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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롬 Dec 15. 2020

어떤 이상한 온기 둘

뭔 새해 복을 벌써 받어~


  요일을 구분하는 게 의미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다. 특히 자소서 시즌에 요일들은 제 이름을 잃어버린다. 대신, '1번 문항 쓰는 날', '초고 쓰는 날', '퇴고하는 날' 등으로 불린다.(사실 내일도 마감이 하나 있는데...아아..) 


 모아둔 돈을 까먹으며 버티는 백수인데다가 코로나 19로 사회적 관계는 아예 불가능했기에 나는 오로지 이름 없는 요일 사이에서 내 이름을 불러줄 회사를 향한 구애만을 지속하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마치 무관심한 주인의 집의 창가에서 시들어가는 화분 위 식물처럼 매일매일 메말라갔다. 물론, 언택트 시대를 맞이한 IT 강국 국민 답게 가끔 카카오톡으로 온기가 찾아 오기도 했다. 하지만 요즘엔 활자가 힘에 부쳤다. 진심을 너무 담으면 각진 활자가 버거워하는 것 같았고, 적당히 조절하면 영혼이 없어 보였다. 미세하게 움직이는 상대방의 얼굴 근육을, 커피를 감싸쥔 손을, 기분따라 바뀌는 눈동자를 보며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아픈 엄마를 만나서 껴안고도 싶었고, 분명 얼굴을 보면 좋아질 테지만 "곧 얼굴 한 번 보자"만 말만 공허하게 주고 받은 사람들과도 만나고 싶었다. 그런데, 오늘 어떤 이상한 온기 둘을 받았다.  


 '확진자 아니고 확-찐자'란 농담이 나왔을 땐 남일처럼 허허 웃었는데, 나는 최근 과체중을 확진받기 직전이다.그걸 알면서도 붕어빵을 외면하지 못했다. 코를 훌쩍이면서 눈은 붕어빵에서 떼지 못한 채 외쳤다. "슈크림 셋! 팥도 셋이요!" 어느새 바나나색 밀가루는 겨자색 붕어빵이 되었고, 곧 흰 봉투에 담겼다. "계좌이체 해드릴게요." 하지만 문제가 발생했다. 계좌이체도, 카드도 안된단다. 나는 울상을 지으며 흰 봉투를 다시 붕어빵 아저씨에게 드렸다. 그런데 이상했다. 아저씨는 붕어빵 봉투를 받지 않고 말했다. "추운 날 기다렸는데 가져가서 먹어요." 나는 거절했다. 하지만 아저씨는 완고했다. "그냥 드시고 나중에 (돈) 주셔요." 약 2분 간 실랑이가 이어졌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이건 좀..."과 "그냥 먹어요"의 싸움이었다. 당황한 나의 눈은 황급히 주변 거리를 훑었다. 마침 근처에 주거래 은행 ATM기기 있어 나는 싸움(?)에 승리했다. 그런 줄 알았건만, 아저씨는 마지막에 붕어빵 한 마리를 더 얹어주셨다. "추운데 오래 기다리셨으니까.."


  나는 2000원 주고 붕어빵 6마리 말고 다른 것도 함께 얻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오늘 날씨는 올해 중 가장 춥다는데 집에 오는 길이 이상하게 춥지 않았다.


  어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급히 '안전모'를 구헤야 했다. 자기소개 영상을 찍어야 했는데, 그 영상의 핵심 키워드가 안전모였기 때문이었다. 일요일에 안전모를 구할 수 있는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동네 철물점과 공구 파는 곳을 뒤졌지만 대부분 문을 닫거나 안전모를 팔지 않았다. 확찐자답게 모든 것을 포기한 채, 족발을 사기 위해 시장엘 갔다. 그렇게 저녁거리를 사서 돌아가려는데 멀리서 불을 켠 공업사를 발견했다. 가까이 가니 그 안엔 안전모가 가득했다. 가게 사장님께 전화를 걸어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대여료를 조금 드릴테니 잠시 안전모를 빌릴 수 있는지 조심스레 여쭤봤다. 사장님은 흔쾌히 빌려가라고 하셨다. 그리고 내게 물었다. "학생이에요?"


 나는 대답했다. "아뇨. 이제 학생은 아니에요.(그러면 정말 좋겠기도 하면서 이제 더이상은 안하고 싶어요)" 

 아저씨가 말했다. "뭐든 배우려고 하면 그게 학생이죠 뭐, 열심히 하세요."


 오늘 안전모와 함께 양말 세켤레를 돌려 드렸다. 덕분에 영상 무사히 잘 촬영했다고, 새해 복 많이 받으시라고 하니 아저씨가 웃었다. "뭔 벌써 새해 복을 받어."


 사실 올해는 모든 게 글렀다고 생각하던 차였다. 그런데 아저씨의 말을 듣고 생각했다. 

 "그래 뭔 벌써 올해를 포기해."


 2020년은 사람에게 기대지 않으려고 많이도 애쓴 해였다. 그런데 이상했다. 사람에게 멀어지려 애써도, 결국 사람으로부터 위로를 얻었다. 모두의 홀로에, 이전과는 조금 다른 모습으로 온기가 가 닿기를, 조용히 바라보는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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