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 같지 않은 질문
집도 와르르 맨션 멘탈도 와르르 맨션~
요즘 여유가 없다. 글이 잔뜩 밀렸다. 시험용 글말고 브런치에 쓰는 글 말이다. 연말에 사람들에게 사연을 받아놓은 소재도 있다. 하루에 열시간에서 열두간씩 책상 앞에 앉아 있는다. 물론 그시간 동안 내내 공부만 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그렇게 앉아서 공부하는 척이라도 하지 않으면 불안해 미칠 것 같기 때문에 시험에 도움이 되지 않는 글은 잘 안 쓴다.
이와중에도 습관처럼 하는 일이 있다. 이사갈 집을 구체적으로 상상하는 일이다. 유튜브를 통해 랜선 집들이도 하고, '오늘의 집' 어플에 들어가서 내 공간을 채울 가구를 물색한다. 원형 테이블 위에는 어떤 체크무늬의 식탁보를 씌울지, 벽에는 어떤 영화 포스터를 걸어둘지, 빈티지한 블루투스 스피커는 어디에 두는 것이 좋을지 미간을 잔뜩 찌푸린채 고민한다. 그러다보면 행복해진다. 공공임대주택에 당첨되기만 하면 이 상상은 현실이 될 것이고, 나는 조금 더 행복해질 것이라 생각했다.
언젠가 다른 글에서 썼지만, 남들에게 당연한 것이 내게 당연하지 않다고 생각될 때 불행을 느낀다. 내게는 집이 그런 존재다. 지금보다 좋은 집이 간절하다. 오른쪽으로 누우면 곰팡이가 가득한 벽이 보여서 왼쪽으로만 누워자지 않아도 되는 집, 파스타를 만들 때 불을 두개 쓸 수 있는 집, 빨래 건조대가 펼쳐진 날에도 운동을 할 공간이 있는 집, 좋아하는 책을 맘껏 사도 꽂아둘 책장이 아직 넉넉해서 마음이 놓이는 집, 보일러를 틀면 따뜻해지는 집, 온수가 펑펑 나오는 집.
그래서 바쁜 와중에도 공공임대주택을 다섯 개 신청했다. 자격 요건을 하나하나 따지고, 열장이 넘는 공고문을 읽고, 헷갈리거나 모르는 내용은 상담사에게 물었다. 필요한 서류를 떼고, 혹시나 마감기한을 어기거나 내용이 누락될까봐 조마조마하는 과정이 매우 귀찮고 힘들었다. 하지만 새집에 대한 희망이 있었기에 괜찮았다. 집주인과 신경전을 벌이느라 맘고생도 했다. 집주인은 계약만료일이 다가오는 시점에 갑자기 다음 세입자가 구해지기전까지 전세보증금을 돌려줄 수 없다고 말했다. 덕분에 난생 처음 내용증명이란 서류를 꾸려봤다. 법의 힘은 실로 강력해서 주인이 바로 다음날 반환확약서를 써줬다.
하지만 오늘 불현듯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 좋은 집에 살 자격이 있나?"
좋은 집에 살고 싶었던 이유는 삶을 누리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거기서 질문이 파생됐다. 지금은 삶을 누릴 시기가 아직 아니기 때문이다. 일단 고정적 수입이 없고 앞으로 생기리란 가능성도 높지 않은 상황이었다. 어차피 집 안에선 지금처럼 책상에 앉아서 노트북을 두들기거나 아르바이트하느라 밖에 있는 시간이 대부분일텐데 나에게 왜 좋은 집이 필요한건지 갑자기 의문스러워졌다. 취업이란 걸 하고 집도 얻어야 하는 건 아닐까? 집 관리비를 내가 감당할 수 있을까? 나는 지금 사치를 좇고 있는 걸까? 이런 질문들이 머릿속에서 이어졌다.
오늘 엄마와의 통화 중에 마침내 머릿속 질문을 물었다. "엄마, 나 근데 좋은 집에서 살 자격이 있을까?"
엄마는 질문을 듣자마자 말했다. 너는 왜 질문 같지도 않은 질문을 하니? 그리고 화를 냈다. 그런 자격이 세상에 어딨어! 그런 집에서 2년 버텼음 됐어!
엄마의 황당해하는 목소리를 듣자 웃음이 픽 나왔다. 나는 아무 말 없이 웃기만 했지만 속으론 대답했다. 그치 엄마? 각자에게 어울리는 풍경이 정해진 삶은 너무 비참할 것 같았어.
엄마와 전화를 끊고 생각했다. 어쩌면 나는 나를 가난한 청춘의 전형 속으로 억지로 밀어넣고 그 속에서 나 자신을 오래도록 불쌍해하고 싶었는지 모른다고. 그렇게 생각하니 갑자기 쥐구멍에 숨고 싶을만큼 부끄러워졌다.
그간 브런치에 글을 못 썼던 진짜 이유도 사실 비슷했다. 글에 가득한 자기연민이 부끄러웠다. 세상에서 가장 못난 사람은 자기 자신을 부끄러워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사람인 것만 같았다. 그런데 이 글은 왜 쓰냐고 묻는다면 할 말은 없다. 아마 나는 또 묻고 싶은 걸지도 모른다. 나를 다 끄집어 내놓는 이런 글이 괜찮은 거냐고. 여기서만큼은 솔직해도 되는 거냐고.
이 물음에, 너는 왜 질문 같지도 않은 질문을 하는 거냐고 화를 내는 사람이 있었음 좋겠다.