄마의 얼굴에 물을 묻히고, 클렌징 폼을 손에 덜어서 거품을 내고, 그 거품으로 얼굴을 닦고, 마침내 거품을 씻어내면서 생각했다. 26년 전 이렇게 작고 하얀 병실에서 나를 처음 품에 안은 그날 이후부터 엄마는 수없이 내 얼굴을 닦았을 것이다.


  "딸이 있어서 참 좋다." 세수를 마친 엄마는 개운해 보였다. 나는 그녀의 젖은 환자복 소매를 접어 올려주며 대답했다. "나도 엄마가 있어서 좋아." 단 한글자도 진심이 아닌 음절 없이, 오로지 마음으로 내뱉은 말이었다. 그녀가 있다는 사실 자체가 좋았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만에 하나, 앞으로 오랜 기간 엄마와 딸이란 역할이 바뀐 채로 수천 번 그녀의 얼굴을 닦아야 하는 상황이 온다 해도 괜찮았다.

    

  "보호자 님. 이제 면회 종료해주셔야 해요."

   간호사가 다가와 짧은 면회를 끝내야 한다는 것을 일러주었다. 원래 면회가 안되는 것을 간호사에게 끈질기게 부탁해 간신히 얻어낸 터였다. 재킷을 입고 가방을 맸다. 엄마를 안고 싶었지만 그러지 않기로 했다. 어차피 곧 볼테니 어줍잖게 껴안고 그러면 안될 것 같았다.


  "엄마 나 갈게." 엄마는 왔을 때 본 모습 그대로 앉아 있었다. 그리고 왔을 때 모습 그대로 코를 찡긋하곤 손을 두 번 접었다 폈다. "딸 고마워".

잘가란 뜻이었다.


그렇게 뒤돌아서자마자 얼굴이 일그러졌다. 엄마가 영원히 엄마일 수 없다는 게 오늘만큼 슬픈 적이 없었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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